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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누리 Aug 13. 2021

[한국 IN 공공누리] 한국 전통 의복에 대하여

공공누리 X 이야기발전소

[한국 IN 공공누리] 한국 전통 의복에 대하여


인류는 다른 영장류 동물들에 비해서 몸에 털이 매우 없는 편입니다. 털은 몸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아주 좋은 방어막이지만, 약 100만 년 전에 이미 인류의 체모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만 거주할 때는 체모가 없어도 생존이 가능했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니 체모를 대체해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옷이죠. 미국의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진은 DNA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인류가 처음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시기를 17만 년 전이라고 밝혔습니다. 


옷을 입기 시작한 이유는 이런 신체 보호설 이외에도 종교의식에 영향을 받은 심리적 보호설이나 남녀의 차이를 인식하는 정숙설, 신체 장식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인류라는 존재가 생존과 번식을 이어오면서 옷이라는 것은 필수품이 되어 발달해왔습니다. 그래서 옷 자체는 어디가 원조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이어지는 옷의 형태를 보면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라마다 고유한 옷의 차이는 있습니다.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죠. 베트남에서는 아오자이, 영국 쪽에서는 스코틀랜드 킬트, 중국은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외국의 옷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옷은 무엇으로 부를까요? 당연히 '한복'입니다. 


사진출처: 부산광역시 (공공누리)

[공공누리에서 '한복' 이미지 찾아보기 ▶ https://bit.ly/3lW8lqf]


한복은?


영국 콜린스 영어사전에는  'hanbok'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A traditional style of clothing, characterized by a long high-waisted skirt, worn in Korea for formal occasions'. 즉, 긴치마가 특징이며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는 한국의 전통의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복은 우리 민족이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신석기시대부터 입었던 옷으로 여러 영향을 받으며 개량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전통 옷입니다. 초기에는 신체를 보호하는 가림막 수준이었을 것이지만 유목민들에게도 영향을 받아 상의와 하의가 나뉘기도 하고, 고대국가가 자리 잡은 삼국시대에는 의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일반 백성들의 일상 생활복은 변화가 적었던 반면 지배층의 옷은 당시의 시대에 맞게 변화의 폭이 꽤 컸습니다. 옷에 사용되는 색부터 문양, 장신구 등에서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나라끼리의 교류도 활발했기 때문에 나라 안에서는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면 외국에서는 국적을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바로 옷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로 교류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의복 역시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주게 됩니다. 특히 고려 후반의 시기에는 몽골 원나라와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아 '몽고풍(蒙古風)', ‘고려양(高麗樣)’이라는 단어도 생겼습니다. 몽고풍은 고려에서 몽고를 흉내 내는 것으로, 변발이나 호복은 오늘날 이미 사라졌지만 결혼식 때 여자가 사용하는 족두리나 연지곤지와 같은 것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등의 법전을 통해 왕을 비롯한 왕실과 양반 계층 등 각 신분의 복식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분제가 철저했기 때문에 의복에 사용된 색, 문양, 소재, 장신구 등에 차별화를 주어 왕과 신하, 지배층과 일반 백성의 신분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차이를 두었던 것이죠. 조선은 이렇게 독자적인 복식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배층은 상황에 따라서 중국의 명(明)·청(凊)과의 교류를 통해 들여온 복식과 우리 고유의 복식을 모두 입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시대를 거쳐 우리 민족이 입었던 옷'을 '한복'이라 부릅니다. 조선 후기 혜원 신윤복이나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서 한복은 잘 나타나 있으며, 그 이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라, 백제의 유물에서도 한복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복의 역사를 1600여 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입던 형식의 옷이 가장 최근의 형태이기에 주로 조선시대의 형태를 따르게 되고, 평민들이 일을 할 때 입는 복장보다는 지배층이 평소에 입었던 옷이 더 예쁘고 화려하기 때문에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조선시대 형식의 옷'을 '한복'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천연 염색과 누비로 태어나는 우아함


한복은 장식의 화려함보다는 기본에서 배어 나오는 우아함으로 아름다움이 더욱 빛납니다. 한복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하는 기본은 크게 천연 염색으로 만들어내는 색깔과 누비라는 재봉 과정에 있습니다.

사진출처: 인천광역시 (공공누리)

[공공누리에서 '천연염색' 이미지 찾아보기 ▶https://bit.ly/3sbWhSw]


천연 염색이란, 자연의 재료를 활용해 원하는 색을 내는 과정입니다. 은은한 빛이 매력적이며 염색 횟수에 따라 진하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염색의 횟수에 따라 진하기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다양한 빛깔을 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고구려는 왕은 오채복(五采服)을 입었고 대신들은 자(紫), 청(靑), 강(絳), 비(緋) 색의 관을 쓰고 황(黃) 색 가죽신을 신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연 염색 기술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충청남도 (공공누리)

[공공누리에서 '한복' 이미지 찾아보기 ▶ https://bit.ly/3yATS6t]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공공누리 자료로 공개된 누비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누비는 순수한 우리말로 용비어천가(1447)에 처음 등장하는 명칭이며, 누비의 기법은 스님들이 입는 납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납의는 낡은 헝겊 조각인 '납'을 바느질로 기워서 만든 옷입니다. 이후 바느질이 더욱 섬세해지고 겨울에 추위를 대비하기 위한 솜이 추가되면서 누비의 기술도 다양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 표현할 때도 단순히 바느질만 생각해 '퀼트(quilt)'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누비(Nubi)'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참고 어문 | 공공누리에서 '누비' 자세히 알아보기 ▶ https://bit.ly/3fWeLl4]


우리 옷의 전통 소재


우리가 보통 한복이라고 부르는 옷은 평민들의 노동복이 아니라 지배층들이 입는 고급진 옷을 말합니다. 그래서 한복을 만드는 주된 재료의 천은 '비단'입니다. 비단은 뽕나무 잎을 먹으면서 자란 ‘누에’에서 실을 뽑아내서 만든 천으로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할 때에는 병사들 급여를 비단으로 지급하기도 할 정도였고, 동서양의 무역 역시 비단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그 길을 '실크로드'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어떤 소재의 옷을 입었을까요? 일반 백성들이 옷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한 옷감은 ‘삼베’입니다. 고려 후기 문익점에 의해 목화가 대량으로 재배되기 이전에는 거의 삼베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삼베는 대마의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째서 실로 만들고 몇 가지 공정을 더 거친 후에 베틀을 이용해 천으로 만든 것입니다. ‘길쌈’이라고 하는 말도 대마 농사를 짓는 것부터 베틀을 짜서 천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삼베길쌈’이라고 부르는 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삼베는 통기성은 좋지만 보온성이 떨어져 겨울에 백성들의 고생이 심했는데 목화를 통해 면과 솜이 보급되면서 백성들의 옷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복과 관련 있는 몇 가지 상식들


사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공공누리에서 '한복' 이미지 찾아보기 ▶ https://bit.ly/37BwNow]


1) 옷깃만 스쳐도 인연

불교에서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는 ‘인연설’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옷깃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상의를 입을 때 목과 직접 닿는 부분을 '동정'이라고 하고 가장 넓은 면적으로 몸을 가려주는 옷의 큰 부분을 '길'이라고 합니다. 동정과 길 사이에 무언가를 덧댈 수 있도록 조금 두껍게 있는 부분이 바로 '깃'입니다.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갈 때도 부딪힐 수 있는 팔의 끝부분은 '소매'라고 하죠. 흔히 우리는 옷깃을 소매와 혼동해서 이해하곤 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옷깃을 스치는 사이는 서로 포옹을 할 정도의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불교의 '타생지연(他生之緣)'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이 말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도 모두 전생에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이런 속담이 구전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소매만 스쳐도'라고 바꾸지 않고 '옷깃만 스쳐도'라고 그대로 써도 문제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목화 재배의 시작이 문익점이 아니라고?!

어릴 때 보았던 위인전에는 고려시대에 문익점이 중국의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통에 숨겨와서 우리나라에 처음 재배한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네요. 


당나라 역사서에도 ‘고구려는 백첩포’라는 면포를 짓고 있었다고 하고, 신라 역시 9세기 후반 경문왕 9년(869년) 백첩포를 만들어 중국에 보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 위덕왕(재위 554~598) 때의 유물에 면직물이 출토되었으니 문익점의 목화가 우리나라 최초는 아닙니다. 하지만 품종이 인도나 베트남을 통해 들어온 아열대 품종이라 우리나라의 기후나 토양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아주 소량만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동북아시아에 맞게 개량된 목화는 13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14세기에 일반화되었고, 우리나라엔 14세기 중엽인 1363년에 유입이 되고 15세기에 일반화됩니다. 참고로 일본은 16세기 중엽에 유입이 되어 17세기에 일반화됩니다. 


그렇다고 문익점의 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목화에서 면을 만들기 위한 실을 뽑을 때에는 씨앗을 뽑아내는 '씨아'라는 것과 섬유질에서 실을 뽑아내기 위한 '물레'가 필요합니다. 문익점의 가장 큰 공로는 그것들을 대중화시켜서 사람들이 실을 더 잘 뽑아낼 수 있도록 한 점입니다. 

사진출처: 부산광역시(공공누리)

[공공누리에서 'K 한복'이미지 찾아보기 ▶ https://bit.ly/2U95a2K]


3) 전통한복? 개량한복? 

2013년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경복궁까지 한복 입기 열풍이 분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 시들해지자 얼마 전에는 한복 입은 사람들은 경복궁 무료입장이라는 이벤트도 있었죠. 그런데 그때 엉뚱한 논란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개량 한복이라 부르는 퓨전 한복을 두고 ‘한복이다, 아니다.’의 논쟁이 꽤 치열하게 벌어졌는데요, 종로구청은 전통한복을 입은 사람에 한해서만 무료입장을 허용하기도 하고, '우리 옷 제대로 입기'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실제 관광지에서는 개량 한복의 인기가 월등히 높은 상황에서 한복인지 어느 나라 옷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팽팽했는데요, 잠시 둘의 차이를 간단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전통한복은 신분에 따라 형태가 다른 반면 개량한복은 버튼이나 지퍼 등을 활용해 편의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통한복은 천연소재를 사용해 우아한 매력을 풍긴다면 퓨전 한복은 폴리에스터 재질을 사용해 화려하게 보이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가 전통한복이라고 부르는 한복 역시 널리 퍼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조끼는 개화기인 1880년 이후 남자 양복이 들어오면서 한복에도 도입된 것이고, 저고리 위에 덧입는 마고자는 1887년 흥선대원군이 만주에서 귀국할 때 청나라의 옷인 마괘(馬褂)를 입고 온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두루마기 역시 고려시대까지는 포(袍)라는 용어였고,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이 외출할 때 쓰개치마로 사용되다가 개화기에 방한복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또한 경복궁에서 한복 무료입장 이벤트를 처음 시행한 2014년 당시의 한복 역시 개량한복 형태인 저고리와 치마 차림이었기 때문에 전통한복과 개량한복을 구분 짓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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