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상적인 싸움의 방법에 대하여

by 오유나

연애를 몇 번 거치며

나는 ‘싸우는 법’을 조금씩 배워왔다.


이게 이상적인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예전보다는,
조금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쌈닭’이라는 말을 친구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스스로 그런 기질을 느낀 적은 있다.


상대를 이기고 싶어서라기보단
내 말이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싶은 욕망이 컸다.


아마도
한때 너무 말이 통하지 않았던 관계에 지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 처음 시작한 연애는 많이 답답했다.


연하였던 그는 단 한 번도 내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일도 없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런 말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 싶었는데
끝내 그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입을 열려고 애썼고
제발 너의 언어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혼자 말하고 있는 기분으로 관계를 이어갔다.


두 번째 연애는 정반대였다.


연상이었던 그는
사귄 지 이틀 만에 싸움이 시작됐다.


말 그대로 주 3회 다툼.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부딪혔고
어제의 상처를 오늘 다시 꺼내 싸웠다.


감정은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갔고
나는 점점 눈치를 보게 되었다.


싸운 다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다.


출근길에는
싸운 기억을 억지로 밀어내며 하루를 시작했다.


싸움은 우리를 바꾸지 못했고
그저 익숙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감정은 남았지만
표현하지 못한 채
둥글게 깎여갔다.


세 번째 연애에는
이전 관계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상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서운함을 이야기했다.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쌈닭 모드’가 발동됐다.
나는 날카로운 말투로 반응했고,
대화는 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설명했다.

공격하기보단 풀어내려는 태도였다.


그는 내 말투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솔직하게 전했고
그 안에 어떤 의도도 없었음을 덧붙였다.

그는 자꾸 물었다.
“그때 기분이 어땠어?”
“뭐가 힘들었어?”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알고 싶어.”


그런데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감정이 흐릿했기 때문이다.

‘서운했어’,
‘그냥 좀 슬펐어’
그렇게 말하고 나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감정 속에서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내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은
결국 우리 사이에
작은 틈을 남겼다.


네 번째 연애는 조금 달랐다.

그는 처음엔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나에게 맞추고, 조용히 수용하는 편이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 바랐다.


서로 조율해 나가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날카로운 말을 던지기도 했다.


몇 번의 다툼 끝에
그는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 놀랐지만

그 순간 나는
그가 감정을 가진 ‘주체’라는 걸 느꼈다.


그는 말했다.
“계속 싸우기만 하면 뭐가 바뀌어?
서로 맞춰야지.
서운한 것만 말하면 끝이 없어.”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감정을 던지는 싸움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그 사람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돌아보면 나는 싸움을 배운 적이 없다.

막내였고 가족 안에서도 주로 침묵하는 사람이었다.

화내는 엄마,
말없는 아빠.

감정은 표현하기보다는
숨기는 것이라고 배웠다.


사과하지 않는 어른을 보며
서운함과 경멸을 동시에 느꼈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싸움’이 어떤 것인지는
배우지 못했다.


연애를 통해
감정이 얽힌 충돌을 겪었고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해 왔다.


여전히 감정을 다루는 건 어렵고
싸움이 두렵기도 하다.


내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리 있게 설명하는 일은
지금도 자주 막막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날 땐
충돌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중요한 건 그 충돌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마음이 아프고
감정 소모가 크고
말로 다 담아내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더
성숙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다.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라는 게
참 다행이다.


싸움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시작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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