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야심한 시각에 먹방을 보지 말 것이며
무료하거나 대략 심심할지언정
함부로 여행 관련 글이나 영상을 건들지 말지어다.
흰색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입국 심사관이 여권에 붙여 준 스티커가 재밌다.
이름하여 '상륙 허가'
다행히 초행 길의 이방인을 위한 정보는 차고 넘쳤다.
심지어 알고리즘에 걸려 따라온 어떤 썸네일은
이토록 친절하게 우리의 첫 일정마저 꿰뚫고 있었다.
<간사이 공항에서 난바, 백번은 가 본 것처럼 만들어 드릴게요>
다소 즉흥적인 발권으로 시작된 여행이지만
예정된 2박 3일만큼은 알뜰하게 치고 빠지기 위해
출국은 일찍(7시 40분), 입국은 최대한 늦은(21시 10분) 경로로 잡았다.
요컨대 제한 시간 걸린 무한리필 집에 입성할 때처럼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많은 것(곳)들에 예약을 걸어 두었고
아내는 쇼핑해야 할 목록을 빼곡히 작성하기 시작했다.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지어진 천수각은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성 주위를 넓게 휘감은 (연)못에는 일본 전통의 나뭇배가 관광객을 싣고 느리게 떠다녔는데
작고 네모난 매표소 안에는 한국어를 제법 능숙하게 구사하는 까만 얼굴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오사카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 팀인 한신 타이거즈가 38년 만에 일본시리즈를 석권한 2023년.
기쁨과 환희에 젖은 수만 명의 인파가 이곳으로 쏟아져 나왔고
그 가운데 일부는 거침없이 도톤보리 강으로 몸을 던져 뛰어들었다.
도톤보리 강은 사실 그 때나 요즘이나 악취가 빈번한 하급수에 가까운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뛰어든 사람들 중 누구도 수질 따위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리 난간 앞에서 잔잔히 흐르는 시커먼 물줄기를 내려 보다가
마침 고국에 두고 온 나의 '꼴데'를 생각했다.
꼴데는 올해도 변함없이 7위가 유력하다.
그렇지만 부산에는
도톤보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광활한 바다가 햇살에 반짝이며 넘실대고 있다.
오밀조밀 연결된 전철을 번갈아 타고 오사카 성과 난바를 거쳐 숙소를 잡은 신세카이로 왔다.
토요일 밤의 거리는 크고 현란한 간판들 아래 왁자지껄했고
저녁 메뉴로 예약한 스시 집의 테이블로 안내받기 무섭게
우리는 서둘러 맥주부터 주문했다.
더웠고 지쳤으며 목이 말랐다.
'나마비루 산바이 쿠다사이'
( 생맥주 세 잔 주시압 ! )
둘째 날, 교토로 간다.
니혼바시 역에서 멀지 않은 유명한 우동집 '츠루동탄' 앞에는 일찍부터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사카에서 교토를 대중교통 만으로 돌아보기에는 아무래도 제약이 많아 여행사가 진행하는 ‘1일 버스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도쿄 이전의 옛 수도인 교토는 한국의 천년고도, 경주와 비슷한 분위기로 알려져 있었다.
교토 안에서 운행하는 총 1300여 대의 야사카(Yasaka) 택시 중 네 잎 클로버 마크를 단 차량은 고작 4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해당 차량을 발견하는 것을 대단한 행운의 징표로 여기고 보통은 로또 같은 복권을 사거나 한다는데 애석하게도 실제로 만나진 못했다.
새벽부터 퍼붓던 비가 다행히 잦아들었다.
아직 이른 오전,
전철 안을 빼곡히 채운 승객들과 섞여 우메다로 왔다.
우리의 을지로 입구와 비슷한
소공동에서 종각 쪽으로 걷다보면 은근히 마주칠 거 같은 그런 풍경들.
식단은 단출했지만 가격은 결코 그렇지 않았던 1800엔짜리 점심을 먹은 뒤
한 블럭 쯤 건너 상점가로 들어와 보니까
600엔 내외의 메뉴들도 즐비한 식당들이 잠시 속을 쓰리게 한다.
심지어 오후 다섯 시까지 175엔에 생맥주를 파는 주점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는 막힘없이 질주히며 오사카 시내를 벗어났다.
한큐 백화점과 주변 쇼핑몰, 그리고 돈키호테 등등을 돌며
아내 뒤를 따라 한나절 짐꾼 노릇을 했던 아들은
좌석에 머리를 기대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아들아 체력을 키워야 해
나중에 연애를 하게되면 이런 일들이 빈번할거야.
간사이 공항은 오가는 여행자들로 여전히 번잡했다.
게이트는 예정보다 40분 늦게 열렸고
평일의 내 출근시간과 비슷한 한 시간 반 만에
비행기는 인천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