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사람 말이 늘 맞다고 생각했다

by 오유나

나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가스라이팅 한 적이 있을까?


삶을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경험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내게 던진다.

“혹시 나도 누군가를 가스라이팅 한 적이 있을까?”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미묘하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타인을 조종하려고 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저 내 의견을 말한 것뿐’이라는 말속에서도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내가 그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한 연인이 나를 가스라이팅 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이 ‘아주 약한 강도의 가스라이팅’이었다고 느낀다.


나는 생각이 유연한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고, 나쁘게 말하면 팔랑귀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고, 문제 상황이 생기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의견을 구해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려 한다.

완벽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난 가까운 친구나 연인에게 늘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듣는다.
그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진 않지만,
참고하지 않는 건 또 어렵다.


그때의 연인은, 내가 많이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우상 같은 존재였고,
그가 가진 성향 중 내가 닮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지적이었고, 냉철했으며, 동시에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 자존감을 끌어올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를 때도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느껴지면 따랐다.

우리는 어떤 주제든 가감 없이 토론할 수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내가 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의 삶의 패턴에 맞춰 살게 되었고,
내가 느낀 불편함보다 그의 주장이 우선시 되었다.


나는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사람을 더 알고 싶어서
그에게 아침마다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아침엔 질문을 5개까지만 하자"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가 예민한 날이면 그의 표정, 말투, 몸짓 하나까지
내가 조심해야 했다.
그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의 감정보다 그의 감정을 우선시해야 했다.


내가 불만을 이야기하면
단지 ‘느끼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단
‘왜 그런 감정을 가지는지’ 납득 가능하게 설명해야 했다.
그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 감정을 가질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조차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설득하지 못하면, 느끼지 말아야 할 감정이 되었다.

그건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우리 둘 다의 책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자격지심을 갖게 되었고,
존경하던 그의 앞에서 나의 무지함이 드러날 때마다
‘이런 것도 몰라서 실망했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그가 있었기에 내가 더 단단해졌다고 믿었다.
실제로 단단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의 말들 사이에
내 감정과 마음이 점점 가로막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했던 건 아닐까?
그저 솔직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내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진 않았을까?


가스라이팅은 거창하거나 노골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말들 속에서
어느 한쪽이 자기감정을 잃어간다면..
그건 충분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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