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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ARUKI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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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 Nov 03. 2020

Arpeggione sonata

Schubert



남자가 오믈렛을 만드는데 어떤 풍경이 가장 어울릴까?

하루키는 오믈렛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타이밍을 정사 다음날 아침이라고 하고 있다.

침대에서 아직 여자친구가 자고 있고 남자가 티셔츠와 사각팬티 차림으로 주방에 서서 물을 끓여 커피를 만든다. 근사한 커피향에 여자친구가 눈을 뜬다.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한데 시금치 오믈렛이라도 괜찮으면 만들어줄까?" 남자는 말하고는 가스불을 키고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별거 아니라는 듯 슥슥 오믈렛을 만들어 접시에 담는다. 여자친구는 남자용 스트라이프 면셔츠를 걸치고 나른한 듯 침대에서 나온다. 아직 졸리지만 오믈렛은 제법 맛있을것 같다. 새로운 아침 해가 주방 이곳저곳을 눈부시게 비추고 라디오에서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흐른다. 대충 이런 광경이다. 

물론, 하루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없다. 


<오믈렛을 만들자> 의 삽화



곡의 시작 느낌부터가 그렇게 상쾌하지 않다. 그래서 음악만 들었을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섹스한 다음날 아침 이런노래가 배경음악이라면 이 남자 여자는 불륜이거나 바람이 났거나 같은데. 아무래도 끝은 슬픈결말이 날것같은 그런 분위기의 음악이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쓸 당시의 일기중에는 이런내용이 있다고 한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서 들때마다 다시는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날의 슬픔이 다시 밀려옵니다. 이렇게 기쁨도 따뜻함도 없이 나의 하루하루는 지나갑니다.' 아무래도 찝찝한 슬픈 음악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아침에 오믈렛을 먹으면서 듣고 있을 음악은 아니잖아요. 무라카미상.) 

의미가 따로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르페지오네의 의미를 찾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의미로 음악이 쓰인거라면..역시 천재같은데. 아르페지오네는 악기의 이름으로 지금은 존재하지않는 악기라고 한다. 그래서 이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걸까? 하루키 그에게는 이번생에 존재할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분좋은 상상과 존재하지 않는 악기의 클래식 연주곡. 어쩐지 심오하다. 차라리 음악이 없었더라면. 그냥 단지 좋아하는 음악이라서 글에 넣었을뿐이라고 한다면 난 조금 섭섭할수도 있을것 같다.



out cover
in cover


<오믈렛을 만들자.> 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에세지집 안에 있는 7번째 이야기이다. 3권의 에세이로 엮인 무라카미라디오 시리즈를 꽤 좋아해서 일본출간단행본, 한국출간단행본 같은책을 중복해서 가지고 있게 되었다. 번역이 어떤가 비교해보는거도 재밌고 책 디자인이나 인쇄 디테일도 조금씩 달라서 재밌다. 



일본책에는 책갈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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