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데 거절하지 못하고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들게하는 사람
나는 아빠를 싫어한다.
첫 문장을 쓰고 지우길 10분 이상, 써놓고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저 말 뿐이 없을까?
근 50여년 가까이 이 고민을 한다.
뒤잇는 자책도 있다. 너도 그저 그런 자식이구나.
뒤따르는 원망도 있다.
자식에게 이런 마음을 들게하는 아빠가 나의 아빠라는 게 속상하다.
..이런 생각들조차 싫다.
싫은 마음의 뿌리는 꽤 깊숙히 알알이 박혀 고구마줄기 뽑듯 줄줄 따라올라온다.
아빠는 자식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걸 알까? (자식으로서 아빠를 싫어한다는 마음은 죄의식을 수반한다)
아빠는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신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알고 싶다)
아빠는 부모로서 자식을 양육한다는게 뭔지 모르신것 같다 (아빠의 보살핌이 뭔지 강렬하게 알고싶다)
아빠는 엄마 생전에 자신이 가장 다정한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사셨다고 한다...(정말 가장 믿기지 않는다 )
아빠는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참 많다. (아빠 전화가 오면 놀란다 딸이 아닌 자판기로 생각하시는걸까?)
아빠는 자식에게 바라는 것들을 자식들이 간신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매달 자식들이 아빠를 위한 계를 하고도 늘 모자란다)
아빠는 자식이 아빠때문에 50 가까운 나이에도 우는 것을 알까? (본인 하고 싶은 말들만 쏟아낸 전화 이후)
아빠와 자식과는 어떤 관계일까? (잘 몰라서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는 모든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고 기대치가 필요 이상으로 높고 예민한 아내가 되었다)
아빠가 자식에게 해줬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는가? (듣고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쓸쓸하다)
아빠가 나에게 뭘 해주었지? (생일선물이나 따뜻한 포옹 따뜻한 말 대신 비난의 말을 듣고 자라 그가 늘 무서웠다)
...
끝이 어디인지 줄줄 딸려나오는 싫음의 마음은 어느 선에서 끊어내지 않고서는 이 글을 끝낼 수 없기에 줄임표로 끝내본다. 결론적으로는 나는 5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아빠의 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 또한 아빠에게 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아빠와 자식의 관계로 살아왔고, 그 사이에서 엄마가 가교 역할을 하셨던 듯 하다. 그마저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십수년간 관계는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 놓여져 있었다.
고로 나는 무척 궁금하다. 종내에 첫문장을 지우지 않고 이 글을 마무리할지 스스로 궁금한 것이다. 싫은 마음을 주저하게 하는 사람은 나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다. 생물학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은 유전자는 확실하다. 아빠와 자식은 닮았다. 붕어빵까지는 아니지만 닮은 구석이 많다는 걸 유전자를 느낄 정도는 된다. 아버지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난 걸 부정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딱 거기까지다. 태생 이후 아빠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말 그대로 부녀지간의 관계 설정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빠와 관계의 말을 나눠본 적은 없다고 기억한다. 대화보다는 지시와 명령, 훈계와 비난이 더 익숙한 사이라 정상적인 부녀지간은 어떠한지 알수 없으니 규정짓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건 '부정' 같은 건 느껴본 적이 없다고 자식은 생각한다. 이를 아비는 모를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슬픈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아빠는 자식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산다는 걸 모르신다는 것. 나도 두 딸의 부모이기에 더욱 슬프다. 동시에 경계하기도 한다. 아빠같은 부모가 되지 말아야 겠다. 30년 전에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가 아니라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버전이 된 것이다.
다시 고민으로 돌아와보자면, 모순적인 마음이다.
고민의 끝은 저 문장을 쓰면 아빠가 많이 속상하시겠지? 큰 충격을 받으시면 어떡하지? 조금 더 심플할 수도 있다. 평소처럼 화를 버럭내시거나, 무언가 날아올수도, 욕이 튀어나올지도, 너 때문에 또 쓰러질 거란 협박을하실 수도 있다. 아니면 언제나의 결론처럼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고함치시면 난 '아빠 얘기만 하시지 말고 다른 사람 말도 다른 사람 마음도 왜 그런지 생각 좀 해보세요' 절규하며 뛰쳐나올지도 모르겠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는 대강 그런 스토리로 이어졌다. 아빠와 나는 그런 부녀지간이다.
싫은데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이, 하고 싶지 않은데 거절을 못하는 사이, 가고 싶지 않은데 가고 있는 사이, 때론 모른척 하고 싶은데 외면하지 못하는 사이... 사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이니, 그런 대상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반대로 아빠의 입장에서 나는 어떤 자식일까 궁금한 적이 있었던 때도 있었다. 10대 이후로는 없어졌지만, 늘 무섭던 아빠에게 잘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었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생각이나 평가가 궁금하지 않다. 간혹 아빠가 친인척들에게 나를 효녀라고 말씀하신다는 걸 안다. 난 그 말이 돌아돌아 내 귀에 들어올 때마다 뒷목이 서늘하고 머리털이 쭈뼛거렸다.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것이기에 효도라 할 수 없다. 진심을 다하려 애쓰지만, 싫은 마음이 커질 때 억지로 하다가 몸살이 나거나 화병이 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방적인 아빠의 전화를 받고는 어린 딸을 앞에 두고 서럽게 목놓아 운적도 있다. 첫째딸이 일곱살 때였다.
솔직히 아빠를 마주하는 시간은 나에게 큰 용기와 결단, 기도와 결심이 필요했다.
그런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의 병원 진료에 보호자로 동행하는 것.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고 둔탁한데, 마음은 서두르고 있어 신발 앞코가 땅에 쓸렸다.
태어나면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기억나는 유년 시절부터 30대까지 아빠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를 '무뚝뚝', '무섭다', '엄한', '큰소리' ,'윽박지름' ,'공포', '군림' ,'독재', '폭력', ''피하고 싶은' , '미움', '슬픔', '원망'...
결국 이런 마음은 뭘까
미운데 봐야하는 마음
싫은데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싫은 마음을 알면 상처받을까봐 싫은데도 만나는 마음
만나면 애처롭고 가련한 마음
이러한 양가적인 마음들이 뒤섞인 내 가슴은 버겁다
이런 마음을 혹자는 애증이라고 하던데, 적합한 표현일까?
굳이 증애로 음절을 바꿔쓰곤 생각해본다.
미움과 사랑을 아우르는 마음일까,
그럼 내 마음에는 나도 모르는 사랑도 있었다는 걸까
미움과 사랑 그 어느 사이에 있다면 미움쪽으로 한참 기운 나의 마음은 사랑쪽으로 기울 수 있을까?
결국 이런 마음을 종내에는 알아낼 수 있을까
장담컨데, 난 이글을 써놓고 한참이나 발행하지 못할 것이다. 싫은데 싫은것을 알게될까봐 그래서 그가 아플까봐 너때문이라고 할까봐 그에게 미안해질까봐 마음 졸이며 한동안 열어 고치다 저장하곤 다시 열어 최대한 완곡한 표현을 쥐어짜내다가 적합한 어휘를 찾지 못해 서성이다가 창을 닫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만에 발행할 것이다.
3년후 p.s 글 말미에 쓴 장담대로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결국 아버지가 소천하신 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나의 마음을 나만 몰래 보다가 이제야 발행한다. 아버지를 보내는 마음은 매우 복잡했지만, 종내 나의 마음을 알지 못했지만 그 뾰족하고 숭숭한 마음은 스스로에게 화해를 청했다. 그의 병상에서 나는 애증이 얼마나 헛헛한지, 얼마나 부질없는지, 얼마나 교만한 마음이었는지 알게되었다. 50년 가까이 품고 살던 마음도, 아비와 영영 이별한 지금의 마음도 모두 아직은 생경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