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5. 가마니 된 마음

by 루이스

가만히 있으니

날 가마니로 아나?

보자보자했더니

날 보자기로 보나?


우스갯소리가 내 경우가 되는 때가 있다.

상대가 무례하게 말을 할 때, 상대가 날 하찮게 대할 때 이런 기분이 들곤한다. 조금 더 정확한 마음을 들여다보면, 상대가 나를 대충 대하는 게 느껴질 때, 나의 말을 곧잘 자르고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나에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 듣는 족족 마음이 컥컥대며 멈춘다고 느껴질 때가 그러하다.


왜 저런 말을 나에게 하지?


나에게는 가끔 이런 가마니와 보자기가 되었던 마음이 찾아온다. 이러한 감정은 대개 가까운 사이나 오래된 사이에서 유발되기 마련이다.


좀 어떠세요? 할만 하세요?

...네?

회사 운영하기 어려우시죠?

월세는 얼마나 내세요? 월세도 올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출판은 계속 하실 건가요?


여러 사람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책임을 맡고 있을 때였다. 주로 우리 출판사에서 모여 회의를 했는데, 회의 끝자락에 15년 넘게 함께 일했던 분이 업무와 상관없는 말을 던졌다.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번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작업이라 우리 출판사와는 상관없는데, 불쑥 회사 안부를 조금 낯설게 물은 것이다. 나는 순간 귓볼 뒤부터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나머지 회의 참석자들이 나와 그를 번갈아보며 회의를 마무리하지 않았으면 눈시울이 붉어졌을 수도 있다. 걱정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그의 질문에 나는 변변한 대답을 못한채 입술은 달싹이면서도 어색하게 웃고만 말았다. 가만히 있으니 다음 걱정인데 질문인 말을 이어갔다. 가슴속이 시리더니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두 볼이 땡땡하게 당겨졌다.

그는 진심으로 나와 작고 작은 우리 출판사가 걱정이 되어 말했을 수도 있다. 무심코 던지 말 한마디일수도 있다. 그런데 난 몸과 마음이 일순간 불편해진 걸까?

나는 생각해본다.

걱정하는 마음이 마땅한 대답할 곳 없는 막다른 질문처럼 느껴진 건 내 자격지심이었을까?

그는 사적으로도 꽤 친한 사이다. 출판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는 나를 찾아왔다. 나를 믿기에 어떤 일이던 같이 하고 싶다고. 그가 내가 돈안되는 일들을 할때마다 걱정을 하긴 했지만, 중요한 일을 함께 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이다.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을 때는 솔직하게 말하고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따뜻하면서도 쿨한 사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이런 일들은 종종 있었다. 대학교 4학년 학원 강의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잡지사 기자, 편집장을 거치고 출판사,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거치며 동료나 소위 윗사람의 한마디에 열시간, 하루, 한달 동안 잊혀지지 않곤 했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진 헷갈리는 말들, 걱정의 말인데 왠진 비난하는 말투, 눈치를 주고 싶은 은근한 마음이 베인 뼈있는 말, 그런 말을 내가 눈치챌 때, 눈치챘지만 아무 말 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가마니가 되고 보자기가 되기도 한다. 이럴 땐 난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상대가 자신의 좋지 않은 감정(상사에게 혼나거나 부부싸움을 하거나 안좋은 개인사를 겪은후)을 나에게 배설한다고 느껴지면 난 순간 몹시 작고 하찮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날은 아무렇게나 구겨져 함부로 나뒹굴고 있는 마음이 쉬이 펴지지 않는다.

특히 믿었던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자신도 원치않은 선을 넘게 될 때가 있다. 입술사이로 튀어나온 말들은 금새 힘을 가진다. 특히 무례한 말은 빠르고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당한 무례함은 뜨겁게 달궈져 심장의 타격감이 꽤나 세고 통증도 오래간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러한 감정은 순간에도 일지만, 대개는 갈수록 깊어질 것을 예감하고 만다. 그런 류의 말을 듣고 나면 1시간 이후부터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알을 씹으면서 되내이게되고, 퇴근시간을 앞두고 더 많이 기분 나빠진 나를 마주하고는 이거 오래 가겠구나 자조하게 된다. 퇴근 길 버스 안 차창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눈빛을 경계하며 심각하게 나빠진 기분이 반사된다. 집에 도착해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건만 더 커지고 깊어진 나쁜 기분은 어깨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밥을 먹고 이불을 덮고 불을 껐지만 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나쁜 기분은 어느 새 제몸을 부풀려 상대의 말의 연유를 끊임없이 찾아대며 이불속에서 소근거린다.


아, 오늘 다 잤다.


몹시 커다란 부메랑으로 계속 돌아올 때 불면의 시간의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이를 고쳐보려 했지만 잘 안된다. 요가 사바사나 자세(송장자세)를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말은 생생한 통증으로 나를 다시 살려낸다. 양을 세어도 99마리 양 뒤에 불쑥 상대의 혀가 날름거리며 세어놓은 양을 다 잡아먹곤한다.

이렇게 상대의 말을 곱씹어 복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매우 해로움을 알지만 생각을 멈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뒤치락거리는 나에게 배우자는 조언한다.


애초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아.

그 부분만 딱 잘라서 버려버려.


그따위 조언에 한층 더 화가난 나는 나쁜 생각이 부왕부왕 성을 내며 곪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맞는 말이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집에까지 싸매고 왔겠는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이상한 인간인가? 이지경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생각의 왜곡과 변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꼬리에꼬리를 무는 마음은 좋지 않은 결과를 예고한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저의가 뭘까?

그 말의 진짜 뜻은 뭐지?


이런 날의 생각은 끝을 모르고 내달린다. 드디어 생각의 끝이 잡히려는 순간 붕 떠올라 날아가 내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닌다. 마치 세포를 증식시키는 거대한 생각의 포자마냥 여기저기서 번식하고 불어나 옥죄어오기도 한다.


아! 애초에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는 아무 뜻없이 한 말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상황이던 의미던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옳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라는 생각 끝에 닿자, 나를 옥죄어오던 거대한 포자덩어리들이 조금 움추려든다.


말의 뜻을 헤아리는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정작 내가 기분이 점점 나빠지는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태도에 있었다. 걱정의 말을 하면서 의자에 기대어 한 팔을 걸치고 뜻모를 웃음을 지으면 말했던 것이다. 그 태도에 진심어린 걱정을 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의 의도가 걱정이던 아니던 난 그의 태도에 화가 났고, 나는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은 그를 조금은 미워하기로 했다.


오늘은 네가 정말 밉다.


그렇게 내 마음에 썼다. 동시에 내 마음이 많이 살팍해진 것을 느꼈다.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말이 가슴을 온통 헤집고 들쑤시는 날.

잠이 오지 않는날도 있는 것이다. 상처가 아물고 결절이 되면 다음번에 조금 더 일찍 잘 수 있게 될까,

크게 한 숨 한 번 내쉬고, 한 번 더 그를 미웁다 말하고 돌아눕는 날.


오늘의 가마니는 비워버리고

어제의 보자기는 풀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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