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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링 Jul 24. 2016

세탁기도 버렸다

으걀걀걀

냉장고에 이어 세탁기도 버렸다. 꽤 고가의 제품인데 야속한 중고센터 아저씨는 7만원만 주고 떠났다.


세탁기 없이 산지는 사실 6개월이 넘었다. 단지 진짜 저 세탁기가 없어도 내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이제사 실천에 옮긴 것 뿐이다.


손세탁이 어렵다는 생각은 오해다.


사실 나는 발세탁을 하고 있다. 다이소에서 물렁한 고무 양동이를 사다가  물을 채우고,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넣은 다음 발로 살살 밟는다. 물을 조금 넉넉히 넣어 세탁기처럼 빨래들을 살살 돌린다. 족욕하는 기분도 들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탈수가 가장 문제였다.


구멍이 송송 뚫린 플라스틱바구니를 사다가 세탁물을 헹굼 중간중간 넣는다. 역시 발로 밟는다. 깔끔하게 탈수되진 않지만 물이 약간 빠진다. 다시 고무동이에 넣고 물을 받아 헹군다. 2번만 헹구면 끝이다. 거품 많은 화학세제가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탈수가 관건이다. 처음 몇달은 손목을 격렬하게 사용하며 세탁물들을 쥐어짰다. 그래야만 빨리 마를 것이라는 약간의 걱정 때문이었다.


스마트폰도 자주 사용하지만 주로 노트북으로 수없이 많은 글들을 쓰며 먹고 살고 있다. 이렇게 하다간 곧 생계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시공간을 무시한 수 많은 구글링 끝에 세탁물을 짜지 않고 중력을 이용하는 신박한 방법을 발견해냈다. 중력과 시간, 건조대만 있으면 가능했다.


우선 처음엔 발로 밟은 세탁물을 들고 손목을 최소한으로 이용해 대충 짠다. 빨래들을 탈탈 털지않고 엉성하게 욕실에 걸어둔다. 수건걸이와 세면대를 적절히 활용한다.


30분쯤 지나면 대책없이 떨어지는 물기는 어느정도 잡힌다. 옷걸이 몇개를 이용해 빨래 널듯이 넌다. 포인트는 일자로 예쁘게 널지 않고 한 꼭지점으로 물이 모이게 삼각형 모양으로 너는 것이다. 더 빨리 마른다.


다시 30분쯤 지나면 대충 마른다. 이제 기존 빨래건조대로 얘들을 데려와 역시 삼각 모양으로 넌다. 하룻밤 지나면 거의 다 마른다.


1주일에 한번 이렇게 발빨래를 한다.


속옷과 면생리대는 매일 빨고 수건은 스포츠타올 한장으로 매일 쓰고 널고 3일에 한번 손세탁한다. 이러다보면 발빨래할 세탁물이 사실 몇개 안된다. 여름이라도 괜찮았다. 장마도 무사히 넘어갔다. 사실 장마철엔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매일 조금씩 손세탁하는 스킬을 쓰면 된다. 빨래 여러개는 정말 안마르지만 한두개는 습해도 금방 마른다.


세탁기를 팔기 이전 가장 큰 고비는 감기몸살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세탁기를 사용했다. 단숨에 많은 빨래들이 보송보송 세탁되는걸 보고 좀 허탈하긴 했지만 역시 전기를 쓴다는 점이 맘에 걸렸다.


세탁기를 팔 때도 내 몸이 아플 때 혹은 업무가 너무 많아 도저히 엄두가 안날 때 등이 걱정됐다.


업무가 많을 때는 괜찮을 것 같았다. 운동하는 것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플 때는? 집 근처 좀 애매한 거리에 코인세탁소가 있다. 정말 아플 때는 주변사람에게 부탁하거나 몇주 세탁을 미루고, 몸살 등 적당히 아플 땐 택시를 타고 여길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몸이 안아프게 잘 관리하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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