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싱거운 계란말이가 되고 말았다.
반쯤 뜬 눈으로 흘깃한 11월 창밖 사위는 어둑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몸은 침대 위에서 끈적거리며 머뭇거렸지만 정신은 영혼이라도 끌어당길 듯 기어코 일으키고 있었다.
새벽 5시가 채 안된 새벽어둠 속에 숨어있던 찬공기에 무방비한 발끝이 시리다. 꿈벅거리는 눈꺼풀과 동공 사이는 모래가 낀 듯 까끌했다. 어제 아니 오늘 12시가 넘어서 잤으니 4시간 정도 잔 셈이다. 잠이 적은 편이 아니지만 많은 편도 아니다. 마음먹으면 12시간도 너끈히 잘 수 있지만, 시간 맞춰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한두 시간만 자고도 일어나는 걸 보면 어떨 때 나는 독하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도시락을 싸야 한다.
첫째 아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평생 한 번 싸는 수능도시락이니(그러길 바란다), 음식솜씨는 없지만 정성껏 싸주고 싶었다. 8시간 남짓 긴 시험을 보는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싸주고 싶었다.
나보다 밥을 잘하는 남편을 깨워 특별히 맛있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아이 뭐 똑같지. 하면서도 흰쌀과 잡곡을 조금 섞어 흐르는 물에 힘차게 일어 쌀을 씻고 물을 맞추는 손길과 눈빛이 평소보다 진중하다. 화룡정점으로 강황가루를 한티스푼 넣어 밥솥을 돌리는 걸 보니 일명 노란 밥을 지으려나 보다.
남편을 흘깃거리며 어젯밤 밑손질한 재료들을 꺼낸다. 아이가 좋아하는 두부와 버섯들을 깍둑 썰고, 청경채를 길이로 죽죽 찢어 미소 된장 육수에 넣고 팔팔 끓인다. 할머니표 불고기는 중불에 달달 볶고, 잘 익은 김치는 종종 썬다. 아이가 잘 먹는 잎채소 위주로 샐러드를 만들지만 엄마가 먹이고 싶은 파프리카, 당근, 오이는 최대한 얇게 저며 썰어 중간중간 숨겨놓는다. 골라내도 어쩔 수 없지만 젓가락 끝에 하나라도 걸려라 하는 마음이다.
가장 공을 들이는 계란말이는 나의 치트기다. 누르스름한 신선한 특란 4알을 탁 깨뜨려 당근, 대판, 양파 종종 썰어 휘휘 저어 둘둘 말며 노릇노릇 도톰하게 구워낸다. 그제야 5시 알람이 울렸고 순간 아차 싶었다.
소금 간을 안 했네....
매일 하던 건데, 더 정성을 들였는데 결국 싱거운 계란말이가 되고 말았다.
순간 나는 왜 눈시울이 붉어진다.
분명 간을 안 해 계란말이를 망친 것 때문은 아닌데, 가슴이 울컥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주책맞은 엄마네 라며 손등으로 짧은 눈물을 훔쳤다.
밥과 국을 담는 통은 미리 끓는 물을 넣어 덮였다가 밥과 국을 재빨리 담고 덮는다. 그 위로 불고기 담은 찬통을 올리고, 샐러드통은 가장 높은 곳에 올려 신선함을 유지하게 둔다. 혹시 몰라 가장 오래가는 핫팩을 뜯어 보온도시락 주머니 아래에 넣는다.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오버라고 말한다.
아이는 새벽부터 도시락을 쌌다면 한마디 할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수능도시락 반찬을 고민하며 이것저것 만들어 물어볼 때마다 간단하게 패스트푸드점의 스낵랩의 싸간다고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던 아이다. 딱 정량만 먹고 음식에 흥미가 많이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가 힘들게 (남편의 말처럼 오버?)할 것을 아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도시락을 담고 나서 수능날 엄마가 하지 말아야 할 것 베스트 3으로 낙점된 일을 한다.
엽서 쓰기.
점심 먹다가 읽다가 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편지인데, 한 자 한 자 쓰다 보니 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꿋꿋이 두 바닥을 쓴다. 정말 주책맞은 엄마라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향하는 마음은 늘 넘친다. 몰래 도시락 한편에 과일팩과 함께 끼워 넣는다. 아이는 '뭐야~'하면서 피식 웃고 밥을 먹을 것이다.
새벽에 나가는 뒷모습에 배웅하려는데 같이 안 가도 된다고, 춥다고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꼭 안아준다. 피하지 않으니 더 꼭 안아주며 입이 떨어졌다. 아무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말이다.
별 거 아냐. 도시락 맛있게 잘 먹고 와.
-소풍 가듯이?
그렇네. 도시락 싸줬으니 소품처럼.
-응 알았어. 들어가라.
시험 끝나고 몇 개의 톡이 차례로 온다.
-일단
-노래방 가서 한스밴드의 오락실을 부를 거고
-도시락
-맛있었어
시험을 망쳤다는 얘기다.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싱거운 계란말이 도시락이 맛있었다는 게.
시험이 그런 것이다. 소금 빠진 계란말이 같을 때가 있다. 평소보다 긴장하고 엄청 공을 들였는데도 결국 아차 하는 순간 망쳐버릴 때가 있다.
수능 지난 가면 네 인생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지만, 그 순간에 있는 아이에겐 그런 얘기마저 몹시 버겁다는 걸 안다. 그래서 어떤 말로 응원을 하거나 위로를 하기란 조심스럽다. 그럴 땐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낫기도 하다. 그저 꼭 안아주고 그도 싫다면 그냥 두어 주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아이가 다시 나에게 올 때까지 마음은 조마조마하지만 안 그런 척 어깨 내려뜨리고 올 때는 그냥 침대 한편 내어주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 하루의 시험은 아이들에게 너무 무겁다.
시험이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대학이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당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란을 말고 도시락을 쌌다. 이리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이 속으로 동동대고 가슴 시리면 얼굴 돌려 눈물 찍는 것만이, 뒤돌아 보는 아이에게 손 흔들어 주고, 달려오는 아이를 품 안에 안아주는 것만이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뿐이 없다. 그런데 이것마저 잘 못할 때가 많다. 내 마음 늘 앞서고 내 입은 늘 방정맞고 내 발은 늘 동동거리는 걸 들키고 만다.
아이가 시험을 보는 시간 동안 그간 아이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이가 처음 나에게 온 날부터 처음 뒤집은 날, 첫발을 떼던 날, 첫 이를 뽑은 날, 첫 벌을 주던 날, 열이 펄펄 나던 날, 방문이 처음 닫히던 날, 소리 죽여 우는 아이의 뒷모습을 발견한 날, 무너진 어깨로 문을 나선 날까지....
시험이 별 거 아니라며 바로 어젯밤까지 시험을 못 볼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던 것은 바로 나, 엄마였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자신하던 계란말이를 망치고 나니, 소풍 가듯이 시험 보러 간다는 아이를 보고 나니, 기도의 방향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세속적인 기도를 하려 했는데, 건강하게 잘 커준 아이에게 너무 고맙고, 그저 감사의 기도로 급전환이 되었다. 다만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엄마가 되기를, 아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점수와 등급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그리고 문득 나는 어떤 엄마일까 의문이 들었다.
엄마수능이 있다면 나는 몇 점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