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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금융의 변화

‘탈인간 통화’는 가능한가?

by 오유나

유발 하라리 내한 강연 250413 : https://www.youtube.com/watch?v=9deB6qoCGaQ

타임스탬프: 00:10:51 ~ 00:12:27


알고리즘이 신뢰를 대체하는 시대

하라리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기반이었던 신뢰(trust)가 인간 기관에서 점차 알고리즘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암호화폐의 등장을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Money is a story. It has no objective value… What has been happening in recent years is that more and more people have lost trust in the human institutions… and instead, they trust the algorithms.”
“돈은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 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고, 대신 알고리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화폐는 실물적 가치보다 신뢰에 의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말해주는 ‘이 돈이 1kg 쌀과 바꿀 수 있다’는 집단적 동의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국가보다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에 더 높은 신뢰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라리는 이를 금융의 탈인간화(post-human money)라고 정의하며, “권력의 이동”이 이뤄지고 있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돈은 '허구'지만, 그 허구를 누가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화폐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하라리의 관점은 그 익숙함을 흔듭니다.

돈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동의된 허구(shared fiction)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인간 제도가 만든 신뢰 대신, 기술적 구조와 알고리즘의 정합성으로 신뢰를 확보하려는 새로운 실험입니다. 알고리즘은 감정을 갖지 않으며, 이해관계로부터 중립적이라는 기대가 이런 신뢰의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기술이 신뢰를 만든다고 해서, 그 기술이 곧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리즘이 무결하게 거래를 기록하더라도, 경제 위기 시의 조정 능력이나 소득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감각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인간 제도에 대한 불신이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불투명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금융 시스템이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는 지금, 개인과 사회는 그 기반이 되는 기술과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 합니다.


개인의 경우, 단순히 ‘투자처’로서 암호화폐를 바라보기보다, 그것이 어떤 기술적 구조 위에서 작동하고, 어떤 사회적 맥락을 갖는지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스마트 컨트랙트, 탈중앙화 금융(DeFi),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등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사회적 감각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암호화폐를 무조건 규제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디지털 자산이 가져올 수 있는 혁신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고려하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기초 금융교육, 정보 접근성, 투자자 보호 장치 등을 강화해야 합니다. 동시에, 공공성과 예측 가능성을 모두 충족하는 디지털 공공 화폐 모델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암호화폐의 탈국경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금세탁, 탈세, 불법 금융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글로벌 협력 체계가 시급합니다. 각국의 규제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국제 협약이 마련되어야 하며, 기술 격차로 인해 일부 국가가 배제되지 않도록 금융 접근성 확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금융의 재정의

AI 엔지니어로서 금융 시스템을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있다는 담론은 단지 흥미로운 기술 과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 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개발할 수도 있고, 블록체인을 다룰 수도 있지만, 그 결과로 어떤 구조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기술은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금융이라는 이름 아래 설계되는 많은 시스템은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적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작동해왔습니다. 그 안정감을 누구의 설계가, 어떤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있을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기술이 만든 신뢰가 진짜 사회적 신뢰로 작동하려면, 기술자 또한 기술 너머의 윤리, 제도,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지금 ‘신뢰’를 누구에게 맡기고 있을까요?

인간 제도에 대한 불신이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으로 바뀌는 이 전환기에서, 우리는 어떤 기회를 얻고, 또 어떤 위험을 마주하게 될까요?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지키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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