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잘 먹고 잘 싸고 잘 페미니즘 해야 함

『국어, 수학, 페미니즘!』을 읽고

by 우유니


아무리 봐도 페미니즘은 교양이 아닌 필수다.
인간이라면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잠을 자듯이,
인간이라면 페미니즘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가나다라마바사처럼
덧셈 뺄셈처럼 모두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국어, 수학, 페미니즘!』은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교육 실천 기록이다.
이 책은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다른 교과처럼 당연할 때,
10대들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성장,
양육자 및 교사들의 반성과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신화가 아니다.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변화의 실현가능성을 밝혀주는 여정이다.

세상에 희망이 남아 있는 거냐 싶은 나에게도
희망을 완전히 놓지는 말자고 말해준다.


내게 있어 이 책의 제1 미덕은
페미니즘의 근본적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었다는 점이다.

사회 변혁과 같은 커다란 목표가 아니라도
개인의 삶에 있어 페미니즘이
왜 ‘모두에게’ 필요한지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왜 필요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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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➊ 페미니즘은 사고력이다

➋ 페미니즘은 말할 수 있게 한다

➌ 페미니즘은 에너지다









페미니즘은

사고력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사유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중요도 ★★★★★★★★★★)

페미니즘 공부는 순응적 인간에서 벗어나
사유하는 인간이 되는 과정이다.


성교육은 민주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치 교육이다.
도덕으로 존재를 억압하는 체제는
비판과 사유가 없는 순응적 인간을 만든다.
—118쪽


깊은 사유는 표면 너머를 탐색하며,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건져 올려
해체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깊은 사유의 씨앗이 된다.
이 씨앗을 생각의 모든 영역에 골고루 뿌려
심어야 한다. 씨앗이 심어진 곳곳에서
투시 능력을 지닌 렌즈와
껍데기를 부수는 망치가 열매로 맺힌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진짜 ‘생각하기’가 시작된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을 의심하며
놓쳤던 현상과 세계의 이면을 포착하고,
껍데기를 두드려 가려진 구조를 파악하고
기존의 틀과 질서를 흔들 수 있게 된다.


그들 자신의 언어로 사회적 불평등,
그로 인한 사회 및 학교 제도, 구조,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질서에 질문하고
변화를 만들어갈 능력을 키운다.
—64쪽


나는 생각이 없어서 행복한 바보보다는
(이 경우 보통 타인에게 불행을 가져다 줌)
차라리 불행한 의문을 품더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처맞을 거라면 처맞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싶다.

처맞고 와서 애먼 데 화풀이하고 싶지 않다.
처때리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고 싶다.

처맞더라도 날카롭게 째려보면서
침이라도 뱉고 싶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폭력적이었다면
그 사실을 모르고 멀뚱멀뚱 있고 싶지 않다.

정확히 성찰하고 폭력을 거두고 싶다.


나는 나를 속이고 싶지도 않고
다른 누구도 속이고 싶지도 않다.

가능한 한 실수를 줄이고
가능한 한 똑바로 보고 싶다.

내 세상의 정의와 의미와 가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선택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치졸하게 배반하고 싶지 않다.

모두가 보기에 멋있기는 어려워도
스스로 보기에 멋없는 사람이 되기 싫다.


페미니즘 혁명의 기반은
“이원론을 파괴하고
지배체제를 뿌리 뽑는
문화적 변혁”이다.(벨 훅스)
—240쪽


허상에 속으며 꽃밭의 꼭두각시로 살 것인지,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자기 의지를 따르며 살지

선택하라고 하면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아니면 통 속의 뇌처럼 속는 인생 살게 된다.









페미니즘은

말할 수 있게 한다



말로 표현되지 못했던 경험이
그저 기술, 설명되는 것만으로 답답함이
조금 해소된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언어는 흐릿하던 세계의 해상도를 높여준다.
사유는 그러한 언어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언어를 준다.

길리 슈트를 걸친 듯 태연하고도 태평하게
사회에 꼭꼭 숨어있는 부조리와 불의를
언어라는 핀셋으로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즉 페미니즘 공부는 언어를 얻는 일이며,
이는 곧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재구성할 힘을 얻는 일이다.


“페미니즘 교육을 받고
성차별 상황의 불쾌함을 표현할
언어가 생겼다”고 만족스러워한다.
—134쪽


그런데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환경,
두려움은 우리의 말을 가로막는다.
내 생각과 감정이 유효한 것인지,
꼭 말해야 하는 중요한 것인지 등
필요 이상의 자기 검열 굴레에 빠지게 된다.
내가 불편을 감수하고 침묵하면
공동체는 현상 유지한다.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용기를 내
다른 가능성을 대화의 장에 끌어오는 순간,
문제 삼아지는 것은 실제 문제가 아닌
원래부터 가짜였던 평화를 깨뜨린
바로 내가 될 수 있다.


동백작은학교 학생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는
불편한 지점을 비교적 편하게 지적할 수 있다.
서로 이해가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함께 페미니즘을 배운 경험이 있는 것으로도
대화 시도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공동체의 문화적 토양에
페미니즘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토양은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안전장치다.

그 안전장치는 물 먹는 하마처럼 우리의 두려움을
쪽쪽 흡수해주어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도록
세상 모든 곳에 이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안전한 환경이 제공될 때
학생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141쪽


상민은 말하는 쪽을 택했다.
—139쪽


또 페미니즘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속에 생각을 움직일 공간이
남아 있을 것이란 기대가 가능하다.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릴 수 있고,
내가 틀리고 상대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믿는
무쇠 방패를 두른 석상 앞에서는
누가 맞고 틀린 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상대가 다른 관점, 다른 가능성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기와 다른 얘기도 진지하게 들을 것이라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우리는 말을 시작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에너지다



배움은 즐겁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관점이 확장될 때의 독특한 기쁨이 있다.
하지만 아는 게 다가 아니다.
머리로만 알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면,
그 얼마나 공허하고 무력한 앎인가?
맛난 걸 먹고 도로 토해내는 꼴이다.


실천은 앎보다 더 즐겁다. (물론 가끔 힘듦)
앎을 현실 세계로 확장하는 경험은
감각의 해상도를 높여주고
더 많은 앎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질문, 일상의 비판과 저항, 연대, 공적 발언,
대안 타진, 연구, 교육, 기록, 시위·집회,
조직화 및 공동체 활동, 재능 참여 등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정의롭지 못함’을 해소하려 움직일 때
얻는 특유의 기쁨이 있다.
적어도 비굴한 항복의 패배감은 면할 수 있다.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향성을 구성하고
자아를 통합하는 데 실천은 중요하다.


페미니즘은 이론이자 실천이다.
현실을 아는 일과 현실을 변화시키는 일이
분리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자극하며,
동시에 성차별적 사고방식이
‘정의롭지 못함’을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해소하려는 실천을 지속해야 한다.
—47쪽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페미니즘을 배운 학생들은 이러한 감각으로
많은 것을 이해하고 경험하며 실천한다. (…)
추구하고 지키는 가치들이
삶에서 즐거움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며,
바로 이 감각이 동백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건네고자 하는 요체다.
—74쪽


균열과 변화는 실천 자체보다
더 즐겁고 짜릿하다.
그런데 균열을 내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앎이 힘을 가지려면 움직여야 한다.
신체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듯,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서
미래의 변화를 지금 여기로 끌어당기는
힘이 축적되고 단단해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함께
크고 시끄럽게 움직일수록
더 큰 힘이 모아지고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


배움은 실천을 추동하고,
실천만이 변화를 이끌어내며,
그 변화 속에 다시 새로운 배움이 있다.
이 순환은 단선적인 길이 아니며
지도와 지름길이 없고 긴 시간이 필요한,
대화하고 조정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다만 우리가 이 흐름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야만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면서
학생들은 페미니즘적 감각으로
일상에 균열을 만들어간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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