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엔드〉 리뷰②—낭만의 방향

바꾸려는 열정 vs 지키려는 애착

by 우유니

유타의 외로움은 관계 자체에 몰입하게 해 그를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달라진 낭만의 방향


영화 〈해피엔드〉 속 청·소년은 망한 사회의 끔찍함을 직감하며 체념과 무기력을 공유하는 세대다. 이들은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굳이 감추지도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공허 속에서도 어떤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여전히 욕망을 품고 반항하기도 한다. 이는 영화 속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실 세계의 청·소년 세대의 이야기다.


영화는 우리 세대의 꿈틀 거리는 몸부림을 그린다. 몸부림이란 체념과 희망의 중첩, 포기와 시도의 중첩 위에 발생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체념 속에서도 아직 희망을 폐기하지 않고, 포기 중임에도 아직 시도를 끝내지 않는다. 무기력을 학습한 유타와 코우에게도 여전히 낭만이 남아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낭만은 무언가를 바꾸려는 열정이거나, 무언가를 지키려는 애착이다.


유타와 코우는 오래도록 막역한 사이였다. 하지만 어른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서로 불협화음을 내며 관계가 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낭만을 품고 있다. 다만 이제 그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유타는 음악을 통해 단단해진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끝까지 붙잡고 싶어 한다. 코우는 차별받는 현실을 마주하고, 현실을 바꾸는 데 자신의 에너지를 쓰려 한다. 유타는 관계를, 코우는 권리를 지키려 한다. 유타는 기억을, 코우는 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유타는 친밀한 유대를, 코우는 사회적 연대를 바란다. 유타는 개인적 쾌락을, 코우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움직인다.


낭만의 방향

유타 vs 코우

기억 vs 미래

보존 vs 변화

관계 vs 권리

유대 vs 연대







코우의 성장의 방향:
희망하기

영화 속 일본 사회에서는 이주민이 여전히 ‘비국민’으로 취급되며,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되어 있다. 코우 역시 한국계 재일 교포로, 일본에 4대째 살고 있음에도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코우는 단순히 적응하거나 체념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 후미의 정치적 행동을 주목하며 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에 서서히 감응한다. 코우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행동하기 시작한다. 제도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불평등한 현실에 맞선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며, 그 희망을 실천으로 옮기는 인물로 성장한다.





유타의 성장의 방향:

홀로서기


유타는 일본 국적자이자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과 무관하게, 그는 만성적인 고독과 무기력을 느낀다.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 경직되고 약화된 사회적 상호작용, 변하지 않는 세상의 권태, 규범에 의한 통제와 억압 등……. 개인의 자아를 쥐고 뒤흔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유타는 사회의 부조리에 정면승부 하기보다는 친구들과의 공동체에 의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친구들이 떠나가고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존은 근본적으로 존재적 불안과 맞닿아 있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자기 외부 어딘가에 의존하는 즉시 존재는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의존하던 형상에 금이라도 가면 그 틈으로 쉽게 소외가 침투하고 존재가 공격받는다. 유타의 외로움은 관계 자체에 몰입하게 해 그를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그 취약성은 나도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듯, 마치 내 것인 듯 아름답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코우의 성장으로 유타는 흔들리고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유타를 성장하게 했다. 극 초반, 육교에서 유타는 코우에게 외롭다고 말하며 함께 가자고 장난스레 조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마지막 육교 장면에서는 같이 가자는 코우의 제안을 유타가 거절한다. 분리와 소외를 불안해하던 그가 그 불안을 직면하고 통과해 나가는 모습이다. 그는 홀로서기를 연습하며 성장한다.





방향이 달라도 가끔 함께 걷기


코우와 유타는 낭만의 방향이 갈라지는 길목에서 충돌했고 지진이 난 듯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이는 자기 자신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각자의 방향을 찾고 나아가기 위해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과정이었다. 각자가 성장하는 과정이면서, 코우는 유타의 성장을, 유타는 코우의 성장을 목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코우의 변화 추구가 기존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이 갈 길을 찾아가면서도, 유타와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를 보인다. 유타의 홀로서기가 곧 이별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음악과 우정을 붙잡고 싶어 하고, 그렇기에 코우를 위한 희생도 가능했다. 그에게 홀로서기란, 나의 낭만과 타인의 낭만의 균형을 이루며 관계 맺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