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리듬이 흐려진다

변해가는 꽃들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기후위기 속 기억의 계절

by 오유나

어느 순간부터 꽃과 열매, 그리고 온갖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예쁜 장면을 남기기 위한 사진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이 흘러감을 직접 체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늘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따라붙었다. 왜일까? 아마도 지구온난화와 기후의 널뛰는 변화가 우리 곁의 소중한 계절들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의 봄, 순서대로 피어났던 꽃들

내가 초등학교 때, 봄의 시작은 정해진 리듬을 가지고 찾아왔다.


3월이면 도시와 동네 거리를 노랗게 물들인 개나리가 먼저 피어났고, 그 옆에서는 붉은빛을 띤 진달래가 봄의 시작을 알렸다. 개학길을 걷던 내게 그 꽃들은 "새 학기가 시작됐어"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4월이 오면 철쭉이 단비를 기다리듯 화사하게 피어났고, 그다음은 벚꽃이었다.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한 그루 한 그루 만개해 가던 벚꽃은, 잠깐의 절정으로 봄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계절은 꽃들 사이에서 조용히 흐르고, 자연은 매년 같은 순서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음엔 어느 가지에서 어떤 꽃이 피어날까” 하며 기대를 품고 계절을 바라보던 그 시절이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봄, 사라지는 질서

하지만 작년부터인가, 공원 한구석을 거닐던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장면을 마주하게 됐다.


개별적으로 피어 순서를 지켜오던 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피어버린 것이다. 예전 같으면 한 송이의 개나리를 보고, 그다음 진달래를 기다리고, 또 다음 벚꽃을 기대하던 봄이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꽃들이 동시에 피고, 또 동시에 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순서가 뒤섞이고, 시기도 예측할 수 없고, 어떤 날은 겨울 같고 어떤 날은 초여름 같은 나날들.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폭우나 이상 고온 속에 꽃잎은 우수수 지고 만다. 그리고 그 자리를 곧바로 여름을 연상케 하는 초록 잎들이 메워버린다. 그 광경이 이상하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단지 계절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감각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 익숙하던 리듬이 흐려지고 있다는 현실.


식물학자의 책, 그리고 두려움

그래서였을까. 올해 4월, 서점에서 무심코 식물학자의 책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책 속에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자주 스쳐 지나갔던 식물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 곁엔 그 식물의 기원과 특징, 서식지에 대한 이야기가 차분하게 적혀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 식물들, 정말 언젠가 한국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지금은 이렇게 기록으로라도 남겨두지 않으면, 앞으로 이 꽃들을 실제로 마주할 기회조차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아직 그 책을 다 읽진 못했지만, 언젠가 천천히 정독하고, 따로 후기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무언가가 사라진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고 아쉬워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라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늦지 않게 애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났다.


기후위기 앞에서 피어나는 관심과 기억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는 단순히 계절이 변하는 것을 넘어서, 익숙하던 순서와 질서를 잃어가고 있다. 올해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다음 겨울은 얼마나 짧을까. 이제는 기존의 통계나 예보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대한민국의 사계절이 두 계절, 여름과 겨울로 바뀌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여전히 3월의 개나리를 기다리고, 4월의 철쭉과 벚꽃을 떠올린다.


오늘도 창밖을 바라보며,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 순서를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그 꽃들을 온전히 마주했던 나의 시간들이 작게나마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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