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DESERVES A CHANCE TO FLY
서쪽 마녀의 이야기라는 것.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뮤지컬 〈Wicked〉를 처음 본 건 뉴욕에서였다. 아주 간략한 줄거리만 안 채로 극장에 앉았고, 1막의 마지막 곡인 'Defying Gravity'가 끝날 즈음엔 오열하는 나를 발견했고, 인터미션 내내 친구와 이 굉장한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갑자기 원론적인 말이지만 마음을 울리는 좋은 이야기란, 결국 보편적인 감정을 관객이 자기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아이. 그 설정이 불러일으킨 건 의외로 아주 개인적인 기억이었다.
유학 시절, 인종차별을 겪은 적은 없다. 해외 나가면 운이 좋은 타입 답게 오히려 즐겁게, 많은 배려를 받으며 아주 잘 지냈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 불현듯 스며드는 감각이 있었다 — 나는 결국 이방인이구나, 하는 이질감. 그리고 그 감각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패션을,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닌 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이고, 그 바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에도 비슷한 감각이 계속됐다. 전공이 여럿이었던 탓에 한때는 스스로를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끈기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여러 분야에 걸친 얕지만 넓은, 그리고 유기적인 시야가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긴 시간 동안 컴플렉스는 늘 곁에 있었다.
언젠가는 이 무리에서 겉돌게 되는 건 아닐까 — 혹은 지금 이 순간도 내 생각보다 더 블랜딩 되지 못한채 떠다니는 걸까 - 그렇게 조용히 불안해했던 모든 나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엘파바에게 이입되었다.
그리고 엘파바는 그 모든 것을 — 자신을 짓누르던 시선과 편견과 소외를 — '중력'이라 이름 붙이고, 거스르고, 하늘로 떠올랐다.
그 멋진 장면을 보며 나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고, 엘피를 응원하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Wicked〉는 나의 인생 뮤지컬이 되었다.
뉴욕에서 처음 본 뒤, 런던에 갔을 때도 제일 먼저 고른 뮤지컬은 주저 없이 위키드였다. 출근길에는 'Popular'를 수없이 반복 재생했다. 그렇게 이 작품은 내 일상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흘러, 영화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눈이 즐거웠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조명과 장치로 암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영화는 화면 구석구석에 심어놓고 있었다. 글린다의 의상에 녹아든 버블과 스파이럴 모티프, 소재의 질감과 형태가 만들어내는 두 캐릭터의 대비 — 찾아볼수록 빠져드는 디테일이었다. 의상뿐 아니라 배경, 색감, 공간의 스케일까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에서 엘파바와 글린다의 다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무대가 아니라 영화니까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한 흔적을 발견하는 일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 흥미로운 눈이, 점점 씁쓸해졌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글린다는 사랑스러웠다. 누구라도 반할 만큼.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였을까. 엘파바의 위키드가 글린다의 위키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타 캐스팅의 힘일까, 아니면 더 구조적인 무언가일까. 더 예쁘고, 더 인기 있고, 더 사랑받는 사람 쪽으로 서사의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가 이 영화 속 세계에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영화 중반부터는 내내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대체 왜 'Defying Gravity'의 순간을 둘이 나눠 가져야 했을까.
그건 온전히 엘파바의 것이었는데.
그래서 2편은 한참을 주저하다 극장에 갔다. 솔직히 뮤지컬 2막 자체가 1막에 비해 힘이 빠지는 흐름이기도 하니,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도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느슨해지는 구간을 잘 메웠다. 영화적 스케일의 화면과 구성으로, 그리고 아마도 3편 — 글린다의 이야기를 위한 포석으로 채워진 장면들로.
2편에서 흥미로웠던 건 오히려 서사적인 발견이었다. 영화로 보니,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가 '오즈의 마법사'의 파생이라는 사실이 문득문득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이야기의 이면이, 장면 사이사이에서 선명해지는 순간들. 특히 도로시 사건은 인상적이었다. 같은 사건인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의 입장에서 서술되느냐에 따라 감정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건 곧 미디어의 힘이기도 했다 — 누가 이야기하느냐가, 무엇이 진실이 되느냐를 결정한다는 것.
2편을 보고 나서 곱씹어 생각하게 된 지점은, 이 작품보다도 '매체'에 대한 것이었다.
같은 스토리가 글로, 뮤지컬로, 영화로 만들어질 때 — 각각의 매체는 어떤 문법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새로 더해야 하는가. 〈Wicked〉는 세 매체를 거치며 그 질문을 선명하게 던졌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성공적인 편곡에 가깝다고 할까. 원곡의 멜로디와 정서는 그대로인데, 악기 편성과 사운드 텍스처를 바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울리게 만드는 것. 뮤지컬에서 영화로의 전환이 해야 할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고, 적어도 비주얼의 영역에서 이 영화는 그 편곡을 해냈다.
(이건 사실 내 일과도 맞닿아 있다. 같은 곡이라도 뮤직비디오, 방송 무대, 콘서트, 연말 시상식에서 전부 다르게 풀어내어 같은 본질을 담되, 매체와 공간과 관객이 달라지면 표현의 방식도 달리 하여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 여러 전공을 떠돌며 쌓인, 얕지만 넓고 유기적인 시야 — 한때 컴플렉스였던 그것이 결국 이 변환의 감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 그것이 결국 연출이고, 콘텐츠를 만든다는 일의 핵심이 아닐까.)
콘텐츠가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나는 기다리고 있다. 온전히 글린다의 시선에서 펼쳐질 이야기를. 엘파바의 중력을 거스르는 서사가 그토록 강렬했으니, 글린다가 그 빛과 인기 뒤에서 감당해야 했을 무게의 이야기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도 남아 있다. 너무나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는지, 신념과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선택하고 성장하는 그 과정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 다음에, 조금 더 천천히 쓰려 한다.
설마,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건 글린다의 이야기도, 이 글의 다음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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