"아, 야구 몰라요"
해박한 이론을 담아 넉넉하게 입답을 과시했던 프로야구 1세대 해설가 하일성 선생이 중계할 때마다 자주 입버릇처럼 꺼내곤 했던 이 말은 겨우 지름 7센치 가량에 불과한 공 하나의 움직임에 따라 승부의 희비가 엇갈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야구 특유의 가변성을 함축하고 있는 의미로 지금껏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가 동네 라이벌, 메츠의 감독으로 부임하고 두 번째 시즌인 1973년. 그해 7월이 지나도록 소속 디비전에서 꼴찌에 머물고 있는 성적을 조롱하듯 '이쯤 되면 올해 농사는 망쳤다고 봐도 되지 않냐'라고 묻는 어떤 기자에게 이렇게 일갈했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응?"
- It ain't over 'til It's over
....
네, 그렇습니다.
공은 둥글고 야구의 결말을 예단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네요.
실제로 1973년의 메츠는 감독 요기 베라의 인터뷰 이후를 즈음해서 폭발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그로부터 선두 팀 컵스와의 9.5경기 차이를 뒤집고 끝내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연출해 냅니다.
이를테면 1승 10패하던 팀이 10승 1패의 팀을 앞질러 추월했다는 거죠.
반면에 시즌 후반부에 다다른 8월 초까지 무난히 3위를 지키는가 싶던 꼴데는 속절없이 12연패를 당하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주저앉아 버리는군요.
기억에도 까마득한 이십여 년 전, 명장 백 프로(본명 백인천)님이 단박에 일궈낸 장장 15연패와 비견되는 실로 오랜만의 진기록입니다.
(*2003년 7월 8일 수원 현대전~8월 3일 잠실 LG전까지, 15연패)
사실 전반기 끝무렵부터 전력의 밸런스가 썩 좋지만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치만 144경기의 장기 레이스를 치르다 보면 여러 가지 돌발 변수들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때그때 싸이클에 따라 성적의 부침도 있을 수 있거든요. 게다가 그 무렵 벌어놓은 승패 마진만 해도 +13이었으니까 산술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만큼은 안정권이겠거니 낙관하고 있었습니다.(KBO리그는 상위 다섯 팀이 포스트 시즌을 치르며 우승을 놓고 겨룹니다)
그런데 설마설마 이렇게?.. 야금야금 승률을 까먹은 것도 모자라 마치 전혀 다른 팀이라도 된 것처럼 무기력하게 패배를 거듭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 좋은 시절을 만나 우리 팀이 '꼴데'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걸까요?
KBO 전체의 역사를 보더라도 리그에서 꾸준히 3위권을 유지하다가 정규시즌을 불과 30여 경기 남겨두고 급전직하 추락한 케이스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벌써부터 동종업계에서는 '꼴데가 꼴데했다'라는 냉엄한 평가와 분석이 정설처럼 퍼지고 있군요.
곱씹을수록 정말이지 아쉬움만 큽니다.
기존 주전들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여러 어린 선수들이 기대 이상 고군분투해가며 잘 버텨줬는데 마지막 한 고비를 앞두고 그만 힘이 부쳐 보입니다.
근래 들어 상대팀과의 선발 매치업이라든가, 이런 면에서도 운이 따르지 않았고요, '데이비슨의 저주'로 불리는 대체 외국인 투수 벨라스케즈의 처참한 실패, 시즌 내내 포수 포지션이 불안했던 점, 그리고 전준우의 이탈을 기점으로 타선의 유기적인 연계가 뭉개진 것도 패인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다시 또 가을이에요.
꼴데의 성적은 9/10 기준, 62승 6무 63패.
포스트 시즌의 마지노 선인 5위 KT와 1.5경기차 6위지만,
7위 NC에게도 1.5경기 밖에 앞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률은 어느덧 5할 아래로 떨어졌고 (-1)
이제 남은 경기 수는 13.
.. 과연, 꼴데의 드라마는 해피엔딩일까요?
물론 뭐, 괜찮습니다.
경우의 수를 따지듯 간당간당한 이런 상황, 매우 익숙하거든요.
아직 조금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2025 시즌에 대한 짧은 촌평을 남긴다면 이렇게 써볼까 합니다.
“꼴데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또.. 미미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