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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제로 Jan 25. 2021

ep.3 대학생활 5년을 함께한 너로부터 온 편지(3)

짧고도 길었던 교환학생을 마치며

이번 에피소드부터 앞으로 10번 정도 '차곡히 쌓여간 이름들'에 대해 기록하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저의 생일 또는 특별하지 않은 어느 날을 위해서 여러 차례 편지를 써준, 

그래서 제 편지함에 쌓인 그들의 이름을 되새기며 글을 써봅니다.


그 첫 이야기는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5년의 시간을 늘 함께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로 시작합니다.




H와 2018년 한 해동안 함께 준비해온 교환학생. 2019년 2월 28일에 출국해 같은 해 8월의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공부를 했고, 때때로 REWE 마트에 가서 함께 장을 봤고,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서로의 기숙사에 초대해 한식을 만들어 먹었다. 
한 번 사면 근방 지역까지 6개월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티켓을 구입해 바트 뒤르크하임, 슈파이어, 하이델베르크 등을 당일치기로 여행하기도 했다. 멀리 떠날 때는 쾰른이나 본처럼 독일의 또 다른 도시로, 더 멀리 간 때는 프랑스 파리와 콜마르까지 갔었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자주 시간을 공유한 것 같지만, 사실 트램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서로의 기숙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다지 자주 만나지 못했다. 수업도 겹치는 건 일주일에 딱 한 번 뿐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6개월이 흘렀고, 우리의 마지막 계절이었던 여름의 더위가 꺾여 가고 있을 때였다. 학기를 마치고 각자 긴 유럽여행을 떠났고, 계약기간 상 나보다 더 빨리 기숙사 짐을 빼야 했던 H는 짐을 나에게 맡겼다. 방이 좁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짐을 맡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별생각 없이 있었다. 
그리고 H는 스위스에서 마지막 여행을 끝내고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먼 곳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날짜가 바뀌었고, H의 생일 지나버렸다. 그때쯤 이제 막 여행에서 돌아온 건 마찬가지였던 나는 H와 함께한 일행이 생일을 챙겨주었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해 아무런 축하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의 작은 방에서 마주한 너는 예상과 달리 축하받지 못한 생일을 보냈다 전했고, 뒤늦게라도 무언가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그런 나에게 너는 짐을 맡아줘서 고맙다며 프랑스 몽주약국에서 산 꼬달리 클렌징폼과 쪽지 모양으로 접힌 작은 편지를 건넸다.  그냥 노트를 북 찢어 적은 편지였다. 


'To. 다영


벌써 교환학생 한 학기가 끝나서 한국 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그동안 독일에서도 서로 도와주고 공부하고 여행도 가서 좋았어. 복학해서도 독일에서 쌓았던 행복한 추억들 생각하면서 학교 다니자... 한 학기 동안 정말 즐거웠고 새로운 환경에서 네가 있어서 더 편했어. 여행 가서 엽서 한 장 사 오지 못해 노트에 편지 쓰는 나를 용서하렴... 그동안 학교 다니느라 여행 다니느라 수고했고... 아 그리고 짐도 맡아줘서 너무 고마워!!!

선물로 칸 몽쥬약국에서 꼬달리 폼클렌징을 사 왔어. 박수진 폼클렌징이래... 짐이 하나 늘어버렸겠지만 잘 써줘... 이젠 한국에서 보자~~~ 안녕~~~**'


나는 너에게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을 그저 지나쳐버렸는데,
너는 나에게 짐을 맡아줬다는 별 거 아닌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작은 편지를 읽으며 내내 미소를 지은 건, 낯선 독일에서 서로의 존재가 이유 없이 힘이 되었다는 것을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날의 편지는 H의 말대로 엽서를 사 오지 못해 노트에 적힌 것이었지만, 
그 어느 편지지일지라도 상관없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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