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고향 음식 맛을 잊지 못해 평양냉면, 함흥냉면, 아바이순대 집 문턱을 넘나들듯, 나 역시 담백하고 수수하면서도 깊은 장맛이 어우러진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뒷골목을 뒤진다. 한때 직장 동료들은 내가 가자고 하는 음식점이라면 두말없이 그곳으로 따라오곤 했다. 그들은 맛의 여운이 한동안 입안에 남아서 또다시 그 음식점으로 찾아가곤 하였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덕에 담백하고 수수하면서 깊은 장맛이 우러나는 향토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 또한 그런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된장국과 갈칫국을 좋아해서 봄에 냉이 된장국을 한 솥 끓여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먹기도 한다. 손질한 냉이를 미리 양념에 재어 두면 간이 배어 감칠맛이 난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배추나 얼갈이로, 겨울에는 시래기로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대파와 멸치 등으로 우려낸 육수를 함께 쓰면, 된장국은 시원하고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갈칫국은 식구들이 비릿한 생선 냄새를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는 끓이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고향의 맛, 된장국보다 갈칫국이 더 그립다.
어릴 때부터 엄마 손맛이 들어간 갈칫국을 먹어 온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고향이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시골이라 오일장이 서면 엄마는 신선한 갈치 몇 마리를 사 와서 국을 끓였다. 애호박과 배추를 숭숭 썰어 넣고 간은 오래 묵은 시골 된장과 간장으로 맞추면 그만이다. 엄마 손맛으로 끓인 갈칫국의 그 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담백하고 수수하면서도 시원하고 비린 맛이 전혀 나지 않는 맛, 깊은 장맛과 어우러진 그 맛은 마치 예술을 품은 듯하다.
여기에 끓인 생멸치 젓갈 쌈장을 얹어 먹는 호박잎 쌈도 내가 좋아하는 향토음식이다. 무쇠솥에서 밥 뜸을 들일 때, 손질한 호박잎을 넣고 솥 안의 뜨거운 김에 찐다. 밥을 푸기 전에 먼저 호박잎을 꺼내서 식혀야 제대로 쌈을 싸 먹기에 좋다. 이제 생멸치 젓갈로 쌈장을 만들 차례이다. 소금에 절여진 삭은 생멸치를 칼로 저며서 송송 썬 청양고추와 함께 넣고 중탕으로 끓인다. 끓인 생멸치 젓갈에 다진 마늘과 얇게 썬 쪽파를 넣으면 완성이다. 멸치젓 쌈장은 구수하면서 깊은 맛이 배어 있어 쌈을 먹을 때마다 항상 생각나곤 한다.
고향이 나와 비슷한 사람은 갈칫국과 끓인 생멸치 쌈장을 얹어 먹는 호박잎쌈의 깊은 맛을 기억할 게다.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웠던 게 엄마 손맛이 들어간 갈칫국과 끓인 멸치젓 쌈장으로 싸 먹는 호박잎쌈이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그 맛을 즐겼다.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호박잎쌈도 함께 먹었다. 지금도 갈칫국과 끓인 멸치젓을 얹어 먹는 호박잎 쌈이 제일 그립다. 담백하면서 수수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음식처럼 나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