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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제로 Oct 23. 2021

save days 4.  사고치다

일단 시원하게 화내고, 침착해지자.


액땜 크게 했네!


꼼꼼한데 놓치는 게 있으며

완벽을 추구하는데 하나씩 구멍이 있다.

내 성격이 그렇다. 꼭 완벽하게 하고 싶어하면서도 이따금 무언갈 놓치곤 한다.

운전할 때도 그런 것 같다. 

차선 변경도 잘 하고, 주차도 꽤 괜찮게 하는데

무엇보다 안전하게 운전하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왜때문인지 자꾸만 사고를 친다.

말 그대로 보험처리가 필요한 '사고'가 난다.


20살이 되던 해의 여름, 운전면허 시험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을 듣고 후다닥 면허를 땄다.

그때만해도 혼자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없었기에 약 4년을 장롱에 면허증을 넣어두고 다녔다.

그러다 2020년 1월인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 계기는 바로 엄마의 제안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바깥에 있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모전, 대내외활동을 했고 성적 장학금도 웬만하면 놓치지 않았다.

그랬던 나는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 함께 자아 팬데믹을 맞았다.

내가 7년동안 사랑했던, 열망했던 업계는 코로나로 인해 줄줄이 폐업을 했고 무너져갔다.

그 상황을 보면서 이 분야를 진정 업으로 삼아도 될까 고민이 되었고

칠년이라는 긴 시간의 공든 탑을 코로나라는 아이가 발로 차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로나의 비주얼을 상상한다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 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부분에 나오는 그 어린이 모형같을 것 같다. 아무튼 말 그대로 처참했다. 

한 순간에 확실했던 길이 공사에 들어갔고, 이제 막다른 길이었다.


그날부터 생기를 잃었고 하루종일 거실에 누워 넷플릭스만 봤다. 그 당시에는 10여 편의 시리즈를 하루에 하나씩 다 볼 정도로 계속 TV만 봤다. 일어나면 바로 보고, 밥 먹으면서 보고, 자기 전까지 보고. 이 루틴을 한달 정도 반복했다. 집밖에 나가지도 않고 점점 피폐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아마 결심을 한 것 같다.

얘를 끌고 나가야겠다고.

그래서 어느날 아침, 엄마는 내게 "요즘 시간 여유 있는 거면 운전 연습이나 하자."

처음엔 귀찮게 느껴져 싫다고 할까 생각하다가, 나 또한 더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일주일동안 운전연습을 시작했다. 첫날엔 주차장에서 차 빼는 것 조차 어려워했는데, 사흘 되던 날 무슨 자신감인지 서울에 가보겠다고 했다. 오히려 나는 무섭지 않았는데 엄마는 정말 가야겠다며 망설였던 게 눈에 선하다. 그렇게 한달, 일년이 흘러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도 잘 다니게 되었다. 아찔한 순간은 있었지만 1년 동안 단 한번의 사고도 없었다. 그런데 근래부터 자꾸만 사고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제주도 이호테우 해변 입구에서

- 오른쪽 차로로 달리다 연석을 보지 못해 연석을 박았다. 유난히 높은 연석이었다.

- 소음이 나더니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 났다.

- 다행히 보험처리가 되었고,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 되었다.


지난 8월, 강원도 정선에서

- 똑같은 일이 한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 우회전을 하다가 연석에 박았다.

-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차에 기스가 났다.


지난 9월, 충남 서산에서

- 가을 취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내비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 그런데 내비가 안내해준 곳은 논밭 옆 좁은 길이었고 그 옆에는 억새가 무성했다.

- 전날 비까지 와서 빠질뻔한 물웅덩이도 있었고, 미끄러져 침수될 뻔하기도 했다.

- 다행히 살아나왔지만 차에는 억새로 인한 엄청난 기스가 생겼다.


지금 10월, 강원도 홍천에서

- 밤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좁은 코너를 돌아야 했다.

- SUV 크기 가늠이 어려워 코너링을 하다가 장애물과 스쳤고 기스가 났다.

- 다음날 보니 그거 말고도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기스가 하나 더 있었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기다보니 무슨 마가 꼈나 생각도 들고, 운전도 하기 싫어졌다. 

처음 두 번은 액땜했다고 넘겼는데 한달마다 사고가 생기니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괜찮다고 다독이는데도 자꾸만 짜증이 났고, 보험처리 하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잘 해보겠다고 하다가 사고가 난 거라 더 화가 치밀었다. 열심히 돈 벌려다가 돈을 잃은 셈이라니..


그럼에도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쩌겠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가장 최악인 상황도 아니고 고작 기스가 난 것 뿐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았다.

고작 기스. 외관상으로 보기 흉한 것뿐인데 그걸 그렇게 짜증낼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혹은 내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가끔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힘빠지고 기분도 상한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긍정회로를 돌려야 한다.

마음껏 짜증난다 욕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계속 어두운 마음을 쥐고 있다보면 모든 게 다 부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시원하게 화내고, 침착해지자. 그리고 이렇게 말해본다 "액땜 크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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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DO4hpJ-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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