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들에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

by 오유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며칠 전, 꿈속에서 외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평소처럼 과묵하셨던 외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셨고, 손짓을 하셨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건넨 단 한마디.
“고맙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엉엉 울 뻔했지만, 겨우겨우 참았다.
하지만 그 꿈은 너무도 선명했고, 너무도 따뜻했다.
외할아버지가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위로가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처음 예감한 건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꿈이었다.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나는 꿈에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을 보았다.
너무도 생생했고, 그 꿈속에서 느낀 슬픔은 현실 그 자체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잠에서 깨자마자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꿈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위암을 앓고 계셨다.
그 꿈은 마치 나에게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사랑을 더 표현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할아버지께 다정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고,
외할아버지가 나를 찾거나 말을 걸어오실 때면
가끔은 무뚝뚝하게, 차갑게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외할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말끝마다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그 모습이,
지금은 참 많이 그립다.


그 소중함을, 그땐 잘 몰랐다.


꿈을 꾼 후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짧게나마 남은 시간 동안 외할아버지께 더 잘해드리려고 노력했다.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게
지금 돌이켜보면 참 다행스럽다.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셨던 걸까.
아니면 그저, 더는 아프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


어느 날 가족을 한 분 한 분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를 주셨다.


그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 사람씩 차례로 부르시고,
작별의 인사를 건네셨던 그날.

나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게도 마지막 말을 건네셨다.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것을 전하던 그 순간,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신 이후 한동안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러다 10년이 흐른 지금,
마치 조용한 인사처럼,
“고맙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꿈에 오셨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이다.


그 꿈을 꾼 이후 며칠 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 꿈은 나에게 너무나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꼭 믿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이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그들이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문득,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
내 곁에 아직 함께해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자주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돌아가신 분들에겐 더 이상 전할 수 없는 말과 마음이,
살아 있는 이들에겐 아직 도달할 수 있으니까.

후회 없는 말, 후회 없는 행동을 하기 위해
순간의 감정이나 피곤함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다짐을 오늘, 다시 써 내려간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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