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1. 상호 강점 활용형 OI

때로는 가장 좋은 파트너가 대기업이 아니라 옆집 스타트업일 수 있다.

by 박원규

OI를 통한 층간소음슬리퍼 '뭄뭄실내화'의 탄생


2020년 어느 날, 나는 KB 오픈이노베이션 팀장으로서 포커스미디어 부사장과 미팅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광고판을 설치하고 광고 제작 및 송출을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 간 싸움이 너무 많아요. 실내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처음엔 '미디어 회사가 왜 갑자기 실내화?' 싶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나름 논리가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광고를 하다 보니 층간소음 관련 민원을 자주 접하게 됐고, 이걸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포커스미디어는 미디어 전문 회사라는 점이었다.

실내화를 만들 기술도,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아는 회사가 하나 있었다.


N15(현 인앤아웃코퍼레이션)라는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였다.

이 회사는 당시 항공기 소음방지 소재 기술을 활용해 프리미엄급 층간소음 매트를 개발하고 있었다.


"잠깐, 항공기 소음방지 기술이면 층간소음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즉석에서 양쪽 회사를 연결해줬다. 포커스미디어 대표에게 말했다.


"제조 네트워크는 N15가 있고, 마케팅은 당신들이 잘하잖아요. 한번 만나보세요."


보통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에서는 이런 매칭이 성사되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그런데 이 경우는 달랐다.


1-2주 만에 양사 경영진과 실무진을 모아서 미팅을 주재했다. 그리고 놀라운 시너지가 일어났다.


포커스미디어가 가져온 것:

층간소음이라는 구체적인 문제 정의

아파트 거주자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광고 플랫폼

브랜딩과 마케팅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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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5이 가져온 것:

검증된 소음방지 기술

제품화 경험과 제조 능력

하드웨어 개발 전문성


왜 이렇게 빨랐을까?


첫째, 둘 다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들이라 의사결정이 빨랐다.

담당자가 아니라 대표와 부사장 레벨이 직접 만났다.


둘째, 서로 필요한 게 명확했다.

제품 vs 마케팅.


셋째, 각자 자신만의 강점에 확신이 있었다.

미팅 후 단 4개월 만에 '뭄뭄실내화'가 출시됐다.

초도 물량은 완판됐다.


2023년에는 누적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2020년 1-2주 만의 연결이 3년 후 100억원의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게 진짜 오픈이노베이션이구나."


나는 이 사례를 보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혁신은 서로 다른 산업이 만날 때 일어난다는 것을.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자.


- 명확한 역할 분담

포커스미디어는 "우리는 마케팅만 하겠다"고 했다.

N15는 "우리는 기술과 제조만 하겠다"고 했다.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가?

대부분의 협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역할이 애매해서다.

"우리도 마케팅 할 수 있어요" "

우리도 제조 좀 알아요"

이러다가 결국 서로 발목을 잡는다.


- 상호 존중

포커스미디어는 N15의 제조 네트워크를 인정했다.

N15는 포커스미디어의 시장 접근 능력을 인정했다.

서로가 상대방의 전문성을 존중했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 사회적 가치와 수익성의 결합

층간소음은 진짜 사회문제다.

이웃 간 싸움, 극단적으로는 폭력 사건까지 일어난다.

뭄뭄실내화는 이 문제를 실제로 해결했다.

동시에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다.

고객들은 '있으면 좋은' 제품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느꼈다.


만약 이 중 하나가 대기업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기술 개발해보겠습니다" (6개월 후)

"시장조사부터 해야겠어요" (3개월 추가)

"리스크 검토 좀 해보고요" (2개월 추가)

"예산 승인받고 오겠습니다" (1년 후)


그 사이에 기회는 사라졌을 것이다.

층간소음 실내화는 다른 회사가 먼저 냈을 것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끝이다.


뭄뭄실내화 사례에서 내가 한 역할은 단순했다.

그냥 연결해준 것뿐이다. 하지만 그 '연결'이 100억원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진짜 오픈이노베이션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회사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만나서 각자 잘하는 것에만 집중할 때 일어난다. 대기업의 돈과 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혁신의 시작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운이 좋았네"라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들


첫째, 우리 회사의 진짜 강점이 뭔지 정의하라.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뜻이다.

하나만 제대로 잘하면 된다.


둘째, 우리가 약한 부분을 인정하라.

약점을 숨기면 파트너를 못 찾는다.

"우리는 마케팅을 못 해요"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마케팅 잘하는 파트너가 온다.


셋째,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업종 스타트업을 찾아라.

미디어 회사가 실내화를 만들 생각을 했듯이, 의외의 조합이 최고의 시너지를 만든다.


넷째, 대표나 의사결정자끼리 직접 만나라.

담당자 레벨에서는 안 된다. 결정권자가 만나야 빠르다.


다섯째,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봐라.

1-2주 만에 판단하고, 4개월 만에 출시하라.

1년 고민하면 기회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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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뭄실내화는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었다.

포커스미디어는 층간소음이라는 문제를 발견했고, N15는 그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둘이 만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신의 회사에도 그런 기회가 분명히 있다.

당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가진 회사가 어딘가에 있다.

당신이 가진 강점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어딘가에 있다.


문제는 찾는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다음 챕터에서는 스타트업끼리 협업할 때 어떻게 대기업보다 10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Chapter 10에서 봤던 디오랩스 이야기의 뒷면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때로는 가장 좋은 파트너가 대기업이 아니라 옆집 스타트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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