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즈(Wadiz)
KDB산업은행을 박차고 나오다
2012년 5월, KDB산업은행에서 7년간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한 애널리스트가 사표를 냈습니다. 동부증권 애널리스트 1년, 산업은행 7년. 총 8년간 금융권에서 일하며 그가 본 것은 명확했습니다.
"자본시장에 투자자들의 돈은 넘쳐나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받지 못해 힘들어하죠. 좋은 기업들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신혜성 대표는 미국의 킥스타터를 보고 결심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한국에 개척하겠다고.
'와디즈(Wadiz)'라는 이름은 사막의 강을 뜻하는 'Wadi'에서 왔습니다. 사막 같은 자본시장에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겠다는 포부였죠.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지지하는 기업이나 콘텐츠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기존 금융업과는 다른 크라우드펀딩의 매력"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2012년, 와디즈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도입했고, 스타트업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금융감독원 검사를 받았으며, IT 실사를 받은 첫 번째 기업이었습니다.
"모든 게 다 첫 번째여서 갈 때마다 정의를 해야 됐고, 갈 때마다 그것들을 설득하고 해야 되는 일들이 늘 존재했죠."
빠른 성장, 그리고 시장 1위
와디즈의 성장은 폭발적이었습니다. 2016년 투자형 크라우드펀딩까지 추가하며 리워드형과 투자형을 모두 제공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2019년에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점유율 60%를 달성했고, 같은 해 누적 펀딩액 1,4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2017년 시리즈B 110억 원, 2019년 시리즈C 310억 원 투자 유치.
투자사들은 2020년 말 상장을 목표로 하는 와디즈의 성장성과 투자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2024년 기준, 와디즈는 누적 거래액 1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회원 수 600만 명, 월 방문자 1,000만 명. 6만 건 이상의 프로젝트가 오픈되었고, 와디즈 펀딩에 성공한 기업이 받은 후속 투자 유치액은 공개된 금액만 8,000억 원이 넘습니다.
"스타트업의 해외진출 지원, 브랜드 및 IP 사업을 추진하며 와디즈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신혜성 대표는 단순한 크라우드펀딩을 넘어 스타트업 종합 지원 플랫폼을 꿈꿨습니다.
2019년, KB국민카드와 손을 잡다
2019년 6월 4일, 서울 종로구 KB국민카드 본사에서 업무협약식이 열렸습니다.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과 신혜성 와디즈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협약 내용은 야심찼습니다. 'KB국민카드 라이프스타일 펀드' 조성, 양사 플랫폼을 활용한 공동 사업 발굴.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즉시 실행 과제: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에서 성공한 우수 제품을 KB국민카드 '라이프샵' 스타트업 전용관에 입점
판매 확대를 위한 마케팅 지원
중장기 과제:
KB국민카드 고객의 카드 포인트를 와디즈 포인트로 전환해 크라우드펀딩에 투자
와디즈 멤버십(W9) 회원 대상 제휴카드 개발
와디즈 플랫폼을 활용한 카드 회원 모집
KB지주 공간(홍대 청춘마루 등) 활용한 크라우드펀딩 제품 판매 및 혁신공간 조성
그리고 가장 핵심은 공동 펀드 결성이었습니다. 총 10.5억 원 규모로, KB국민카드가 10억 원을 출자하는 미니펀드였습니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펀드로, KB국민카드의 미래 신사업 발굴과 관련해 연관성 높은 혁신적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빅데이터, 플랫폼, 마케팅 등 KB국민카드 인프라를 활용해 스타트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특히 퓨처나인 3기와 연계해 프로그램 참여 업체에 대한 검증과 자금 조달, 후속 투자 필요 시 와디즈 플랫폼을 활용한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관련 전문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상생을 모토로 한 새로운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겠다." KB국민카드의 포부는 컸습니다.
법적 규제와 실패한 협업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가장 핵심이었던 카드 포인트 활용 크라우드펀딩은 법적·제도적 규제로 불가능했습니다. 카드 포인트를 금융상품 투자에 사용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제한이 있었던 것이죠.
나머지 협업 과제들도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라이프샵 입점, 제휴카드 개발, 공간 활용 등 화려하게 발표된 MOU 내용들은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출자자와 펀드관리자 관계뿐이었습니다. KB국민카드는 10억 원을 출자한 LP(Limited Partner)이고, 와디즈는 펀드를 운용하는 GP(General Partner).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고자세와 키맨 활용형
저는 2019년 이 협업을 진행하며 와디즈의 독특한 행태를 목격했습니다.
첫 만남은 저와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우리 임원(부사장)과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CEO와의 MOU까지 성사시켰습니다. 그런데 CEO와 미팅을 한 이후로는 부사장도 대표와 연락이 어려워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분류한 "키맨 활용형"*입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그 이후 관계는 유지하지 않는 것이죠.
더 큰 문제는 고자세였습니다.
물론 스타트업을 '을'로 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 퓨처나인 팀은 대부분 스타트업과 동등한 자세로 협업했습니다.
하지만 와디즈는 달랐습니다.
동등한 자세가 아닌, 우리에게 먼저 제안 하라고 하며, 검토 의견은 늦거나 아예 주지 않았습니다.
1인 의사결정 체제라 모든 것이 CEO 대표를 거쳐야 했고, 그 속도는 우리 기대와 맞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체크카드사업부장이었던 선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어린 직원이 와디즈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는데, 이거 꼭 해야 되는 거야?"
그 직원은 집꾸미기 등 다른 스타트업과도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던 직원이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을 경험했지만 와디즈와의 협업이 유독 힘들었다는 것이죠. 갑질, 고압적 태도, 일방적 요구.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가 아니라, 마치 와디즈가 갑인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사람뿐
하지만 모든 것이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와디즈의 좋은 분들과는 여전히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와디즈 5호 직원이었던 분은 현재 대상홀딩스 팀장으로 계십니다. 또 다른 분은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미래에셋캐피탈에서 벤처씬을 위해 일을 하고 계시고, 와디즈를 첫직장으로 거의 10년간 근무하며 진심으로 협업을 고민했던 또 다른 실무자는 이후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오픈이노베이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시 와디즈에서 실무를 담당하며 진심으로 협업을 고민했던 분들이었죠.
와디즈와의 공식 협업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남았습니다. 그들은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실행하며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었습니다.
결국 협업에서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MOU도, 펀드도, 화려한 보도자료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장기적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사람들. 그들만이 협업 실패 이후에도 남습니다.
와디즈의 그 이후
와디즈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2024년 한국경영학회 주최 '최우수경영대상' 혁신벤처기업 부문 수상, 누적 거래액 1조 원 돌파, 중소벤처기업부 LIPS 사업 최우수운영기관 선정.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성장하는 기업입니다.
신혜성 대표는 "창업자들의 시작과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플랫폼으로 다방면에서 역할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법인을 분리해 펀딩 서비스는 신유통으로, 투자 서비스는 핀테크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B국민카드와의 협업은 화려한 MOU와 달리 대부분 실패했고, 10억 원 펀드 출자라는 재무적 관계만 남았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의 교훈
와디즈와 KB국민카드의 협업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실패의 요인들입니다.
법적 규제에 대한 사전 검토 부족이 있었습니다. 카드 포인트를 활용한 크라우드펀딩이라는 핵심 과제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화려한 MOU를 체결하기 전에 법률 검토가 선행되었어야 했습니다.
고자세와 일방적 소통이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처럼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대기업과 협업할 때는 상호 존중이 기본입니다. 제안만 받고 피드백은 주지 않는 태도, 1인 의사결정으로 인한 느린 속도는 협업을 어렵게 만듭니다.
키맨 활용형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필요한 사람을 만나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방식.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 협업에는 독이 됩니다.
MOU와 실행의 괴리도 컸습니다. 화려하게 발표된 협업 내용 중 실제 실행된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MOU는 시작일 뿐, 진짜 중요한 것은 실행입니다.
그러나 남는 것도 있었습니다.
사람입니다. 와디즈 내부에서 진심으로 협업을 고민했던 분들, 실무에서 함께 고생했던 분들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후 각자의 조직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담당하며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었습니다.
조직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와디즈라는 조직과의 협업은 실패했지만, 와디즈에 있었던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남았습니다. 그들이 다른 조직으로 옮긴 후에도 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진심은 통합니다. 진심으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 했던 분들은 조직을 떠나도 그 진심이 기억됩니다.
오픈이노베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MOU도, 펀드도, 보도자료도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협업하며, 장기적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사람들. 그들이 있을 때 협업은 실패하더라도 무언가가 남습니다.
와디즈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누적 1조 원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그 성장 과정에서 놓친 것들, 특히 진정한 협업 파트너와의 관계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사막에 강물을 만들려던 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 강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흐르는 것이 되려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와디즈가, 그리고 많은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이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