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은 출발선이다.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축하합니다. 최종 선발되셨습니다."
이메일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환호한다.
"드디어!" "해냈어!"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SNS에 선발 소식을 올린다.
그런데 3개월 후, 같은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져 있다.
"뽑아놓고 왜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거예요?"
"담당자가 연락도 잘 안 받아요."
"이게 오픈이노베이션이에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선발이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선발은 출발선이다.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당신의 태도가 평가받는다.
기술력이 아니라 협업 능력이 평가받는다.
미래 비전이 아니라 현재 신뢰도가 평가받는다.
2019년, 두 스타트업이 같은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편의상 A사, B사라고 부르겠다.
A사는 기술력이 뛰어났다. AI 기반 솔루션이었고, 데모도 완벽했다. 시장 반응도 좋았다.
담당자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추천했다.
하지만 3개월간의 협업 기간 동안 문제가 생겼다. 현업 팀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계속 올라왔다.
"기술은 좋은데, 소통이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 요청을 들어주기보다는 자기 기술만 이야기합니다."
"일정을 계속 미룹니다."
결국 투자심의위원회에서 현업 팀장이 한 마디 했다.
"기술이 좋아도, 이 팀과 장기적으로 협업하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투자는 부결됐다.
B사는 달랐다. 솔직히 사업 모델이 명확하지 않았다. 시장 규모도 크지 않았다.
일반 VC라면 1차 서류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협업 기간 동안 대기업 담당자와 현업 팀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매주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합니다."
"우리가 요청하면 주말에도 대응해줍니다."
"문제가 생기면 미리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협업 3개월 차, 현업 팀장이 먼저 말했다.
"이 팀이라면 장기적으로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자를 적극 검토해주세요."
사업 모델은 협업하면서 함께 다듬어갔다.
투자는 승인됐다.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건 명확하다.
적어도 OI세계에서는 무조건 기술이 좋다고 투자받는 게 아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팀이 투자받는다.
그럼 "함께 일하고 싶은 팀"은 어떤 팀일까?
그리고 "함께 일하기 싫은 팀"은 어떤 팀일까?
9년간 수백 개 스타트업을 보면서 명확한 패턴을 발견했다.
성공하는 팀은 크게 3가지 유형이었고, 실패하는 팀도 3가지 유형이었다.
어떤 창업자들은 사람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담당자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현업 팀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파악한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프로그램 시작 첫 주에 담당자와 점심을 먹었다.
업무 얘기보다는 담당자의 고민을 들어줬다.
그리고 그가 임원 보고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시장 리포트를 먼저 제공했다.
담당자는 자연스럽게 이 대표를 여러 현업 팀에 소개했다.
3개월 만에 3개 부서와 협업이 진행됐다.
결국 투자까지 이어졌다.
이 유형의 핵심은 "먼저 주는 것"이다. 요구하기 전에 도움을 준다.
그러면 상대방도 돕고 싶어진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이런 타입은 상위 의사결정자를 만난 후 초기에 도움 준 사람들에게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건 장기적으로 평판에 악영향을 미친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소중히 여겨라.
어떤 창업자들은 조직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각 팀의 KPI가 뭔지, 누가 실제 의사결정권자인지 정확히 파악한다.
한 B2B SaaS 스타트업은 선발 직후 2주간 파트너사를 분석했다.
조직도, 각 팀의 목표, 담당자들의 LinkedIn 프로필까지 철저히 리서치했다.
그리고 첫 미팅에서 정확히 짚어냈다.
"마케팅팀은 리드 생성이 목표죠. 영업팀은 전환율이 목표고요. IT팀은 안정성이 최우선이시죠."
각 팀에게 다른 가치 제안을 했다.
마케팅팀에게는 "리드를 30% 늘려드리겠습니다",
영업팀에게는 "전환율을 15% 높이겠습니다",
IT팀에게는 "기존 시스템과 100% 호환됩니다".
모든 팀이 만족했다. 투자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유형의 핵심은 "맞춤형 접근"이다.
모두에게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원하는 언어로 말한다.
어떤 창업자들은 단기 거래가 아니라 장기 파트너십을 생각한다.
한 스타트업은 대기업에게 "우리 플랫폼 쓰세요"가 아니라 "함께 시장을 키워갑시다"라고 제안했다.
자신들의 데이터를 공유하고,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하며, 새로운 고객층을 함께 개척했다.
대기업 입장에서 이 스타트업은 "버릴 수 없는 파트너"가 됐다.
단순 공급업체가 아니라 비즈니스 성장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됐다.
투자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유형의 핵심은 "Win-Win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말만 하지 않는다.
실제로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다.
"뽑아놓고 왜 아무것도 안 해주냐"고 불평하는 팀이 있다.
선발됐으니 이제 대기업이 알아서 다 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스타트업은 선발 후 2주간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언제 미팅하나요? 데이터는 언제 주나요? 예산은 언제 나와요?"
담당자가 말했다.
"먼저 구체적인 협업 방안을 제안해주세요."
스타트업이 반응했다.
"그건 거기서 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담당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이 팀과 일할 이유가 없네.'
투자는 당연히 없었다.
수동적으로 나오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대기업 담당자들도 본업으로 바쁘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팀에게만 기회가 간다.
어떤 스타트업은 선발되자마자 요구 리스트를 들고 온다.
한 AI 스타트업은 협업 시작 1주 만에 말했다.
"고객 데이터 10만 건 주세요. 마케팅비 5천만원 지원해주세요. 전용 개발 서버 만들어주세요."
담당자가 설명했다.
"절차가 필요합니다."
스타트업이 압박했다.
"다른 대기업은 다 해줬는데요?"
2개월 후 협업은 중단됐다.
투자 논의는 없었다.
일방적인 요구는 관계를 악화시킨다.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요구만 하는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어떤 스타트업은 단기 성과에만 집중한다.
한 커머스 스타트업은 협업 첫 달부터 말했다.
"이번 달 매출 목표가 있어서 프로모션 좀 크게 해주세요."
대기업이 제안했다.
"장기 계획을 먼저 세우죠."
스타트업이 밀어붙였다.
"일단 매출부터 올리고 봐야죠."
단기 프로모션은 했다.
하지만 3개월 후 스타트업이 말했다.
"이제 우리끼리 하겠습니다."
대기업은 이 회사를 "단기 거래처"로만 기억했다.
투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장기 파트너십 없이는 투자도 없다.
투자는 장기적 신뢰의 결과물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착각한다.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를 일반 VC와 같다고 생각한다.
일반 VC는 묻는다: "이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나?"
CVC는 묻는다: "이 회사와 협업이 가능한가?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나?"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게 꼬인다.
일반 VC는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재무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결정한다. 비교적 단순하다.
CVC는 훨씬 복잡하다.
담당자 검토 → 현업 팀 평가 → 투자심의위원회 → 전략기획팀 검토 → 임원회의 → 법무 검토.
최소 2-3개월, 길면 6개월 이상 걸린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기준으로 평가한다.
OI담당자는 "협업 가능성"을 본다. 현업은 "실제 도움"을 본다. 임원은 "전략적 가치"를 본다.
좋은 사업계획서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단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와 현업 팀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목표도 다르고, 평가 기준도 다르다.
담당자의 목표:
프로그램 무사히 운영하기
좋은 스타트업 발굴했다고 인정받기
상부에 보고할 성과 만들기
현업의 목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솔루션 찾기
자기 팀 매출이나 효율 높이기
본인 업무 부담 줄이기
같은 회사 사람인데 원하는 게 완전히 다르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둘 다 만족시킨다.
OI담당자에게는 "보고할 거리"를 준다.
현업에게는 "실제 도움"을 준다.
실패하는 스타트업은 둘 중 하나만 신경 쓴다.
OI담당자만 만족시키면 현업에서 거부당한다. 현업만 만족시키면 OI담당자가 추천하지 않는다.
사운들리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똑똑했던 점은 OI담당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현업과 직접 소통한 것이다.
먼저 OI담당자와 충분히 소통해서 신뢰를 쌓았다.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제안했다.
"마케팅팀 분들과도 직접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OI담당자님도 함께 계셔서 전체 방향을 잡아주시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현업에게는 기술 얘기 대신 구체적인 비즈니스 임팩트를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고객 반응률이 30% 올라갑니다."
OI담당자도 만족, 현업도 만족. 투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협업 중 가장 흔한 실수가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고객 데이터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데모데이를 한 달 연기해주실 수 있나요?"
"마케팅비를 조금만 더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OI담당자 입장에서 이런 요청들은 매우 부담스럽다.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함부로 못 준다.
일정은 이미 여러 팀과 조율된 상태다. 예산은 상부 승인이 필요하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말한다.
"현재 주신 데이터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정에 맞춰 진행하겠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데모 후 보완하겠습니다."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내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페이민트는 달랐다. 대기업에게 받기만 한 게 아니었다.
대기업이 준 것:
결제앱에 탑재
마케팅 채널
브랜드 신뢰도
페이민트가 준 것:
결제 가능 학원 리스트 제공
현금우위 시장이었던 학원 카드결제 시장 개척
마케팅 아이디어 제안
결과는? 단순한 기술 공급업체가 아니라 진짜 파트너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투자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성공하는 3가지 유형과 실패하는 3가지 유형을 봤다.
당신은 어디에 가까운가?
성공 유형:
사람을 읽고 먼저 도는 사람
구조를 이해하고 맞춤 접근하는 사람
장기 파트너십을 만드는 사람
실패 유형: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사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사람
단기 성과만 추구하는 사람
솔직해져라. 자기 진단이 첫 걸음이다.
만약 실패 유형에 가깝다면? 지금 당장 바꿔라. 아직 늦지 않았다.
선발된 지 1주일이든 2달이든, 오늘부터 태도를 바꾸면 결과도 바뀐다.
만약 성공 유형에 가깝다면? 더 강화하라. 그리고 다른 유형의 장점도 배워라.
사람도 읽고, 구조도 이해하고, 장기 파트너십도 만들 수 있다면 최강이다.
9년간 보면서 확신하게 된 게 하나 있다.
기술이 좋아도 관계 관리를 못하면 투자 못 받는다.
기술이 다소 부족해도 관계 관리를 잘하면 투자받는다.
A사는 기술이 뛰어났지만 투자 못 받았다. 협업 태도가 문제였다.
B사는 사업 모델이 불명확했지만 투자받았다. 협업 태도가 좋았다.
CVC 투자는 재무적 투자가 아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을 전제로 한 투자다.
그래서 창업자의 태도, 협업 가능성, 소통 능력이 사업계획서만큼, 어쩌면 사업계획서보다 더 중요하다.
선발은 시작일 뿐이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음 챕터에서는 이런 관계 관리의 결과로 실제로 폭발적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본다.
어떻게 1+1이 3이 되고, 5가 되고, 때로는 30이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