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을 포함하여 병원에서 4박5일을 보냈다.
퇴원 전날 옆 침대 산모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그 시점부터 약 30시간 병원 방침에 따라 병실에서 코흐트 격리를 했지만 나와 남편은 다행히 음성이었다.
조리원 천국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진 않았으나 다행히 예약된 일정대로 입성했다.
천국의 오리엔테이션은 생각보다 빡샜다.
시간마다 꼬박꼬박 밥과 간식이 방으로 배달됐고 배가 불러도 모유를 위해서 다 먹었다.
하루 네번 유축, 산후 마사지, 수유를 위한 가슴 체크 및 마사지, 직접 수유 연습, 아침/저녁 모자동실 등 첫날은 낮잠 잘 시간조차 없었다.
남편은 둘째날 아침에 떠나고 그때부터 3주간 새싹이와 나는 조리원에서 머물렀다.
병원과 조리원에서는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케어해줬기에 나는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분유는 잘 먹는지 같은 구체적인 건 알 수가 없었다.
임신 기간 동안 걱정했던 출산 이후의 삶은 조리원에서 배워나온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수유하는 방법, 아기 목욕 시키기, 기저귀 채우는 법 등 필요한 건 뭐든 조리원 기숙학원이 해결해주겠지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자의 습관이랄까......
막연한 내 기대는 모자동실 시간에 한 두시간 아이를 보는 걸로는 충족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움은 스물스물 덩치를 키워갔고 회복은 더뎌 몸은 점점 지쳐갔다.
보통 산모들은 조리원에서 많이 회복해서 나간다는데 나는 더 피곤해지고 심지어 2주차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밤새 긁느라 잠을 못잘 정도였다.
수유하느라 약을 먹을 수 없었고 바르는 연고는 역부족이었다.
조리원 들어와서 심해진 부종은 2주차가 되어서야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몸무게는 여전히 아기 무게만 빠진 상태였다.
조리원은 향후 실전육아를 위해 산모의 지친 몸을 쉬게하고 그 동안 아이를 봐주는 공간이지 한 여자를 엄마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맞춤학원은 아니었다.
이제 믿을 건 집에서 2주간 받을 산후관리서비스였다.
수능을 앞두고 단기 속성 과외를 받는 마음으로 산후관리사님께 모든 걸 의탁하고 배워야지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3주의 시간은 매일의 루틴대로 지루했지만 바쁘게 흘러갔다.
그동안 새싹이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신고도 했다.
입소할 때 헐렁하게 컷던 옷이 딱 맞을 정도로 자라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연신 감탄하며 건내주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거의 한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