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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상어유영 May 09. 2024

(아이와 미술관)3. 경기도미술관

육아와 집안일에 잊혀가는 나를 찾아가는 기행

어린이날 연휴를 앞두고 남편이 감기에 걸렸다.

온 가족이 집안에서 뒤엉켜 하루를 보내면 쉬어도 쉬는게 아닌 터라 혼자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을 찾았다.
리 순으로 검색하다 나의 레이더에 걸리는 곳은 바로 "경기도미술관"

그래! 오늘은 여기다.
사전 정보 따윈 찾아 여유도 없이 아침 먹자마자 아이를 챙겨 운전대를 잡았다.

가는 길에 점심으로 먹을 김밥 두 을 사 마침 지인 근무지가 근처여서 잠시 들러 아이를 인사시켜주고 점심 즈음 도착.
비게이션에 화랑유원지라고 되어있는 이곳은 미술관보다는 캠핑장, 호수, 큰 잔디밭에 주차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소풍 장소로 제격인 곳이다.

입구부터 공놀이 하는 가족에 눈길 뺐긴 아이를 르고 달래 들어서니 삑삑 소리나는 신발은 미술관 입장이 안된대서 테이프를 받아 신발에 붙이고 들어다.
입구에 있는 수유실에서 아이에게 점심먹이고 나도 김밥으로 기를 달랬다.

쾌적한 수유실에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미술관 탐험을 나선다. (예전엔 알지못했던 수유실의 고마움이여!)


경기도의 미술관 답게 1층 로비는 넓고 쾌적하다.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화장실을 찾아 가는데 아이가 먼저 뛰어가 찾으러 간 곳에서 맞딱드린 노란 리본.


구 현수막에 씌여있던 "우리가, 바다"가 세월호 이야기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벌써 10년이라니......

무거워진 마음으로 2층 전시실을 들어가니 내 어딘가묻혀있던 기억이 소환된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관련 부처 소속 공무원이었다.
사고 직후부터 거의 전직원이 팽목항, 진도체육관, 안산 분향소로 파견근무를 나갔다.
나도 팽목항, 체육관, 분향소를 여러 번 갔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우리 텐트 옆에서 밤새 아이에게 못해준 것들을 꺼이꺼이 토해내던 실종 아이 엄마, 적십자에서 주는 삼시 세끼를 받아 먹는 것조차 죄스럽던 공기의 무거움, 분향소 불빛 이외엔 빛조차 숨죽인 그곳.
내 속 어딘가에서 십년전 그때의 뭉툭하고 묵직한 슬픔이 끄집어 내어졌다.

팽목항의 바람소리와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거기서 가져온 흙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풀은 벌써 열 번을 피고졌을터.

미술관에 갔다가 갑작스럽게 받은 감정적 충격 나는 잠시 서서 울음을 삼켰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는 깊은 상처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너무나 아파서 얘기하고 싶지않은 주제, 그 주제를 준비없이 여기서 맞닥뜨리다니......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은 약이 아니었다.

기억 위에 켜켜이 시간의 막이 쌓여 모습을 감춘 것일뿐 언제든지 소환에 준비하고 있는 감정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엔 크고 막연한 슬픔이었다면

내가 한 아이의 어미가 되어보니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견뎌야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거운 처연함을 안고 1전시실을 나왔다.


2전시실은 전도유망한 신진작가의 전시회였다.

"얄루, YALOO"

이름처럼 입구부터 얄궂다.

커튼을 걷고 들어서니 못이라는 제목의 큰 스크린이 바닥에 설치되어있고 무어라 설명이 어려운 이미지들이 반복되는데 기괴하기도 하고 어쩜 저런 것을 상상해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못을 지나가면 마스크팩이 주렁주렁 달린 문을 통과하는데 문을 너머 벽 전체를 차지하는 스크린에 눈을 뺏겼다.

못에서 봤던 이미지 보다 더 기괴하고 이상야릇한 이미지가 지나가기에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전시장을 지키던 분이 오시더니 유모차에 탄 아이를 가리키며 아이에겐 보여주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영문을 몰라 "왜요?"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선입견 없이 영상을 받아들이기에 앞으로 나올 이미지는 아이 정서 상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하신다.


대체 어떤 영상이길래 아이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건지 더 궁금하고 기괴하다.

유모차를 돌려 아이를 지나온 문 쪽으로 향하게 하고 계속 영상을 본다.



제목 "루"에 걸맞게 누각이 나오더니 조금있다 머리카락부터 시작되는 여성의 얼굴이 클즈업 되면서 올라온다. 여성의 얼굴은 노래를 부르다가 얼굴 피부를 뚫고 징그럽게 생긴 촉수같은게 뻗어나오기도 하고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부르는 노래도 섬짓하고 무표정한 얼굴이 공포스럽다. 하지만 강렬하고 난생 처음보는 이미지가 계속 펼쳐지기에 눈을 뗄 수 없다.

영상이 끝나고도 함참을 서서 충격을 완화해야할 정도였다.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다음 전시실에 얄루 작가의 아카이브를 찾아볼 수 있게 되어있다. 아직 나이가 30대 중반인 젊은 여자 미술가이다. 아까 본 그 얼굴이 작가의 얼굴이란다.

다른 종과 결합을 통해 인간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데 그 촉수는 미역인가보다.

미역과 인간의 혼종이라니......

말만으로는 웃기는 조합인데 그걸 이미지화해서 영상과 음악으로 구현해놓으니 기괴하고 아름답고 뭐라 설명이 어렵지만 지금 예술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것같아 충격이 컸다.

작가와 큐레이터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백남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내가 지난 주에 본 백남준의 영상들이 4~50년이 지나 이렇게 진화했구나 싶었다.


미술관에 나오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커피를 한잔 시키고 카페에 앉았다.

얄루 작가의 작품설명을 읽으면서 카페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다들 연휴를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 같았다.

5월의 햇살을 받은 호수가 바람에 일렁이고 설레는 연초록 나뭇잎들도 물결과 같이 나부낀다.

미술관에 있는 내내 유모차에 묶여있던 아이를 잔디밭에 풀어줬더니 돌아올 생각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시 그 주차장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고 간직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일까?

나는 그 숙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못한 숙제가 무겁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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