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매출 0원, 그래도 결혼 시장의 가능성을 믿었던 팀
프롤로그: 결혼의 '결'자도 모르는 미혼 공대남 5명
2014년 4월, 미혼의 공대생 출신 남자 5명이 모여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우투메리. 결혼의 '결'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결혼 시장에 뛰어든 겁니다.
주상돈 대표는 창업 동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하는 당사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한정적이고, 웨딩 시장을 주도하는 사업자들의 '깜깜이 식' 사업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명확했습니다.
연간 혼인 건수 2만 쌍.
전국민 대비 2%.
모수가 작아서 웨딩 사업자가 새로운 고객을 사전에 발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고객 한 쌍당 중개 마진도 광고비와 고정비를 제외하면 10% 남짓.
그래서 웨딩 업체들의 도산이 잦았죠.
게다가 웨딩 시장은 정보의 불균형, 가격의 불투명성, 적정 가격의 부존재 같은 문제들이 오랫동안 업계 관행이었습니다. 카르텔이 견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대남들은 이 시장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2년 넘게 웨딩홀을 찾아다닌 이유
주상돈 대표는 웨딩 시장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바꾸려면 효율적인 고객 상담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즉시 프로그램을 만들어 웨딩홀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당시 카르텔이 워낙 견고했던 웨딩 시장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2년 넘게 웨딩홀을 찾아다녔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그램을 인정하는 웨딩홀이 늘어났고, 서울 시내 웨딩홀 상당수가 하우투메리가 개발한 고객 상담·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웨딩마루, 플래너리, 웨딩북 비즈. 이름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습니다.
ERP 고객관리 솔루션. 상담, 방문 일정, 계약 등 고객관리부터 공실 조회, 직원 스케줄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었습니다.
웨딩 사업자들은 좋아했습니다.
업무 효율이 올라갔으니까요.
그리고 하우투메리는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매출은 0원이었습니다.
창업 후 3년간 매출 0원
"그래도 사업을 포기할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상돈 대표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사업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고 시장과 소비자들도 원하는 사업 모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시장 진입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존 사업자들의 카르텔이 워낙 견고해 이를 깨고 진입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을 이미 예상했습니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계획대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시장에서 알아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2014년, 2015년, 2016년. 3년간 매출 0원.
그리고 2017년 4년 차. 매출 5억원.
2018년. 13억원.
마침내 웨딩 시장의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기본 토대가 완성됐습니다.
매쉬업엔젤스를 찾아간 날
2018년 초여름, 저는 매쉬업엔젤스를 찾아갔습니다.
퓨처나인 3기를 준비하면서 좋은 팀을 찾고 있었습니다.
초기 투자 생태계에서 명망과 평판이 가장 좋은 곳이 매쉬업엔젤스였죠.
인상혁 부대표와 미팅 자리.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포트폴리오 중에 카드사와 궁합이 맞을 만한 팀이 있을까요?"
그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포트폴리오 50개 넘게 있는데, 하나하나 설명해드릴게요."
그렇게 시작된 미팅이 2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정말로 5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팀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이 팀, 웨딩북이요.
예전에는 하우투메리라는 이름이었는데요.
지금 결혼 시장에서 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그리고... 카드사랑 붙으면 의미가 생길 것 같아요."
첫 만남: "결혼하는 고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웨딩북 팀과 처음 미팅했을 때, 저는 KB국민카드 웨딩사업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와 함께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웨딩사업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결혼하는 고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이 말이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결혼은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이벤트인데, 카드사가 그 고객을 찾을 수 없다고요?
그런데 숫자를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연간 혼인 건수 2만 쌍.
성인 인구 대비 2%.
카드사 입장에서 결혼 고객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데도 잡히지 않는 고객'이었습니다.
카드사는 결혼 고객을 언제 볼까요?
대부분 결제가 발생한 뒤입니다.
예식장 계약금이 결제되고 나서야, "아 이 고객 결혼하네"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결혼 준비의 큰 소비는 그 전에 끝나버립니다.
결혼 커플 수 자체가 적어 전용 카드도 없었고 서비스도 파편화되어 있었습니다.
한도 증액, 캐시백 프로모션 같은 게 뿔뿔이 흩어져 있었죠.
그런데 웨딩북은 달랐습니다.
웨딩북은 결제 이전부터 검색, 상담 이력으로 결혼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웨딩북이 만든 시장 진입 전략
웨딩북의 전략은 교과서적이었습니다.
1단계: 웨딩홀과 예물샵에 무료 ERP를 깔았습니다.
2014년부터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웨딩마루, 플래너리, 웨딩북 비즈. 웨딩 사업자들이 겪는 고객 관리의 비효율을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무료로 ERP 깔아드릴게요."
사업자들은 좋아했습니다. 공짜로 업무 효율이 올라가니까요.
그렇게 2년 넘게 웨딩홀을 찾아다녔고, 서울 시내 웨딩홀 상당수가 도입했습니다.
2단계: 웨딩플래너들이 앱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ERP가 퍼지면서 웨딩플래너들이 앞다투어 요청했습니다.
"우리도 전용 앱 만들어주세요."
하우투메리는 플래너 전용 앱을 만들어줬습니다. 이제 웨딩 인프라가 구축된 겁니다.
3단계: 2017년, 그제야 대고객용 웨딩북 앱을 출시했습니다.
3년간 데이터를 모은 끝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웨딩북 앱은 '거품 없고 투명한 웨딩 정보 플랫폼'을 콘셉트로 내세웠습니다.
일부 웨딩 컨설팅 업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장에 합리적인 가격과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웨딩북을 이용해 결혼한 소비자들이 결혼에 대한 많은 정보와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입소문이 났습니다.
2019년 기준, 20만 명 이상의 사용자. 웨딩 회원 가입자 수 1위.
앱 누적 다운로드 1위. 매달 신규 회원 가입자 수 1만 명 증가.
등록 업체 수 1만 개.
수도권에서 결혼하는 신부의 60%가 웨딩북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국으로는 40%.
수도권 웨딩홀 40%, 드레스샵 80%가 웨딩북 ERP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4단계: 2019년, 웨딩북 청담을 열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오프라인 공간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웨딩 체험-문화 공간."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웨딩북 청담.
온라인에서 본 제품과 서비스를 실질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예비 신혼부부들은 이 공간에서 계약 유도와 광고 없이 공정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혼 준비와 관련된 모든 품목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고객들은 열광했습니다.
여러 샵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웨딩북 청담이라는 한 공간에서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피팅, 메이크업 상담, 웨딩홀 계약을 다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가격도 더 저렴했습니다.
그해, 하우투메리는 티비티(TBT), 산업은행, SV인베스트먼트, 어센도벤처스 등으로부터 1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누적 투자금액 158억 원.
웨딩 시장을 진정으로 혁신한 팀이었습니다.
KB는 왜 웨딩북이 절실했는가
2019년 당시, KB는 막막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돈을 잘 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죠. 간편결제 서비스들이 부상하면서 전통적 카드 사용이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에서는 계속 나왔습니다.
"신성장동력이 필요한데, 뭘 하면 좋을까?"
"신사업을 발굴해야 하는데..."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 요구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건 비단 KB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카드사가, 모든 금융권이 느끼고 있던 위기감이었죠.
그리고 저는 웨딩북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팀이 가진 건 단순히 '웨딩 앱'이 아니라, '결제 이전의 신호'라고.
오픈이노베이션팀이 직접 현업이 되다
선발 후 저는 바로 움직였습니다. 협업 TFT를 꾸렸습니다.
구성은 단순했습니다.
- KB국민카드 웨딩사업 담당
- KB국민카드 마케팅 담당
- 그리고 제가 팀장
퓨처나인을 9년간 운영하며 배운 게 있다면, 오픈이노베이션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똑같다는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현업이 안 움직여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픈이노베이션팀이 직접 현업 역할까지 했습니다.
회의실에 앉아 PowerPoint를 열기 전에, 누가 이 일의 실행할 것인지부터 정했습니다.
우리가 TFT에서 끝까지 붙잡고 있던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초기 데이터를 교차 활용한다."
웨딩북과 KB국민카드가 결혼 예정 고객의 초기 데이터를 교차 활용하는 것.
웨딩북 콘텐츠 기반으로 차별화 서비스를 구성하는 것. 스드메, 혼수 등 카드 결제 가능 영역을 확대하는 것.
여행, 육아, 가족 등 결혼과 연계되는 라이프 스테이지 전체에 걸친 신규 특화 서비스를 공동 개발하는 것.
이게 단순히 "데이터를 주고받는다"는 얘기였으면, 협업은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현실에서 데이터는 쉽게 못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터를 넘긴다"가 아니라, "데이터를 교차 활용한다"는 표현을 붙잡았습니다.
이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습니다.
- 웨딩북이 가진 '결제 이전 신호'(검색/상담/예약/방문)를
- KB국민카드가 가진 '결제 이후 확정 데이터'(예약금/여행/예식장 등)와
- 동일한 고객 여정 위에서 연결해 보겠다는 것
'고객 여정'이 연결되는 순간, 결혼은 더 이상 단발 이벤트가 아닙니다.
결혼은 금융사의 관점에서 라이프 스테이지의 시작이 됩니다.
결혼 → 신혼여행 → 신혼집 → 출산 → 육아 → 가족 여행...
이 모든 단계에서 KB가 '선제적으로' 혜택을 제안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협업이 쉽지 않았던 이유
웨딩북 협업은 분명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발적 성과"라는 말로 포장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협업은 결국 시장의 현실과 정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현금 거래 관행: 결혼 시장은 현금이 강합니다. 카드 결제 전환은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수료 구조와 업계 관행이 버팁니다. 특히 예물이나 스드메 같은 영역은 현금 할인이 기본이었죠.
*개인정보/데이터 규제: "교차 활용"이라는 문장은 아름답지만, 실제 구현은 제약 투성이입니다. 데이터는 기술이 아니라 법과 정책의 언어로 움직입니다. 금융권 개인정보 규제는 특히 까다로웠습니다.
*시장 규모의 한계: 애초에 2만 쌍, 2%라는 숫자는 '희귀 타깃'의 상징입니다. 이 시장은 커지는 시장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적으로 축소 압력을 받는 시장이었습니다.
*조직의 우선순위: TFT를 만들고, 팀장을 세우고, 담당자를 붙여도, 조직은 늘 다른 우선순위에 밀립니다. 웨딩사업은 카드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늘 이 한 줄에서 갈립니다.
"현업의 시간이 끝까지 확보되는가?"
웨딩북은 멈추지 않았다
KB국민카드와의 협업이 기대만큼 폭발적이지 않았지만, 웨딩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9년 웨딩북 청담의 성공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한 후, 웨딩북은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동아시아 mega-city에 특화된 웨딩 플랫폼."
6년 동안 서울의 웨딩시장을 혁신하는 모델을 만들었고, 이제 숫자로 검증된 모델(웨딩북 청담)을 동아시아의 각 도시들로 이식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웨딩북은 코로나 시기 이후 사업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전환했고,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단순히 앱 플랫폼만이 아니라, 직접 웨딩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년간 매출 0원을 견딘 팀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믿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케이스가 남긴 교훈
웨딩북×KB 협업을 저는 "스타트업이 갑이 된 사례"로 포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흔한 결론이고, 대개는 현실을 가립니다.
이 케이스의 진짜 교훈은 이겁니다.
첫째, 희귀 타깃 시장은 '규모'가 아니라 '탐지'로 승부한다.
2만 쌍, 2%. 이 시장에서 강한 플레이어는 광고비를 많이 쓰는 회사가 아니라, 결혼을 '결제 이전'에 잡아내는 회사입니다.
둘째, 플랫폼은 '앱'이 아니라 '운영 시스템(ERP)'에서 힘이 나온다.
웨딩북의 성공 비결은 고객용 앱이 아니라, 2년 넘게 웨딩홀을 찾아다니며 깐 ERP였습니다. 업계의 운영을 디지털화하며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쌓이게 만드는 장치.
셋째, 시장 진입은 거꾸로 가야 할 때가 있다.
웨딩북의 전략적 순서를 기억하세요. 사업자 ERP (2014-2016) → 고객 앱 (2017) → 오프라인 공간 (2019). 고객용 앱부터 만들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넷째, 3년간 매출 0원을 견딜 수 있는 확신이 필요하다.
"사업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고 시장과 소비자들도 원하는 사업 모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존 사업자들의 카르텔이 워낙 견고해 이를 깨고 진입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을 이미 예상했습니다."
주상돈 대표의 이 말이 전부입니다.
다섯째,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찾는 진짜 이유는 '신성장동력' 때문이다.
KB가 웨딩북을 원했던 건 단순히 "결혼 시장 진출"이 아니었습니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라이프 스테이지 서비스를 구축하고, 간편결제 시대에 카드사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찾을 수 없는 고객을 찾는 법
만약 여러분이 "우리 고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건 기회일 수 있습니다.
찾을 수 없다는 건, 아무도 그 고객을 선점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 고객을 '결제 이전'에 포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면, 대기업이 먼저 찾아올 겁니다.
웨딩북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터라면, 지금 이 질문을 해보세요.
"우리는 지금 무엇이 막막한가?"
"신성장동력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결제 이전의 신호는 무엇인가?"
그 답을 가진 스타트업이, 여러분이 찾아야 할 파트너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3년간 매출 0원을 견디면서도, 그 스타트업이 믿은 가능성은 무엇인가?"
그 확신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결국 협업의 성패를 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