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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Jul 26. 2020

심리학이 번역해 주는 아기의 마음 들어보기

려원기 <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서평

 처음 부모가 된 사람은 혼자 무인도에 뚝 떨어진 것처럼 낯설고 두렵다. 하지만 낯설어할 틈도 없이 실전에 부대껴야 한다. 따라서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무기를 구하는 마음으로, 유용한 정보를 찾아 필사적으로 헤맨다.


 다행히 육아에 관련된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대이긴 한데, 실은 정보를 얻을수록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정보원이 워낙 다양하고 제각각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교육이나 발달 전문가로부터, 열 남매 키운 옆집 할머니라든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여 최신 육아 트렌드를 섭렵한 옆집 아기 엄마에, 이 모든 정보를 다 아우르는 '맘 카페'의 즐비한 검색 결과들. 이를테면 '등센서', '수면 교육' 같은 고민에 대한 답을 얻고자 각종 출처의 정보를 구해 보지만, 뚜렷한 답은 없고 모두 그럴싸한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정보의 홍수에서 한참을 방황하지만 결국 엄마인 나의 선택이자 책임임을 깨닫는 것으로 귀결되곤 한다. 육아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답이 없는 고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엄마의 마음에는 최소한 아기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한 주장보다는, 근거가 확실한 지침을 따르고 싶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소아과 의사가 쓴 <삐뽀삐뽀 119 소아과> 같은 책을 아이를 낳기 전부터 소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의학에 국한된 정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의학에서 연구된 부분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으니 다른 정보보다 우선해서 참고하게 된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육아 보고서, <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책은 혼란스러운 육아 상식의 홍수 속에서 심리학적 근거로 육아라는 난제를 풀어가는 지침을 제공하는 든든한 책이다. 이 책의 모태는 <정신의학신문>에서 '아빠로 자라나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되던 웹툰이다. 원제가 말하는 것처럼 육아, 특히 아기의 정신 발달에 대해 책으로만 배워 알던 정신과 의사가 직접 육아를 경험하며 이론을 소화시킨, '아빠 성장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아기라는 신비한 존재가 던져준 도전에 당황하고, 고민하며, 책을 찾는다. 그리고 정신분석가들이 주는 가장 근접한 설명을 찾아내어 '아기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독자는 저자의 지식과 고민과 노력을 토대로 제시되는 심리학적 근거를 무기로 장착, 말 못 하는 아기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6장 '아기가 손을 탈까?'는 신생아 엄마들이 필수적으로 거치는 고민을 다룬다.

<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p.69  


 너무나도 작고 예쁜 신생아를 마냥 안아주고 싶지만, 그러다가 계속 안아줘야만 하는 아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거기에 대한 뇌과학적 답은 이렇다.  

안아줄수록 아기는 헛울음으로 부모를 조종하려 들 것이라 어른들은 염려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정교한 사고에 필요한 전두엽 글루타메이트 체계가 1세 이하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략) 아기가 우는 동안 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퍼져나가고 교감신경이 항진된다. 이런 상황이 거듭된다면 민감한 아기 뇌의 배선이 영원히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

p.70-74 일부 발췌

 만 1세까지는 가능한 아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다. 등센서 아기를 돌보는 하룻밤이 얼마나 고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1년을 투자해서 내 아이가 보다 안정적인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데 도움이 된다면, 쉽게 불안하고 우울해지지 않는 '심리적 금수저'가 될 가능성을 높인다면 어느 부모가 그 노고를 마다하겠는가.


  11장 '객관적 증오'는 육아의 '분노적 측면'을 다룬다. 왜 육아를 욱! 아, 욱! 아,의 반복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p.139
아기가 부모를 미워하기 전부터, 이미 부모의 마음속에는 미처 깨닫기 못한 아기를 미워하는 감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는 무자비하고, 부모를 쓰레기나 무보수 하인, 노예로 취급합니다. (중략) 부모는 아기를 향한 미운 감정을 견디고서 동시에 어떠한 행동으로도 옮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품은 증오를 철저히 인식해야만 해요.

p.138-140 일부 발췌


<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p.140


 부모를 무자비한 노예로 여기는 아기에게 느끼는 증오가 정당한 것이며, 하지만 사랑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그 증오를 견디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오늘도 무자비한 우리 집 상전님을 바라보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나의 마음에 안도감과 책임감을 함께 주는 대목이었다.




 서평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쉽지만, 육아를 경험하는 이로서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많은 공감 '짤'들을 얻을 수 있는 게 이 책의 묘미다. 육아 에세이를 쓰다 보면 이 복잡한 감정이 글로 표현되지 않고 지루한 설명이 돼버리고 마니 차차리 이걸 그림이나 사진으로 전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의 내 심정이 시원하게 한 컷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했다. 덕분에 300쪽이 넘는 분량이고 심리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만 전혀 공부하는 것 같지 않게, 낄낄대며 한 권을 금방 다 읽을 수 있다. 챕터 별로 웹툰과 배경 이론에 대한 줄글이 섞여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웹툰이 더 많았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 아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p.164


 저자가 아기의 발달에 정통하여 고민 없이 명쾌한 부모 노릇을 하고, 그래서 일반 부모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책을 썼다면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당황하는 아빠, 공부하는 아빠, 심리적 이론을 통해 최선의 사랑을 주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독자에게 큰 울림과 교훈을 준다. 우리는 완전한 정답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변모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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