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낭만의 슬픔, 흩어졌기에 아름다움
음악 연구 동아리 친구들은 화재 위험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동아리의 사운드 장비를 학교에 빼앗긴다. 현실과 낭만은 그렇게 삐거덕댄다. 친구들은 빼앗긴 낭만을 다시 탈환하고자 했다. 교무실에서 창고 열쇠를 훔쳐 음악 장비를 다시 훔친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타협이 필요했고, 서브우퍼는 포기하고 그대로 남겨둔 채 도망쳤다.
유타는 두고 온 서브우퍼를 가져오고 싶어 한다. 톰, 아타, 밍은 각자 갈 길에 발을 막 내딛는 중이었고 유타와 동행하지 않는다. 다 함께 몰래 행동했던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웬일인지 정면돌파다. 유타 혼자서 교무실에 당당하게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열쇠를 꺼내 유유히 걸어 나온다. 이는 유타에게 홀로서기란 질서와 처벌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내면이 크게 흔들리는 일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함께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혼자라도 사라져 가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정서적 유물을 회수하고자 하는 몸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다. 코우가 서브우퍼를 옮기는 데 동참한다. 그 크고 무거운 서브우퍼를 옮기는 길은 순탄치가 않았다. 계단과 오르막길을 유타와 코우가 함께 극복하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가는 도중 코우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코우마저도 끝까지 동행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유타는 혼자 남겨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레를 덜덜 끌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했건만, 새 아지트에서 유타를 유일하게 맞아준 건 야속하게도, 전에 가져다 두었던 음악 장비들이 버려진 쓸쓸한 모습뿐이었다.
스피커는 담당 음역대로 종류를 나눌 수 있다. 접두어 ‘sub-’는 ‘아래’라는 뜻인데, 서브우퍼(sub-woofer)는 일반 우퍼 스피커보다 아래의(낮은) 음역대를 담당하는 스피커다. 일반적인 스피커에서 제대로 내기 어려운 20–99 Hz 대역의 극저음을 재생한다.
서브우퍼가 담당하는 이 낮은 음역대에 해당하는 악기는 베이스 드럼, 더블 베이스, 콘트라바순, 튜바 등이 있다. 자연적인 소리로는 천둥, 총소리, 폭발음, 지진 등의 우르릉 하는 깊고 낮은 진동 소리를 상상하면 된다.
일반적인 지향성 스피커는 소리가 나아가는 방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스피커의 설치 각도가 중요하다. 반면 서브우퍼가 담당하는 극저음은 파장이 길어 귀로 방향을 구분하기 어렵기에 무지향성에 가깝다. 때문에 서브우퍼의 사운드는 스피커의 방향(각도)에 의존적이지 않고, 공간 전체에 진동과 함께 울려 퍼진다. 다만 서브우퍼의 강한 공명 때문에 자칫 소리가 왜곡되거나 증폭되어 소음으로 변할 수 있기에, 설치가 까다로운 편이며 놓을 자리를 신중히 택해야 한다.
이들의 우울, 쓸쓸함, 자포자기, 공포, 꿈, 이상, 희망, 향수, 욕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은 마치 서브우퍼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낮은 음역대처럼, 포착하고 명명하기가 어렵다. 비가시적이지만, 대신 온몸으로 온전히 감각할 수 있다. 순수한 꿈, 감정, 낭만을 나누는 청춘의 친밀함은 그 음역대처럼 특별한 목적도 방향도 없다. 다만 함께 무겁고 진하게 공명한다.
이 친구들은 점점 가치관과 욕망이 분화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다. “유타를 대학에서 만났어도 우리는 친구가 되었을까?”라는 코우의 질문에 톰은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른이 되어갈수록 서로 주파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친구들이 점점 흩어지면서 공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그 음역대도 옅어진다. 그렇게 공명을 ‘졸업’한다. 하지만 공명했던 흔적이 모두에게 졸업장처럼 남을 것은 분명하다.
혼자 남아 서브우퍼를 짊어진 유타는 버려진 잔해 속의 음악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잔해 속에 녹아내리고 있는 순수한 꿈, 정동, 시절의 우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유타는 실제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듯 공명을 완전히 졸업하기보다는, 그 공명이 있던 자리에 남은 흔적이 주는 쓸쓸함을 끌어안기를 선택한 듯 보인다. 결국 집착하거나 고정하지 않고 덧없음, 무상(無常)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피엔드〉는 그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의 공허함과 슬픔, 그리고 그 쓸쓸함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라졌지만, 사라졌기에, 아름답다. 사라짐에 대한 애틋함 자체가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방식, 모노노아와레*의 미의식이 여기에 담겨 있다.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일본의 전통적 미학 개념으로, 사물이나 순간이 사라질 때 느끼는 애틋함과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말한다. 변하는 것, 덧없는 것에 마음의 울림을 느끼는 감수성, 미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