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명함 없이도 괜찮은 1년

by 박원규

에필로그: 명함 없이도 괜찮은 1년


2024년 12월 31일.

23년간의 회사원 생활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2001년 겨울, 처음 출근하던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새로운 과제를 맡고, 깊이 고민하고, 해결하고, 또 다음 과제로. 그렇게 23년이 흘렀다.

마지막 날, 가장 두려웠던 건 이것이었다.

image.png

"명함 없는 내가 상상되지 않는다."


회사 이름이 빠진 명함을 받아들 사람이 있을까? "○○회사 팀장입니다"라는 소개 없이, 그냥 내 이름만으로 미팅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정도 경력이면 임원은 해야 하지 않나" 하며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직함보다는, 무언가를 이뤄내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그래서 결정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두렵지 않냐고? 물론 두려웠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도전하지 않은 채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2025년, 예상보다 바쁜 1년

퇴직 후 첫 해는 예상보다 훨씬 바쁘게 흘러갔다.

7월에 개인사업자를 냈다. 9월에 법인을 세웠다. 11월에는 투자를 유치했다. 동시에 나도 투자자로서 두 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한 곳에는 C레벨로 합류해서 조직 성장을 직접 도왔다. 그 회사는 매출이 50% 이상 성장했다.

말뿐이 아닌, 실제로 실행하는 1년이었다. "일단 해보고 판단하자"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실험했다. 법인 셀프 등기부터 시작해서, 플랫폼 개발, 컨설팅, 멘토링, 평가위원, 웹사이트 제작까지. 다양하게 해봤다.

솔직히 말하면, AI가 큰 역할을 했다. 어느 순간 의존도가 높아졌음을 느꼈고, 답변 검증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23년 경력에 AI라는 증폭기를 더하는 것. 이게 시니어의 경쟁력이라고 믿는다.

image.png

첫 해, 가장 중요했던 깨달음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숫자로만 보면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벌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구나."

이 확신을 얻었다는 것. 회사 없이도, 명함 없이도, 나의 가치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이게 첫 해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회사 다닐 때와 달리 돈에 대한 약속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 줄 돈을 제대로 안 주거나 기일을 지키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문서로 남기고, 선금을 받고, 기한을 명확히 하는 법을 배웠다.

한 번 공짜로 일하면 계속 공짜로 쓰려 한다는 것도 배웠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는 정부 지원금으로 무료 멘토링에 익숙해서, 돈을 내고 전문가를 쓴다는 개념이 없었다. 선을 긋는 법을 배웠다.

하루 종일 미팅만 하다 끝나는 허무함도 경험했다. 강남에서 한 건, 여의도에서 한 건. 이동만 하다 하루가 가고, 남는 건 없는 날들. 그래서 온라인 미팅을 기본으로 하고, 대면은 선택으로 바꿨다.

1년이 지나서야 옥석을 가릴 수 있었다. 누가 진짜 고객이고 누가 나를 계속 공짜로 쓰려는 사람인지. 명확히 거절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연결하는 사람

결국 나는 퇴직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고, 자본과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회사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스타트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투자자와 창업자를 연결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회사의 KPI가 아니라 나의 가치관으로 일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올해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과정에는 책임질 수 있고, 솔루션을 만들 수는 있다."

조직을 떠나며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이었다. 이 다짐을 1년 동안 지켰다. 그래서 괜찮았다.

image.png

명함 없이도 괜찮았다

1년 전 오늘, 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확신할 수 있다.

명함 없이도 괜찮았다.

아니, 명함이 없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회사 이름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결과로 평가받았다. 직함이 아니라 내 전문성으로 신뢰를 얻었다. 조직의 논리가 아니라 내 가치관으로 일을 선택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불안한 날도 많았고, 후회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대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 질문이 있었다.

"명함 없는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안다.

나는 23년간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로, 사람과 기회를 엮는 사람이다. 회사 이름이 없어도, 직함이 없어도,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 안에 이미 답이 있다. 30년, 20년, 15년 동안 쌓아온 경험이 자산이다. 그걸 어떻게 조합하고, 누구에게 팔 것인가. 그것을 찾으면 된다.

소프트랜딩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준비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1년 아니 가능하면 5년 전부터 작은 수입을 만들어보고, 6개월 전부터 수익 모델을 점검하고, 3개월 전부터 디테일을 챙기고. 그렇게 준비하면 당신도 할 수 있다.

2026년에도 계속 괜찮을 거라 믿는다.

당신의 2026년도 괜찮을 거라 믿는다.

새로운 시작이 두렵지 않냐고?

물론 두렵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도전하지 않은 채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그 답은 처음부터 당신 안에 있었다.


2025년, 명함 없이도 괜찮은 1년을 보낸 한 사람의 기록


이전 25화Chapter 18. 실패하지 않는 소프트랜딩 20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