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빈둥댈 수 없는 곳, 카페 드 플로르

문학과 미술로 만나는 파리 여행 (10)

by 우주진


파리로 떠나기 직전에 사르트르를 읽었다.

이름만으로도 허세력을 폭발시키는 바로 그 이름, 사르트르.

내가 읽은 책은 <존재와 무> 같은 철학서는 아니었고, 그의 초기 소설 <구토>였다.

왠지 파리에 가기 전에 사르트르를 한번 읽어보면 좋을 거 같았다.


이 책은 십수 년 전에 한번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주인공 로캉탱이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 소설을 씀으로써 의미를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문학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르트르가 이 무의미한 세상에 기대한 것은 문학만이 아니라 예술 전반이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되었고 그것에 더욱 동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그의 지적인 동반자 보부아르와 함께 드나들었다는 생제르맹데프레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에 꼭 가보리라고 마음먹었다.


파리 여행 일정 중에 기대를 안고 찾아갔지만, 나만 그곳에 가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사람이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았다.

카페 테라스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테이블로 빼곡했고, 거기에 사람들도 빼곡히 앉아 있었다.

줄을 서서 잠시 기다릴까 망설이다가, 일단 맞은 편에 위치한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 역시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유명한 카페라고 했다.


다행히 테라스에 몇 자리가 남아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레 되 마고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입구에 대기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레 되 마고의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은 경험은 아주 좋았다.

이번 파리 여행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따뜻한 가을 날씨, 그리고 친절한 직원들 때문이었다.


그래도 드 플로르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크게 남았다.

입구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일주일 후,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대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도 몇 사람이 줄을 서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기다릴 만했다.

잠시 후 매니저가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테라스에 앉았는데, 테이블 위에는 장자크 샹페(Jean-Jacques Sempé)가 그린 카페 드 플로르 그림이 들어간 테이블 매트가 놓여 있었다.

그 그림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배가 고픈 시간은 아니어서 나는 양파 스프와 차를 주문했고, 남편은 키슈와 함께 핫초코를 주문했다.

지난번에 갔던 레 되 마고의 핫초코는 달아도 너무 달고 양도 엄청나서 약간의 트라우마를 남겼었다.

아무리 파리의 핫초코가 유명해도 두번 먹을 건 아니라 생각했었지만, 다행히 이 곳의 핫초코는 그렇게까지 달지는 않았다.

트라우마를 약간 상쇄해 주는 맛이었다.


우리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관광객처럼 보였다.

영어 혹은 내가 알 수 없는 외국어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 역시 약간 흥분된 기분으로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파리지앵이라면 이 카페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싸고, 사람들도 너무 많고, 이렇게 정신이 없는데 굳이 여기에 올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고 이곳에 온 데에는 사르트르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과 동료들 역시 이 일대의 카페를 즐겨찾았다고 했다.

아마도 이 카페에 앉아 초현실주의 선언문의 토대를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좋아하는 문학과 미술이 이 작은 카페 안에 함께 켜켜이 쌓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2층에 올라가보니, 큰 창 앞의 자리가 참 좋아보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혹은 초현실주의자들은 혹시 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고는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물론 근거는 없다.


그 옛날의 공기 분자 중에 아직 남은 것이 있다면 그걸 호흡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론 세월이 이미 그것들을 다 흩어 사라지게 했겠지만.


나는 사르트르 <구토>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 떠올랐다.

“앙투안 로캉탱이 이 책을 썼어. 카페에서 빈둥대던 빨강 머리 친구지.”


실제로 우리는 사르트르가 읽고 쓰고 토론하던 곳이라고 해서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의 이 카페에서는 절대 빈둥댈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서로 너무 가까이 붙어있었고,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여유와 빈둥댐이 아니라 북적임과 분주함이었다.


빈둥댐으로써 태어난 예술의 영향력은, 더 이상 그곳을 여유 있게 빈둥댈 수 없는 장소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이것이 장소의 모순이자, 인생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 곳을 떠나며 생각했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면 나도 동네 카페에서 빈둥대리라.

로캉탱처럼 소설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브런치 글 정도는 쓸 수 있겠지.

조금 우습지만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유명해진다면, 내가 빈둥대던 동네 카페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