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0. 폭발적 성장을 만든 오픈이노베이션

"오픈이노베이션, 정말 효과가 있나요?"

by 박원규

8년간 대기업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팀장으로 살다 나온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오픈이노베이션, 정말 효과가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90%는 실패한다.

하지만 나머지 10%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월거래액이 8개월 만에 30배 뛰고, 3개월 만에 7억원 신규 매출을 만들고, 플라스틱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바꾸는 일.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문제는 그 10%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다. 운일까? 타이밍일까?

아니다. 분명한 패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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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디오랩스 김ㅇㅇ 대표는 막막했다.

키즈 스마트폰 관리 앱 '아이빌리브'의 기술력은 검증됐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평가도 좋고, 재구독율 77%, 유료 전환율 10%.

숫자로 증명된 서비스였다.

문제는 월 4,400원 구독료에 고객이 많지 않다는 것.

6명의 개발팀이 살아남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SKT, KT, LG유플러스는 이미 자체 키즈앱을 가지고 있었다.

중소 통신사를 찾아가 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고고팩토리를 만났다.

고고팩토리는 KT망 기반 MVNO 3위 사업자다.

전국 1,300개 다이소 매장이라는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

알뜰폰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특히 키즈폰, 시니어폰 같은 특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IT 개발 역량이 부족했다.

2024년 11월 첫 만남. 2025년 6월, 세 가지 계약이 동시에 체결됐다.

제휴 계약, 투자 계약 2천만원, 개발 용역 계약 3천만원.

총 5천만원의 자금이 디오랩스에 들어왔다.

이제 안정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다.


2025년 8월, 디오랩스의 앱이 기본 탑재된 '안심키즈폰' 서비스가 론칭됐다.

온라인과 전국 다이소 매장에서 동시 판매.

3개월 만의 결과는 놀라웠다. 매출 7억원, 내년에는 45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고고팩토리도 만족했다. 경쟁사와 차별화된 키즈폰 서비스를 갖추게 됐으니까.

단순 알뜰폰 사업자에서 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통신사로 한 단계 올라선 것이다.


* * *


씨드앤은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온도 센서와 AI 분석으로 냉난방비를 평균 20% 절감하는 검증된 기술.

투썸플레이스에서 실제로 20% 절감 성과를 내고, 카카오벤처스로부터 7억원 투자를 받았다.

7년간 투자 없이 버티다가 첫 투자를 받은 순간, 고객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개발자들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센서를 설치하고 있었다.

성장할수록 개발이 멈추는 악순환. 초등학교 동창 사이였던 두 창업자는 고민에 빠졌다.

고객사는 늘어나는데, 개발팀까지 설치 현장에 투입되면 새로운 기능 개발은 언제 하나?


그때 SK네트웍스서비스와 연결됐다.

SK네트웍스서비스는 세븐일레븐 편의점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회사다. 전국에 조직이 깔려 있다.

씨드앤의 약점이 정확히 SK의 강점이었다. 아니, SK 입장에서도 씨드앤의 기술은 매력적이었다.

전국 조직은 있는데, IoT 설치와 유지보수 물량이 더 필요했으니까.


첫 미팅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1주차에 전략 파트 미팅, 2주차에 영업 파트 미팅, 3주차에는 첫 협업 계약 직전까지 갔다.

SK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딱 찾던 거예요. 기술은 있는데 설치 인력이 없는 회사. 우리는 인력은 있는데 기술이 없었거든요."

두 회사의 협업을 통해 전국 다이소매장에 씨드앤의 제품을 SK네트웍스가 설치를 진행했고, 그 성과에 힘입어 씨드앤은 2025년 상반기 60억원의 신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현재 씨드앤은 여러 금융권과 프랜차이즈를 연결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다.

한 번의 성공이 다음 성공을 부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씨드앤은 이제 개발에만 집중한다. 설치와 유지보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된다.


* * *


조광페인트는 1947년 창업한 77년 전통의 도료 전문기업이다.

그런데 오래된 기업일수록 고민이 하나 있다. 매년 수백 톤의 폐도료가 발생한다는 것.

전체 원자재의 10-20%가 폐기물로 나온다. 운송비, 매립비, 소각비. 처리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요즘은 ESG 경영이 화두다. 폐기물을 줄여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2022년부터 조광페인트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운영해왔다.

3년간 324개 스타트업을 검토하고, 21개사와 PoC를 진행했다. 그러다 2025년, 스피너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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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너스는 특이한 기술을 가진 회사다. 폐플라스틱을 그래핀으로 만든다.

그래핀은 흑연보다 2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전기가 잘 통하는 꿈의 신소재다.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 그런데 스피너스는 폐플라스틱으로 만든다. 쓰

레기를 고부가가치 소재로 바꾸는 것이다.


조광페인트의 폐도료도 폐플라스틱과 유사한 탄소 함유 물질이다.

"우리 쓰레기가 당신들한테는 원료네요?"

"네, 우리가 딱 찾던 거예요."


2025년 정부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에 공동 지원했다.

6천만원 정부 지원금을 받아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됐다. 목표는 명확했다.

탄소 함유량 95% 이상 고품질 그래핀 제조, 기존 그래핀 대비 20% 이상 비용 절감, CO2 배출 30% 이상 감축.

6개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매달 20kg 폐도료를 공급하고, 그래핀으로 변환하는 실증을 하고 있다.

조광페인트는 폐기물 처리비용을 절감하고, 고부가가치 원료를 확보하게 됐다.

스피너스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처와 대기업 레퍼런스를 얻었다.


더 중요한 건, 이게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원 순환경제의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기업의 쓰레기가 다른 기업의 원료가 되고, 환경도 보호하고, 경제적 가치도 창출하는 구조.

조광페인트 관계자는 말했다.

"우리는 700억 규모 펀드도 운영합니다. 이번 실증이 성공하면 스피너스에 대한 후속 투자도 검토 중이에요."


* * *


이 세 가지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서로의 약점이 상대의 강점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디오랩스는 기술은 있는데 통신망이 없었고, 고고팩토리는 통신망은 있는데 차별화된 IT 서비스가 없었다.


씨드앤은 기술은 있는데 설치 인력이 없었고, SK네트웍스서비스는 인력은 있는데 IoT 기술이 없었다.

조광페인트는 폐기물을 처리해야 했고, 스피너스는 탄소 함유 원료가 필요했다.

이런 상호 보완 구조는 오픈이노베이션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패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순환경제형 협업은 조광페인트와 스피너스 말고도 여러 사례가 있다.

LG화학과 이너보틀, 그리고 CJ대한통운의 3자 협업이 그렇다. LG화학의 친환경 소재, 이너보틀의 실리콘 파우치 용기 기술, CJ대한통운의 수거 시스템이 결합해서 플라스틱 자원의 100% 선순환 체계를 만들었다. 롯데벤처스와 미로의 사례도 있다. 당일 음식 할인 판매 플랫폼 '라스트오더'를 세븐일레븐에 도입해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의 판매율을 높이고 폐기를 줄였다. ESG 경영의 실천이자, 동시에 수익 모델이다.


또 다른 패턴은 플랫폼 통합형이다. CJ올리브영이 AI 기반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인 로켓뷰를 인수해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객의 구매 이력, 검색 패턴을 분석한 초개인화 큐레이션으로 매출이 뛰었다. 카카오가 실시간 라이브 커머스 '그립'을 운영하는 그립컴퍼니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력과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한 번에 확보했다. 이마트24는 데이터브릭스와 손잡고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했는데, AI 상품 추천 서비스 분석 시간을 96% 단축했다. 데이터 처리가 빨라지니 의사결정도 빨라진다.


사내벤처를 독립시키는 스핀오프형도 있다. 포스코의 앰버로드가 대표적이다. 사내벤처로 시작한 AI 기반 스마트 공정 관리 솔루션 '마이너리포트'가 연간 약 397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내자 독립 법인으로 분사시켰다. LF는 패션 브랜드 '던스트'를 운영하는 씨티닷츠를 사내벤처로 키우다가 독립 법인으로 만들었다. GS리테일은 라이브 커머스 대행 서비스 '문래 라이브'를 운영하는 라이버스를 사내벤처로 만들어서 제휴사들에게 라이브 커머스 방송의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 인프라에 새로운 서비스를 얹는 서비스 확장형도 효과적이다. SK에너지와 자동세차 구독 서비스 전문 기업 오토스테이의 협업이 그렇다. SK에너지의 충전 인프라와 결합해서 전기차 충전 중에 자동세차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고객은 편하고, SK에너지는 체류 시간이 늘어 부대 수익이 생긴다. 대교와 교육 매칭 플랫폼 자란다의 협업도 비슷하다. 대교의 책 놀이 전문 선생님과 자란다의 플랫폼을 결합해서 '상상키즈 창의 홈캠프 서비스'를 만들었다.


AI를 활용한 기술 고도화형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웅진씽크빅은 뤼이드의 AI 학습 솔루션을 '웅진스마트올중학' 플랫폼에 접목해서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과 취약점을 진단하고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삼성생명은 AI 기반 보험 가입 심사 솔루션 기업 위커버와 손잡고 GPT 기술로 보험 인수 심사 프로세스를 고도화했다. 건강 상태, 의료 기록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석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씨피프티원과 협업해서 AI 기반 배터리 수명 예측과 충전 최적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심지어 제조 현장의 혁신도 일어나고 있다. 현대건설은 자율 비행 드론과 AI 비전 기술을 가진 뷰매진과 협업해서 건설 현장의 외벽 검사 시간을 4일에서 평균 5시간으로 줄였다. 20배나 빨라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정밀 수처리 기술을 가진 워터베이션과 손잡고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폐수 재활용률을 높이고 초순수 생산 비용을 절감했다. 롯데케미칼은 기체분리막 기술 기업 에어레인의 기술을 여수와 대산 공장에 적용해서 이산화탄소 포집 및 액화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패턴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로의 강점을 결합해서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1+1이 2가 아니라 3이 되고, 5가 되고, 때로는 10이 되는 것. 그게 오픈이노베이션의 본질이다.


* * *

2017년, KB국민카드 팀 4명이 망원동의 작은 사무실을 찾았다.

트립비토즈. 아직 '엣지'도 안 난 초기 스타트업이었다.

정지하 대표는 놀랐다. "대기업에서 우리를 찾아오다니."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KB 팀은 온라인 여행업과 트립비토즈에 대해 리서치를 해왔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진지했다. 트립비토즈는 퓨처나인 2기에 선발됐고, 스탠포드 디자인 씽킹 수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사흘에 한 번씩 이용자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를 찾아내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다시 피드백을 받는 과정.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고, 그 소통은 KB국민카드와의 협업에 그대로 적용됐다.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KB국민카드의 1,900만 고객 데이터와 트립비토즈의 여행 추천 기술을 결합하는 것. 첫 실험이 시작됐다. 항공권 결제 고객 10만 건 데이터로 호텔을 추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익스피디아 글로벌 마케팅 기준 결제 전환율은 4%였다. 데이터 기반 추천 결제 전환율은 8.5%. 2배가 넘는 차이였다.

이게 데이터 시너지의 힘이었다. 그냥 호텔을 추천하는 게 아니라, 이 고객이 파리행 항공권을 샀다는 걸 알고 파리의 호텔을 추천하는 것. 당연히 전환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8개월 후, 월거래액은 1억에서 30억으로 뛰었다. 30배 성장. 스타트업으로서는 생존에서 성장으로, 성장에서 도약으로 완전히 단계가 바뀐 것이었다. 2차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팀도 확장됐다. 그리고 KB국민카드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여행 플랫폼 'TTBB'를 만들기 시작했다.

개발에는 2년 6개월이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만드는 플랫폼은 쉽지 않다. 양쪽의 기준과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좋은 제품이 나온다.

만약 KB국민카드가 혼자서 외주로 개발했다면 최소 20억원 이상, 개발 기간 2-3년, 그리고 시장 검증 없는 스펙 기반 개발이라는 리스크를 안았을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으로는 투자금 약 5억원에 후속 투자까지 이어졌고, 개발 기간은 비슷했지만 시장 검증된 스타트업과 협업한다는 점이 달랐다. 무엇보다 투자금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 됐다.

트립비토즈는 KB국민카드의 고객 채널을 얻었고, KB국민카드는 혁신적인 여행 서비스 플랫폼을 확보했다. 양쪽 모두 Win-Wi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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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사례를 봤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이게 성공할지 어떻게 아나?

9년 경험에서 나온 3가지 체크포인트가 있다.


첫째, 1+1=3이 되는가? 씨드앤의 기술과 SK의 전국 조직이 합쳐져서 각자 혼자서는 불가능한 시장 확장을 만들었다. 디오랩스의 앱과 고고팩토리의 통신망이 합쳐져서 새로운 키즈폰 서비스가 탄생했다. 조광페인트의 폐도료와 스피너스의 그래핀 기술이 만나 순환경제 모델이 만들어졌다. 핵심은 단순 협력이 아니라 시너지다. 1+1이 2가 되는 건 의미가 없다. 3이 되거나 5가 되어야 한다.


둘째,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가? 트립비토즈는 10만 건 데이터로 먼저 실험했다. 전환율 2배를 확인하고 확대했다. 디오랩스와 고고팩토리는 2-3주 만에 계약을 맺고, 3개월 만에 결과를 냈다. 씨드앤과 SK는 2주 만에 미팅 2번으로 방향을 잡았다. 실패하는 경우는 6개월간 검토만 하다가 포기한다. 성공하는 경우는 2주 안에 방향을 잡고, 3개월 안에 작게 시작한다. 그리고 빠르게 확대하거나 빠르게 접는다.


셋째,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가? 트립비토즈는 전환율을 4%에서 8.5%로 2배 높였다. 씨드앤은 냉난방비를 20% 절감했다. 디오랩스는 3개월 만에 7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조광페인트는 CO2 배출 30% 감축을 목표로 한다. 감이 아니라 숫자다. "뭔가 잘 될 것 같아요"는 통하지 않는다. "전환율이 2배 높습니다" "비용을 20% 절감합니다" "3개월 만에 7억을 벌었습니다" 이런 숫자가 있어야 한다.


* * *

이 이야기들을 듣고 "운이 좋았네" 하지 마라. 패턴을 이해하면 당신도 할 수 있다.

9년간 1,000여개 스타트업을 만나며 배운 건, 성공하는 오픈이노베이션에는 여러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그 패턴을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패턴을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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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보완형인가? 순환경제형인가? 플랫폼 통합형인가? 서비스 확장형인가?


어떤 패턴이든 핵심은 같다.

1+1=3이 되는 시너지, 빠른 검증, 숫자로 증명.

이 3가지만 확인하라. 그리고 빠르게 시작하라.


때로는 가장 좋은 파트너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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