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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과망상사이 Jul 24. 2023

돌아온 탕자

아버지의 얼굴

“분멩히 가방에 있었다아입니까! 지가 어따 물건 흘리는 짓은 즐대 안 한다니까요!”


깡촌에서 태어난 게 싫었다. 지긋지긋한 논밭, 소똥, 달걀, 그리고 수직으로 내려와 나의 뺨을 때리던 강렬한 햇빛!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루빨리 상경하여 차가운 대도시의 남자를 꿈꾸는 내 피부를 햇빛 따위에 맡길 수 없지, 선크림 한 통을 일주일 만에 쓰던 그런 놈이었다 나는. 조그만 브라운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울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였다. 롯데타워를 비롯해 하늘을 찌르는 듯한 마천루들, 그사이 혹은 속에서 돌아다니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신사들, 휘황찬란한 클럽 사이키 조명 아래를 감싼 광란의 풍광은 소똥 냄새로 가득한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내 평생을 이곳에 바칠 수 없다. 흙먼지 날리는 전원생활을 마치고 빨리 서울로 가야 한다. 강남 한복판에 나만의 오피스를 마련하여 럭셔리 비즈니스 맨이 돼야 한다. 나의 상경계획은 책상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시골 소년이 그만한 돈이 어딨으랴. 밭을 갈고, 소한테 사료 주고, 달걀을 모아 오는데 떨어지는 용돈은 선크림을 사기에도 부족하다. 누구를 ‘탓’ 할까.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가족들 ’탓‘을 하기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내 품에서 새근새근 코 고는 막내를, 모를 다 심고 돌아오는 길에 새참을 한 손에 들고 내 땀을 닦아주는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사랑한다. 아빠와 나는 여느 농촌의 부자처럼 차갑고 숨 막히는 기운이 돌다가도 서로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불을 지펴주는 그런 관계다. 그날도 어김없이 치약의 마지막 덩이를 빼내는 것마냥 선크림 통과 한탕 하는 날이었다. 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아빠가 얼굴에 핏기가 쏠린 내 앞에 카드를 던졌다.

- 계약금 천에 이백 더 늫읐다.

가족 모르게 상경을 꿈꿨다는 것을 아빠한테 들킨 당황스러움과 그것을 나 몰래 서랍을 뒤져 알아냈다는 아빠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기쁨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이었다. 미리 점찍어둔 강남 한 오피스텔의 사무실 계약 건과 관련해 오피스텔 주변 복덕방으로 다이얼을 눌렀다.


서울에 도착하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이 클럽이었다. 정말 딱 계약금만큼 남길 정도만 놀았다(고 생각한다). 테이블비 오십, 양주값 오십(칠십이었나?), 안주는 적당히 이십, 아가씨 출장비 십오(이십이었나?), 삐끼 놈 팁 십이었다. 50도가 넘는 위스키는 새참에 딸려 온 막걸리로 갈증을 풀던 나의 취기를 감당하기에 너무 강한 상대였다. 누가 데려왔는지 모를 모텔에 널브러져 있는 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가방을 아무리 털어도, CCTV를 몇백 번 돌려도, 아가씨들을 추궁해도, 룸에 들어 소파 틈새, 테이블 아래, 가라오케 기계 버튼 사이사이를 뒤져도 카드를 가져간 놈과 카드는 찾을 수 없었다. 카드에 남아있는 건 ‘꼴랑’ 이백이었다.

-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카드를 잃어버렸든지 어쨌든지 간에 현재 계좌 잔고는 없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여기 계약하려는 사람들 많은데 귀찮게 굴지 말고 나가세요!


집으로 향하는 시골 버스 안의 공기는 허무맹랑한 꿈에 좌절한 촌놈이 여기 있다는 것을 놀리기라도 하듯 얄밉고 을씨년스러웠다. 대문을 열자 엄마가 울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의 어깨에 올린 나의 턱은 굳어 있었고, 땅을 향한 나의 눈은 진작에 말라있었다. 아빠 방에 노크를 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선크림 따위로 지켰던 새하얀 내 얼굴과 까무잡잡하고 푸석한 아빠의 얼굴이 마주했다. 무릎이 저절로 고꾸라졌다.

- 아빠, 아이다… 진짜, 카드 째삔 그 머슴아가 악질인 거지, 카드 떨군 내 ‘탓’이가? 이기 다 내 ‘탓’이가… 내는 진짜 모르겠다…

그 순간 아빠의 손에 들려있는 카드와 내역서가 보였다. 집으로 오는 사이 분실 신고가 접수돼 벌써 도착한 것이었다. 아빠는 나를 한참 내려 보다 조용히 카드와 내역서를 내 손에 쥐어 주곤 방문을 닫았다. 여러 금이 가 있는 카드와 유흥비만이 찍혀있는 내역서를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깡 촌집, 클럽 복도와 룸, 부동산 중개소까지 오갔던 발자국은 내 거 하나뿐이었다.


참고)

<멋진 헛간>(오대천왕) 가사

One, Two, Three, Four

걸음마 떼고 젖병을 꽉 쥐고선

하룰 멀다 하고 주린 배를 채웠지

그 작은 엉덩이는 쉴 틈이 없었고

토닥이는 손길에 또 욕심은 부푸네Hey Hey

못 찾을 외딴 곳에 멋진 헛간을 지었지

발 디딜 틈도 없이 나름 가득 채웠는데

어느 날 문을 여니 이런 도둑이 들었네

Holy Mama Mama Papa

내 두 눈으로 봤어요

세차게 담았는데 다 텅 비어 있네요

Be Born Again gain gain gain

And gain gain 너무 늦었나 봐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누가 날 받아 줄라나요 Hey Hey Hey

저린 다릴 부여잡고 난 슬피도 울었어

저 해가 떨어지면 도둑을 잡아야 해

주위를 둘러보다 바닥을 훑어보니

오갔던 발자국이 내꺼 하나뿐이네

Holy Mama Mama Papa

내 두 눈으로 봤어요

세차게 담았는데 다 텅 비어 있네요

Be Born Again gain gain gain

And gain gain 너무 늦었나 봐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누가 날 받아 줄라나요 Hey Hey Hey

엄마, 아빠 이기 다 내 탓이가?

내는 잘 모르겠다 내는 진짜 모르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또 후회를 해야 해

어디서부터 망한지를 몰라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해야 해

근데 다시 또 생각해봐도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

아빠 내가 그 탕자인가 봐요

And You'll Say No No No No No No No

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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