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송지영의 거룩한 내딛음
간 밤의 기나긴 술자리가 남긴 중력 같은 몽롱한 기운에 젖어있던 토요일 오전,
불현듯 울린 한 통의 전화가 순식간의 정전처럼 나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소식을 전해 온 D의 목소리는 애써 호흡을 줄이며 숨을 고르는 듯 했으나
어쩔 수 없는 미세한 떨림까지는 말끔히 숨기지 못했다.
'S가 죽었다. 자살했대'
......
그날 무거운 적막에 휩싸인 빈소는 유달리 짙은 향 냄새로 가득했다.
제단 옆으로 물끄러미 주저앉은 유족들은 일제히 침묵할 뿐이었고
우리 중 누구도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죽음 직전의 S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섣불리 묻지 못했다.
적어도 오랜 시간 지켜본 S에게는
극단적인 결심을 할만한 어떠한 표면적인 징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별다른 개인사의 굴곡도 도드라지지 않았고 가정은 평온했으며
두 아들은 여느 집 또래들처럼 무난히 자라 성년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S와 가장 최근까지 연락했다는 지인 중 한 명이
S의 어린 조카도 불과 수개월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다며 탄식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이 난폭한 이별의 발단이라도 된 걸까.
남겨진 자들에게 지워진 자책의 무게가 녀석을 쉼 없이 막다른 구석으로 몰아간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만났던 천호동 술집 거리에서 그랬듯이
마주 보고 담배라도 피우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S는 더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늘 섬세하고 다정하며 쾌활했던 이면에 가려 어쩌면 삶의 마지막까지도 애타게 내밀었을 S의 손마디를, 그 아무도 잡아주지 못한 채 놓치고 말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끝 모를 좌절의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아직은 바람 속에 처연한 냉기가 녹아있던 2022년의 늦은 겨울,
몸살같이 뒤척이며 열이 오르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시간과 추억을 공유한 존재의 소멸은, 늘 그렇듯 아리다.
엊그제 출간 소식을 알린 송지영 작가의 책이 오늘 도착했다.
'오픈 런'을 약속했던 구독자로서 반갑게 포장을 뜯고 페이지를 넘긴다.
작년 이맘때쯤 브런치 스토리에서 송지영 작가의 [널 보낼 용기]에 담긴 첫 이야기, '꿈이라고 해줘요'를 열었을 때 나는 출렁이듯 달리는 광역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흔들리는 폰을 손에 쥐고 시큰해진 콧잔등을 이따금 꼬집듯이 눌러가며 이 기막힌 사연의 시작을 느리게 읽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필이면 집에서 가까운 건물 옥상을 찾아 너무나 이르게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고 그 길로 하늘의 별이 되어 버린 아이, 작가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감내해 가며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에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보듬고 개인의 상실이 아닌 모두의 과제로 세상에 내놓기 위해 글을 썼다고 했다.
문득 숨 죽여 흐르는 눈물과 함구로써 장례기간 내내 절망의 공간을 버티고 있던 S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그때로부터 3년이 좀 넘게 흐른 시간은 과연 그들 편에서 위로가 되어 줬을까.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 이입되어서인지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도 작가의 아이에 대한 서술은
여전히 먹먹하고 아쉽고 애통해서 쉽사리 눈을 떼기 어렵다.
용돈을 아껴 아이돌 그룹의 굿즈를 사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고
쉬는 시간이면 발랄하게 춤을 추는 일상을 더없이 충만하게 누렸으면 좋았으련만
아이는 너무나 이르게 보석 같던 열일곱 삶을 마치고 사랑하는 이들의 품을 떠났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가 가족들에게 남긴 '그리워 말고 추억해 달라'는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딸이 얼마나 영민했을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소중한 존재를 품에서 놓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슬픔'을 겪으며
삶의 의미마저 덩달아 잃었을 작가에게
이번 출간이 다시 살아가는 길을 탐색할 '용기'를 안긴 의미 있는 보상이기를 바란다.
분명한 건,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누구도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