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ㅆㅆㅆ] 수다를 떨었을 뿐인데 갑자기

'존재'를 생각한다고?

by 동그람




이른 새벽, 택시에서 했던 기사님과의 대화가 잠못이루게 했다.

“나는 이제 괜찮아요. 내가 나이 듦을 서서히 인지하고 느끼면서 많은 감정을 이미 뒤로 했거든요. 근데 딸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지했던 순간에 나도 딸이 인지했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어. 그게 난 더 슬프더라고요. 딸이 나의 나이 듦을 눈치채고 느꼈을 감정들이 참 안타깝고 슬프더라고요."


그 말이 나를 아침까지 잠 못이루게 했다. 노화는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관념에 반기를 들고 싶어진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친구들과 대화하기로 했다. 각자 자기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제는 늙어버린’ 그들에 연민하고 뒤를 이어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는 비통함이 이어졌다.


“노화가 정말 죽음으로 가는 길이어야만 하나? 사회적 역할, 관계적 쓰임을 다 한 뒤에 오롯이 존재함으로서 살게 된 순간, 해방감이라던지 진정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이지는 않아?"



내가 묻자 그제서야 부모님들이 자기 인생을 살기위해 하는 노력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평생 사무직만 하시던 분이 갑자기 떡케이크를 배우시더니 장사를 꿈꾸고 계시기도 하고, 가족들을 돌보기만 하셨던 분이 순례의 길을 가신다며 운동과 훈련을 시작하기도 한 경우 등 많은 인생들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 분들의 인생은 우리가 함부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삶을 살고 계셨다.




인간은 대부분의 인생을 타인에게 '무엇'이 되기 위해 산다. 자식, 배우자, 부모, 팀장, 대표, 친구……

우리는 역할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성과로 하루에 내가 존재했던 이유를 판단한다. ‘오늘 무엇을 해냈나’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그것에 대한 해답 혹은 정답을 말하기 위해 하루를 산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상한 균열이 생긴다. 역할의 외피가 얇아질수록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보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더 절실해진다. 그 변화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감각에서 먼저 일어난다.


신체적 감각으로 느끼게 되거나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새로운 시대의 언어나 사회적 관념과 문화가 점점 멀어지는 걸 깨닫게 될 때 ‘늙음’을 인지한다. 내가 갖고 있던 사상이나 가치관이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때는 사회적 역할을 잃게 되는데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히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나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절실해진다.


젊을 땐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다면, 늙어간다는 건 나를 '깎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깎여나간 자리에 형태가 나타난다. 언제나 일정으로 가득 차 있던 캘린더, 도배하듯 채워 넣던 메신저 창, 읽는 순서와 관계없이 우선순위가 들쑥날쑥 한 한 무더기의 이메일. 하나씩 덜어낼수록 '나'라는 선이 선명해진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의 진짜 슬픔은, 몸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가 타인에게 인지되는 순간에 있었다. 내가 내 속도로 받아들이던 변화가 타인의 시선에 갑자기 객관화되는 순간 당사자의 시간은 이어지고, 관찰자의 시간은 끊긴다. 같은 하루를 살면서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느낌. 그 어긋남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비장함과 비통한 감정은 이 간극에서 오는게 아닐까.



하지만 그 어긋남을 지나면, 중심이 옮겨간다. 사회에서 생명으로. 쓸모와 기능이 벗겨질수록, 살아 있음 자체가 또렷해진다. 나는 이걸 '비워짐'이 아니라 '덜어내며 드러남'이라고 부르고 싶다. 덜어낼수록 남는 것들이 있다. 남은 요소들이 곧 ‘나’ 고, 그것들은 응집하며 밀도를 키워 나가게 된다.


생의 마지막에는 어쩌면 한 줄만 남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줄은, 이전의 모든 목차보다 두껍다. 이것이 존재의 밀도다.



노년이 반드시 고요하고 숭고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일상의 번거로움은 여전하고, 몸은 때로 서운할 만큼 솔직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적 역할에서 밀려나면서 주체성을 잃는 듯한 느낌이 든다. 메인 무대가 아닌 사이드로 빠지는 것 같고, 그늘진 곳에서 비주류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존재감의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기존에는 사회가 정해준 볕 아래서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 영역 안에 볕도 있고 그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유자재로 어디로든 넘나들 수 있게 된다.

노화란, 그늘 안에서도 기꺼이 존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밀도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아직 노화되지 않아서 일종의 환상, 낭만적인 소리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퇴행,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건 보다 더한 환상이고 비약은 아닐까?

나는 이것을 전환이라고 부르고 싶다. 방향 전환. '쓸모'의 회로에서 빠져나온 손은 비로소 감각의 회로에 접속한다. 남에게 의미 있어야만 의미가 있었던 존재의 이유를 ‘나’ 라는 내적 기준으로 전환하는 것은 일종의 존재론적 해방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지의 문제를 지나, 숨 쉬는 것 자체가 충분한 설명이 되는 상태.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답변을 요구하지 않고, '살아 있음'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며 스스로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즉, 자기완결로 가는 길.


사회적 역할은 족쇄인 동시에 축복이었다. 그 덕에 우리는 성장했고, 누군가의 삶을 실제로 지탱했다. 하지만 역할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삶을 밖으로만 발광했다. 노화의 초입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건, 그 바깥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존재의 본질이 자기 안에 있다는 걸 찾아내는 순간, 그늘에 머물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늘에 있어도 나는 나다. 햇볕 아래 있어도 나는 나다. 그늘에서 햇볕을 향하는 길목, 경계선에 있어도 나는 나니까.

햇볕에 견주어 그늘을 생각하면, 비주류 같고 부수적인 것 같지만, 존재의 답을 찾아낸 인간에게는 그늘을 햇볕에 견주어 생각하지 않고 그늘 자체를 보는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햇볕 또한 그저 햇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사회적 역할을 덜어내고 관계적 역할도 걷어내고 나면 남은 '나'를 오롯하게 여기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노화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 노화의 당사자는 비장할지라도 비통하지는 않게 하는 힘, 관찰자는 비통할지라도 비장하지는 않게 하는 힘이 바로, 노화를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기는 게 아니라 노화는 새로운 존재의 방향성을 찾는 시간이라고 여기는 관념의 전환이지 않을까.






수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날 밤 택시 안에서 처음 만난 노인과 청년이 나눈 대화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눈 수다였다. 내가 아직 펼치지 않은 책의 마지막 장을 노인이 불고 온 바람에 책장이 떠밀려 잠깐 스쳐 읽어버린 경험과도 같았다. 마지막 장은 모두가 ‘노화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요약해온 인간의 일생. 유명하다 못해 닳고 닳아 새로울게 없어 기대감도 흥미도 없어진 결말. 그런데 그 새벽 수다 끝에 이어진 생각의 시간을 지나 동이 터오는 걸 볼 때 내가 가진 책의 마지막 장이 새로 써졌다. 그래서 기꺼이 읽던 페이지로 돌아와 남은 책장을 음미하며 천천히 읽고 싶어졌다.

내가 그 시간을 실제로 통과하게 될 때, 그것을 상실만으로 부르지 않을 언어를 미리 얻었으니까. 같은 하루를 살되, 다른 문장으로 읽는 법을 조금 배운 셈이다.



술 기운에 잠이 쏟아졌지만 생각의 끝을 잡고 싶어서 바람이 들어오도록 열어둔 창문 밖에서 바람을 타고 소나무 향기가 솔솔 들어와 잠을 깨워줘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노화와 인간의 존재를 오래 굴리다 보니, 노년이 오히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존재 경험일 수 있다는 데까지 닿았다.


어둡던 창밖의 사위가 밝아지고, 저 멀리 한 점이 노랗게 익어갔다. 창 문 앞에 서기도 전에 난 그게 그날의 태양인 걸 알 수 있었다. 그 날의 경험은 내가 늙기 전에, 내 노화를 자각하기도 전에 미리 경험 한 선취와도 같았다.


태양이 완전히 떠오른 뒤에야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오래된 나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자리에서 바람을 맞고 햇빛을 받았다. 곧 다가 올 밤을 기다리며. 그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1일 오전 11_36_31.png 나무는 오래 될 수록 더 많은 잎을 틔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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