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 작가들을 만나다, 몽파르나스 묘지

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11)

by 우주진


이번 파리 여행에서는 유독 묘지를 자주 찾았다.

죽은 이들을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이 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페르라셰즈 묘지에 이어, 파리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몽파르나스 묘지(Cimetière du Montparnasse)에도 가보기로 했다.


사람은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페르라셰즈 묘지에서 고생한 경험 덕분에, 이번에는 좀 더 효율적으로 방문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우선 몽파르나스 홈페이지에서 묘지 지도를 다운받는다.

그곳에 영면하고 있는 유명인들 중 꼭 만나고 싶은 인물들이 있는지 찾아본다.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지만 욕심을 버린다.

이미 책을 읽었거나 작품을 본 작가에 한해서 방문을 하기로 한다.

그들의 묘지 번호를 찾아 지도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를 한다.

동그라미를 다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빨간색 줄로 그려 넣는다.

준비 완료!


몽파르나스를 방문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사르트르였다.

그의 평생의 동반자인 보부아르도 이유로 들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해 보부아르의 책 <제2의 성>은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기 때문에, 양심상 강하게 방문 이유로 내세우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두 사람이 함께 묻혀 있어서, 사르트르를 찾아가며 자연스럽게 보부아르도 만나게 되었다.

흰색 무덤에는 꽃 두 송이가 놓여 있었고, 묘석에는 온통 빨간색으로 이름 같은 게 적혀 있었다.

아마도 방문객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거 같았는데, 왜 모두 빨간색인지는 알길이 없었다.

그런데 흰 배경 위에 붉은 글씨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청순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두 사람의 지적 여정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둘의 평생의 사랑을 기념하고자 남긴 낙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현실주의 사진 작가 만 레이의 무덤은 심플하면서도 시크한 멋이 있었다.

그의 흑백 사진처럼, 온통 검은색 묘석 위에 흰 글씨로 <Unconcerned but not indifferent> 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무심하지만 무관심하지는 않은.

이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가?

자세히는 몰라도 왠지 내 눈에는 멋져 보였다.

나 같은 개인주의자가 어디가서 좀 써먹어도 될 만한 문장 아닌가.



길을 걷다 보면 무덤을 둘러싼 벽 한쪽에 보들레르의 조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보들레르의 조각상이 죽어 누워있다.

죽은 보들레르의 영혼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 같다.

아니면 여기 묻힌 모두를, 혹은 파리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파리로 떠나오기 전, 보들레르의 산문시 <파리의 우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제목 그대로 밝고 활기찬 정서는 아니다.

아주 멜랑꼴리한 느낌의 시들이다.

한 편씩 한 편씩 천천히 읽는 게 좋을 듯 하여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이곳에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보들레르를 바라보며, 대부분의 시인은 죽으면 천국에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사람들인 우리보다, 그들은 더 아름답게 천상의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천사들은 시인이 죽으면 그들의 영혼을 바로 하늘로 이끌고 갈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사무엘 베케트, 수전 손탁, 모파상, 뒤라스의 묘지를 찾았다.

이 묘지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 규모가 페르라셰즈의 절반 정도라 지난번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특별한 조각상도 만날 수 있었는데, 바로 니키 드 생팔의 조각들이었다.

화려한 색채 혹은 반짝이는 모자이크가 무채색의 무덤에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이 조각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녀의 조수와 친구가 이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을 그저 슬픔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화려하고도 아름답게 기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조수의 무덤에는 그의 고양이를, 친구의 무덤에는 새를 두었다.

그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니키 드 생팔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묻혀있다고 한다.

그녀 역시 그곳에서 외롭지 않길 바란다.


미리 계획을 잘 세우고 온 탓인지, 묘지를 돌아다니는 동안 큰 피로를 느끼지는 못했다.

남편도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내내 무덤만 다닌 것이 아니라, 보들레르의 천사같은 조각상도 보고, 니키 드 생팔의 조각도 보았기 때문일까?


지난번 페르라셰즈에서도 그랬지만, 이렇게 묘지를 방문하고 나면 죽은 이들과 왠지 모를 친밀감이 생긴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책이나 작품을 더 기꺼이 접하려고 하게 된다.


하나의 장소가 과거의 작가들을 만나게 한다.

이런 것도 일종의 타임슬립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난번의 페르라셰즈 보다는 다소 가까운 과거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