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나라에서 나로 산다는 것

by 오유나

나는 모든 나라를 살아본 건 아니다.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자라왔고, 이 사회가 가진 고유한 문화와 분위기를 완전히 객관화해 바라보긴 어렵다. 나는 언어학자도, 문화인류학자도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철저히 ‘한 사람의 생각’ 일뿐이다. 어쩌면 많은 일반화의 오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음 한편에 늘 맴도는 질문들이 있다.


왜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에 이렇게 민감할까? 왜 타인의 삶에 이토록 많은 관심을 가질까? 댓글 몇 줄만 봐도 알 수 있는, 흔히 ‘냄비 근성’이라 불리는 집단적 반응성. 누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면 순식간에 몰려가 돌을 던지고, 끝도 없는 논쟁과 비난의 말들이 쏟아진다. 물론 이 안에는 정의감도, 책임감도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진실이 아닌 감정에 휘말려 한 사람의 삶이 너무 가볍게 소비되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공인의 능력을 평가하면서도, 그 사람의 사생활까지 모두 들여다보며 판단한다. 때로는 그 경계가 너무 모호해서, 마치 높은 위치에 오른 순간부터 ‘인간’이 아닌 ‘공적 자산’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건 연예인이나 정치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SNS라는 작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일상을 나누고, 때로는 유명세를 얻고, 때로는 낯선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내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과거의 어떤 실수로 인해 누군가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면 어떡하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항상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생각도 든다. 그게 내 통제 밖의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것도 나의 몫일 수 있겠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며 오점 하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실수한다. 다만 그 실수를 알고 사과하느냐, 아니면 모르고 지나치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물론 잘못을 덮으려는 시도나 무책임한 태도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불완전함조차도 인정받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무서운 건 진실이 무시될 때다. 사람들은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자극적인 정보에 더 반응하고, 정확한 맥락보다 짧은 문장 하나로 판단을 내린다. 정작 진실은 복잡하고, 당사자 간에도 입증하기 어려운 것일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그 순간, 그것은 동시에 인기를 얻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일상이 무너지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회사에서의 어색한 대화를 메우기 위해, 혹은 가까운 사이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연예인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닐까? 해외에서도 가십은 존재하지만, 우리는 유독 타인의 실패에 민감하고, 그에 대해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건 단지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관심이 많은 사회이기 때문일까?


그래서일까. 이런 사회일수록,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일수록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해졌다. 외부의 시선과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지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개인의 기준과 삶이 존중받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국가 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일수록, ‘국민’이라는 집단보다 ‘개인’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외부의 소란스러운 소리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결국 ‘나’뿐이니까. 나의 삶, 나의 가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자주 다짐한다.


혹시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워 행동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까? 욕을 먹을까 봐, 실수할까 봐, 망가질까 봐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상황이 오게 된다면,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거나, 나를 지키기 위해 정당하게 대응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시선’보다는 ‘나’를 향해 살아가고 싶다. 흔들림 없는 기준을 가지려 노력하고, 실수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게 이 사회에서, 이 나라에서, 나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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