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는 여백이 많다.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다. 문장을 쓰다 말고 창밖을 보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처음 문장을 다시 고치곤 한다. 그 시간들이 내 글의 절반을 채운다. 나머지 절반은 망설임이다.
언젠가 누군가 말했다. “창작이란 건 아무도 없는 방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 누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계속 말하는 거야.” 듣는 사람이 없더라도 쓰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그 말이, 내게는 꽤나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은 내 글이 너무 하찮게 느껴져서 다 지워버리기도 했고, 어느 날은 이상하게 눈물이 나서 글 쓰기를 중단한 날도 있다. 글은 감정의 무늬로 짜인다. 반듯하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아름답다.
그런데, 내 그런 문장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인터넷 어딘가에 떠돌고 있는 걸 보면…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누가 읽었다는 건 좋은 일인데, 내가 썼다는 건 사라져 있다. 누군가 “좋아서 퍼왔어요”라고 했지만, 이름도, 맥락도, 출처도 지워져 있다.
좋아서 가져가도 되는 건가? 나의 시간과 마음이 담긴 것조차?
이야기를 훔쳐가는 시대다. 무단 인용, 표절, AI 크롤링. ‘도움받았다’는 말 뒤에 감춰진 어떤 무례함.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글을 싫어한다.
아무 데나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문장들. 감정 없이 다듬어진 고운 글. 그런 건 나는 못 쓰겠다. 나는 뾰족하고, 지우개 자국이 남아 있는 문장을 쓴다. 그래야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글을 쓸 때 나는 마치 동굴에서 노래하는 기분이다. 메아리가 돌아오는 건 오래 걸리고, 대부분은 침묵이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인간의 삶은 거기서 거기니깐. 그래서 나는 계속 쓰고, 다시 고치고, 또 쓴다. 누군가가 내 글로 작은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해서.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좋아요 눌렀어요.” 그건 누가 썼는지 몰라도 괜찮다는 말과 비슷하다. 좋아요는 감탄이고 반응이지만, 존중은 멈춤이다. “이건 누구의 글이지?” 하고 한 번 생각하는 마음. 그게 글쓴이를 사람으로 만드는 유일한 반응이다.
어쩌면 저작권이란 건, 그런 작은 멈춤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법은 보호를 말하지만, 나는 기억을 원한다. 누가 썼는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그걸 묻는 질문 하나면 족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쉽게 얻고 있다. 그래서 그 무게가 사라진다.
나는 유명하지 않고, 내 글은 많이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설령 내가 쓴 글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더라도,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라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노래처럼 들렸기를 바란다. 낡은 카세트테이프처럼, 지지직거려도 나의 시간과 마음이 담긴.
끝으로 이 말을 덧붙인다. 누가 내 문장을 가져가더라도, 이건 누군가의 시간이고, 흔적이고, 고백이니까 존중해 달라고.
좋아요는 숫자다. 존중은 태도다.
그리고 나는, 태도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