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오픈이노베이션 하지 마라

솔직히 말하면 하지말라고 말하고 싶다.

by 박원규

2001년 12월, 첫 출근


2001년 12월, 첫 출근을 했던 그 겨울날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23년이란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늘 새로운 과제를 맡아 해결해야 했고,

그때마다 깊이 고민하며 보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특히 마지막 9년은 스타트업 오픈이노베이션과 투자라는 낯설고 도전적인 영역에서 보냈습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빨간 약을 선택한 순간부터 더 이상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1일, 23년간의 회사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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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낯선 단어


2017년, 나는 회사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처음 듣는 단어에 당황했다.

이것이 내 일상을 완전히 바꿀 과제가 될 줄은 몰랐다.


오픈이노베이션. 그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찾아서 회사에 소개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협업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스타트업과의 첫 만남은 흥분보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혁신을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서로를 잘 모르는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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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난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프로그램 기획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 어떤 파트너를 선택해야 할지

•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할지

• 우리 회사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수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우리는 가장 저렴한 견적을 제시한 액셀러레이터와 계약을 맺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단순한 선택이었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실패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다.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고민 끝에 우리는 세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1.새로운 시장 개척

2.기존 사업 영역 내 신사업 발굴

3.현재 사업의 경쟁력 강화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우리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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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난관: 내부 설득이라는 전쟁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부 설득이었다.

오픈이노베이션의 필요성을 모두가 공감하는 것 같았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 들어서자 여러 부서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가 왜 외부 기술에 의존해야 하나요?"

"그들과 협업하면 우리의 기밀이 유출되지 않을까요?"

"그런 작은 회사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요?"


이런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하며, 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미 거대 금융사 및 글로벌 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별화를 하고, 빠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이 사업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단점도 극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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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난관: 문화의 충돌


기업 문화의 차이는 예상보다 컸다.

빠른 의사결정에 익숙한 스타트업들은 우리의 복잡한 결재 프로세스에 답답해했고,

우리는 그들의 '빨리빨리' 문화에 당황하기도 했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실제 협업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예로 들면, 그들의 기술을 우리의 시스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데이터 보안 문제, 시스템 호환성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 측은 우리의 느린 대응에 불만을 토로했고,

우리 내부에서는 이 협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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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9년간 매년 다양한 시도를 했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운이 좋아 잘된 일도 가끔은 있었지만, 내게 일이나 세상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왜?

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들은 정말 모두에게 '을'이기 때문이다.

좋은 스타트업을 모셔오기 위해, 또 그들의 자원을 협업에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아쉬운 소리를 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본인들의 업무를 우선시하는 현업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또 힘을 써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까라면 까라'가 잘 안 먹힌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솔직히 '오너'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문화를 잘 이해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의사결정권자에게 더 열심히 어필한다.


하지만 9년간 해온 경험을 비추어 자신 있게 말하자면,

실무자를 내편으로 만들어 의사결정자를 설득하게 만드는 편이 일이 되게 만드는 방법이다.

구체적 실행은 어차피 실무진들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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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실무자들이 일을 안 하는 방법


대기업의 과장급 정도 되면 일을 안 할 이유를 만드는 건 '식은죽 먹기'다.


"저 이 일 해야 하는데요. 이거 안 하면 우리팀 KPI 망가질 텐데요."

"이 일 그럼 다른 사람에게 넘기실 건가요?"

"제도/지침이랑 안 맞아요. 이거 하려면 금융감독원 승인 받아야 해요. 그러면 6개월은 걸릴 텐데요."

"이거 우리 사업그룹만으로 안 되고 B사업그룹의 ㅇㅇ팀하고 같이 해야 되는데, 해당 사업그룹장님한테 얘기 좀 해주시죠."

"IT에서 지금 차세대 프로젝트 때문에 기존 운영업무 외에 다 Freezing해서 신규 개발 안 된다는데요."


정말 수많은 안 되는 이유를 열거한다.

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이고, 안 해야 할 이유는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무자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스타트업과의 협력이 자신들의 KPI 달성과 직결되며, 그들의 솔루션을 활용하는 것이 매출 신장에 결정적 도움이 됨을 깨닫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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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한 이유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타겟 마케팅 및 실시간 마케팅 등이 내부 마케팅 성과 대비 10배 이상의 고객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는 데이터 광고 서비스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시금석 역할을 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과는 중장기적인 협업 모델 및 솔루션을 만들어냄으로써:

• 비용 효율화

• 인력 효율화

• 고객 응대 시간 단축


이는 고객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졌고, 내부적으로도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점차 우리는 깨달았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우리 조직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혁신의 속도를 높이며, 외부의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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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9, 9년의 기록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의 프로그램은 계속 진화했다.

초기에는 단순히 스타트업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형태였다면, 점차 투자와 협업, 그리고 계열사 및 타 대기업과의 협업 확장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2017-2019년 (Phase 1-3)

•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첫 설계 및 시작(with 더인벤션랩)

• 전담조직 구축

• 직접투자 + 소규모 펀드(with Wadiz) 결성 + LP 출자

• CVC 투자 구조 설계: PoC > 투자 > 성장 직접 지원


2020-2022년 (Phase 4-6)

• 130억원 전용 펀드 조성

• Beyond KB 프로그램 런칭 (6기, 2021년)

- 민간의 공공 역할 실험: 현대건설, DB손해보험 등 파트너 확대

• 200명 이상 현업 직원 참여


2023-2024년 (Phase 7-8)

• 7기까지 직접 운영

• 2023년 12월 휴직, 2024년 12월 퇴직

• 2024년 8기 약화된 상태로 진행 후 종료


누적 성과 (8년)

• 90개 기업 선발 (4,500개 모집)

• 700억원 투자 및 출자 / 130억원 전용 펀드

• 200명+ 현업 직원 참여

• 200개+ 협업 부서


차별화 포인트

1. 협업 중심: 데이터/플랫폼 → 협업 검증 → 투자

2. 현업 주도: 담당자가 아닌 현업이 직접 주도

3. Small Win + Quick Win : 작은 협업으로 신뢰를 쌓고 큰 협업을 통해 혁신으로

4. 콜드콜링: 선발 기업 중 70% 이상을 직접 발굴

5. 선발기업과의 워크숍: 全 선발기업과의 All day 워크숍(스타트업, OI팀, 현업, VC 참여)


성과

• FUTURE9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스타트업과 함께하며, 5년 연속 국내 1위라는 성과

• 민간기업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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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로그램은 사라졌나


하지만 FUTURE9은 2024년 8기를 끝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정부의 공공 프로그램 확대 때문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NIH 신드롬이었다.

NIH. Not Invented Here.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일찍 시작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내부 레거시 업무 조직, 자원을 가진 조직(재무, 인사 등)에게 공격받는다.


"이거 우리 꺼 아니잖아."

"결국 남 잘되는 거 아니야?"

"스타트업만 성장하고, 우리는 뭐 얻는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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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규모와 회수 속도도 문제였다.

전문 VC처럼 거액을, 공격적으로 할 수 없다.

그러니 피투자 기업이 성장해서 이익이 나도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그 정도 수익으로 뭘 했다고..."

"VC들은 수백억 투자하는데, 우리는 고작 몇억?"


콜드콜링 노하우, 발굴 인사이트, 현업 설득 스킬, 워크숍 퍼실리테이션.

이 모든 것은 7년간의 경험이 만든 것이다.

시스템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7년을 달려오면서, 나는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2023년 12월, 휴직에 들어갔다.

2024년 12월, 퇴직했다.

나의 휴직 후, 8기는 약화된 상태로 진행되었고 프로그램은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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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의 열정이 가르쳐준 것


FUTURE9을 운영하면서 가장 깊이 느낀 점은, 이미 바쁜 분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분들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또 어떤 분들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도전에 동참해 주었다.

그분들은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분들이 더 적극적, 주도적으로 혁신을 이끌어 주었다.

현업에서 열정적으로 지원해주신 선후배님들, 때로는 반대의 목소리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분들, 그리고 힘들 때마다 함께 해준 동료 여러분. 그분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꿈꾸게 만들어주었다.

이 모든 성과는 FUTURE9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움을 준 현업의 동료, 선후배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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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이유


이 글을 쓰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내 경험이 오픈이노베이션을 하게 되는 기업 담당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과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수행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타트업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갈 수 있게끔 돕고 싶었다.

기획과 프로그램 설계가 제대로 되어야만 스타트업들도 원하는 것을 얻어갈 수 있다.

운이 좋아 가져간 것은 오래갈 수 없다.


세 번째는 오픈이노베이션의 본질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 책은 FUTURE9의 성공담이 아니다.

이 책은 오픈이노베이션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 진짜 혁신은 연결에서 나온다

• 현업이 담당자보다 중요하다

• 관계가 프로세스보다 먼저다

•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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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이 글의 독자는 세 부류입니다.


1. 기업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

•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왜 90%가 실패하는가

•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2. 스타트업 CEO

• 언제 시도하고 언제 포기할 것인가

• 기회비용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 어떻게 대기업을 설득할 것인가


3. 연결자/액셀러레이터/투자자

• 왜 민간 선구자들이 사라지는가

• 수평적 협업의 가능성

•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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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다루는 것


오픈이노베이션 개념, 왜 해야하는지, 해외 사례는 어떤지 등...오픈이노베이션 관련 이론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2023년 12월에는 그런 내용도 원고에 듬뿍 담겨 있었다.

개념, 유형, 해외 사례...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10년 동안 직접 현장에서 이 일을 해본 사람의 이야기는 없었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생존기다.


물론 이 글에서 다루는 사례들이 만능 해법을 제시하진 않을 것이다.

산업별, 기업별로 처한 상황과 역량이 다르기에 이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내외부의 혁신 자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온 그들의 여정은 분명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줄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개방과 혁신의 생존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기업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9년의 경험을 담아 쓴 이 책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험난한 길을 걷는 동료 여러분께 유용한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때론 과감히 실패하고 때론 신중히 성찰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처음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그 당혹감이 무색할 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만났고, 때로는 실패도 했지만 그 속에서 값진 교훈을 얻었다.

이제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어떤 기업들에게는 DNA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이 끝없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우리 회사만의 성공이 아닌, 전체 산업 생태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픈이노베이션.

그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불편하고도 흥미로운 동행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오픈이노베이션의 진정한 가치이자 매력이 아닐까?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열린 혁신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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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규

㈜콜라이더 대표

前 KB국민카드 FUTURE9 Program 총괄 (2017-2023)

202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