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을 포기하면 문제는 없다
냉장고 없이 산지 3개월이 넘었다.
차가운 물을 못 먹는 것은 한여름인 지금도 별 문제되진 않는다. 시원한 아이스크림, 신선한 계란과 우유를 집에서 바로 먹을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이것들은 사실 집 가까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애들이다.
냉장고가 없으니 한번에 많은 장을 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심지어 과일도 빨리 썩기 때문에 얼른 먹어야했다.
깻잎도 조금, 버섯도 한봉지, 상추도 몇장만, 감자도 한두알, 양파도 한두개, 청양고추도 3개정도. 김치도 편의점 1회분으로 조금. 계란도 편의점에서 2개짜리. 우유도 200ml짜리 한팩. 맥주도 한캔. ㅎㅎ 마시다 모자라면 편의점가서 더 사오면 됐다.
먹고싶은 반찬 한두개만 적은 양으로 해먹고 깔끔하게 비우면 기분이 좋았다. 음식쓰레기도 많이 줄었고 불필요한 전기세를 낼 필요도 없었다.
사실 냉장고 없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식생활은 채식이다. 냉장고에는 고기, 우유, 계란 등이 대부분이다. 반찬들도 있지만 몇개되지 않았고, 금방 먹었다.
처음 냉장고를 버릴 땐 채식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었지만 힘들었다. 고기는 밖에서 사먹고, 집에서는 아주 가볍게 해먹었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해먹은 것들은 거의 채식 식단이다. 깻잎을 데쳐서 쌈처럼 먹고, 상추과 오이고추를 아삭하게 곁들여 먹었다.
사실 오늘 냉장고 후기를 쓰게된 건 점심 때 마트에서 해초샐러드를 사오면서다. 초절임인데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일식집가면 안주보다 해초를 더 많이 먹을 정도다.
아무튼 이 해초가 대용량으로 1500원했다. 냉장고를 없앤 이후로 이런 대용량을 사긴 처음이었다. 고민했지만 먹고 싶은 반찬이고, 1500원이면 사실 소량의 김치와 비슷한 가격이기 때문에 그냥 샀다. 끼니마다 챙겨먹고 상한건 버릴 것이다. 냉장고에 보관해두어도 사실 몇번먹고 버리는 건 마찬가지일테니 괜찮다.
냉장고 없이 오래 먹을 수 있는 밑반찬으로는 무말랭이무침을 추천한다. 몇일두면 저절로 김치처럼 숙성돼 맛있어진다.
우유 대신으로는 두유가 좋다. 실온보관이 가능하고 맛도 좋다. 밥해먹기 귀찮을 땐 시리얼에 말아 먹어도 좋다. 좀 달달해지긴하지만 괜찮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마 이렇게 냉장고 없이 지낼 것이다. 결혼해도 아주 적은 용량의 냉장고를 구입할 예정이다. 클수록 쟁여놓는 음식이 많아진다. 물기빠진 음식쓰레기를 저장해두는 것과 다를게 없다. 그런 곳에 전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