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는 날

by 오유나

한때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내던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혹은 더 멀리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원에서
당연하듯 자주 마주치며 그렇게 20년을 훌쩍 넘긴 친구들이다.


그런데 요즘, 문득 그들과 이야기할 주제가 사라져 버렸다.
만나도 예전 이야기 외엔 할 말이 없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시간을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흐르지 않는다.


결혼한 친구, 아이가 생긴 친구,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까지.
모두 각자의 사정에 바쁘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연락 한 통 먼저 건네는 것도 조심스럽다.

"잘 지내?"라는 말이 괜히 멀게 느껴지고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이
상처가 될까 봐 깊게 묻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구나.
그래서 더 이상 같은 주제를 나눌 수 없는 거구나.


그래서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걸까.
속상해하지 말라고.

지금 나에게 맞는,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연인들이 또 있으니까.


그들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가볍게 떠오른 생각 하나로도 한참을 웃고 떠든다.

어릴 땐 몰랐던 대화의 즐거움이
지금은 또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그 시절의 친구가 그립고,
괜히 마음이 아파
생일이라는 핑계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한 번 더 건넨다.
"생일 축하해. 잘 지내지?"
그 한마디에, 오래 남아 있던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진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절 우리가 참 애틋했기 때문에.
관심사나 가치관이 맞아서가 아니라
그냥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맺어진 인연.
그게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
이해해 보려 애쓰기도 하고,
비교에 지쳐 거리를 두기도 하고,
삶의 우선순위에 밀려 못 만나기도 한다.


부모님을 보면 안다.
시간이 지나면 금전적인 여유,
건강, 가족의 사정 때문에
또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람이 생긴다.


그래서 시절인연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관계 중심적으로
서로의 사정과 상황을 지나치게 고려하느라
정작 ‘사람’으로 만나는 일에는
소홀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래도, 지금의 내 시절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다시 행복을 느낀다.
대화가 즐겁고, 걱정이 잊히고,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들.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어떤 인연은 흐르고,
어떤 인연은 고이고,
또 어떤 인연은 다시 만난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나는
언젠가 또다시 스쳐갈 오늘의 사람들과,
잠시 멀어진 그 시절의 친구들과,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내일의 인연들에게
따뜻한 마음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다.


이 인연들이 흘러가는 동안
너무 지치지 않게, 너무 무뎌지지 않게
잘... 잘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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