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by 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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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이방인, 신애


남편의 고향이라 밀양에서 살겠단 신애, 그리고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되는 좋지 않은 사건. 극 중 짧지만, 뇌리에 강하게 박혀버린 대사, "밀양이 언제부터 이리 됐뿟노."


서울에서 온 피아노 선생, 신애는 밀양을 꽤 좋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신애와 밀양사람들 사이의 괴리감은 커져갔다. 왜 그녀는 그 속에 섞여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방인처럼 보인 것인가. 난 토박이들이 마을을 방문한 낯선 이를 배척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밀양에서도 당연히 신애가 밀양사람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척당해서 그리 느끼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밀양사람들이 아닌 신애가 그들을 배척했던 것 같다.


땅! 밀양에 온 신애는 더 이상 서울에서의 신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 와서 자신의 이전 모습은 지우고 당당히 땅을 보러 다닌다. 숨기고 지우고 꾸며서 만든 가짜는 사람들 틈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감추는 게 많을수록 더 멀어지는 법이니까.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된다면 우린 행복할까


"우린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물음에 "행복하기 위해서요."라고 답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완전히 공감하진 않지만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저 말에 동의한다. 행복을 느낀 순간엔 살고 싶단 마음이 평소보다 더 강해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 순간만큼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게 다 이 순간을 위해, 지금의 이 행복을 느끼기 위한 것이었구나 싶다.


신애도 그런 인물인 것 같다. 밀양이 좋다는 말도, 계속해서 사지도 못할 땅을 보러 다니는 것도, 남편이 바람을 피웠단 사실을 부인하는 것도, 코를 고는 것도, 교회에 나가는 것도, 도섭(유괴범)을 용서하려던 것도, 이후 신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도 모두 자기가 행복하기 위해서였단 생각이 든다.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만들어진, 그저 도피를 위한 그런 행복. 그녀는 자꾸만 행복한 현실을 꾸며내서 그 속으로 도피해버리다. 그런 행복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쉽다. 그래서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고 이런 굴레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면 결국 행복에 집착하게 돼버린다. 우리에겐 고통과 불행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언제까지고 행복하기만 할 순 없기 때문에.



용서의 조건


피해자는 아직 용서하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이름 아래 가해자는 용서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참으로 잔인한 상황이다. 이 장면에서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저 용서는 효력이 있을까?'


일단 용서라는 행위의 목적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나에게 용서란 어떤 상황에서건, 누가 용서를 하건, 누가 용서를 받건 이 모든 것은 다 자기 마음 편해지고자 하는 행동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 속 용서의 장면은 서로에게 있어 전혀 손해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한 사람은 그날 받을 용서를 조금 앞당겨 받은 것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용서하려 마음먹고 찾아간 것이라 그날 용서라는 행위는 어차피 일어날 예정이었다. 용서가 일어난 타이밍만이 어긋났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여태껏 용서는 행위의 목적이 뚜렷하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모든 걸 쉽게 용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는 내가 눈앞에 떨어진 일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남 미워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단 생각에서일 수도, 난 자신을 많이 아끼는 사람이라 그런 데서 소모되는 감정을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동안 간과한 사실을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이는 용서를 구하는 상대가 용서하려는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나 가능한 말이었다. 타이밍, 상대의 태도, 나의 심리적 상태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 영화에선 타이밍만이 유난히 눈에 띄었지만 실제로 용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여러 조건이 그 속에서 맞물려 떨어져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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