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오늘은 따스함이 간절해지는 계절, 겨울의 어느 날이다. 추운 걸 유난히 싫어하기에 겨울이 다가올 때면 늘 어김없이 스트레스에게 마중 나가곤 한다. 나뭇잎이 서서히 사라져 갈 때마다, 해 저무는 속도가 1분씩 앞당겨질 때마다, 옷의 무게감이 더해질 때마다, 내면이 숙연함 쪽으로 점차 기울어져 갈 때마다. 그렇게 가을 끝자락에서 겨울의 낌새를 느낄 때마다 아직 마주하지도 않은 겨울의 극악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미리 고통받곤 한다. 추운 게 너무 싫다. 끔찍하게 싫다.
겨울을 향해 서서히 고조되어 가던 나의 반감은 드디어 그를 마주했을 때 극에 달해 터져 버리고야 만다. 생각보다 추위는 견딜만했고 그렇게 이번에도 적응해냈다. 되찾은 평정심. 이 긴장과 완화 사이에서 겨울과 나 사이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서사의 끝에서 겨울이 지닌 추위 이면의 또 다른 모습, 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감정의 고조가 큰 작품들이 있다. 긴장감을 극단까지 몰고 간 다음, 비대해진 긴장을 맹렬히 분출시키는 작품. 가끔은 이런 작품들에게서 긴장을 불러일으켰던 대상을 향한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향해 필연적으로 발생하고야말 나의 애정을 그려보게 된다. 긴장감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오해는 그 대상의 뒷통수만 바라보다 생길 때가 많다. 난 그와 맞지 않다, 평생 그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상징은 추위로, 난 추위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도 겨울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미움이 커지고 드디어 그와 만났다. 그의 추위를 직접 목격했을 때, 그의 온도를 직접 느꼈을 때, 그의 냉기 속에서 오늘까지 버텨냈을 때, 미움 혹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추위를 향한 막연한 불안이 극에 달했다가, 폭발했다가, 이젠 지쳐버린 나머지 더이상 일어 서 있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 그와 눈이 마주친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그의 담백하고도 수수한 이목구비를, 확신에 찬 또렷하고 맑은 빛을 띠고 있는 눈동자를, 고요하고도 차분한 분위기를 마주한다.
관계 속에 잠재해 있던 감정의 응어리가 표면에 맺혔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배출되었을 때 비로소 미움의 원인이 너무나 보잘 것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미움에 대한 보상처럼 그를 향한 무한한 긍정의 마음, 미움에 가려 알아보지 못했던 그의 긍정성을 관찰해 내고자 하는 의욕이 들끓는다. 막상 들이닥친 겨울 속을 살아가면서 겨울의 긍정적인 측면을, 그가 내게 가져다줄 긍정적인 모습을 매일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모순되게도 겨울은 여러 계절 중 가장 매력적인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에 누리는 아이스크림
긴장이 풀어지고 이젠 해피엔딩만이 남았다. 혼자만의 일방적인 미움이 풀어지고 지금은 그의 가장 큰 오점이었던 추위 앞에서 한가로이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유를 부린다. 겨울의 냉기 앞에서 한껏 서늘해진 바깥의 온도를 생각하며 나의 공간이 주는 온기를 누린다. 생명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만들어내던 소리가 차갑게 얼어붙어, 대낮임에도 적막함이 집안을 사로잡는다. 내 주위에 겨울이 만들어낸 두꺼운 벽이 생긴 듯하다. 모든 것들과의 단절은 앞선 추위와의 싸움에 지친 나에게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휴식에 휴식을 더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안락하고 안전한 나만의 세계 안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추위를 입안 가득 머금는다. 달달하고 쫀쫀하게 휘감아 들어오는 우유의 맛, 진득하고 강렬하게 퍼져 나가는 초코의 맛. 추위에 뒤따르는 이 달콤하고도 아찔한 감각이 추위에 지친 나에게 추위와 더불어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준다.
아이스크림은 어느 계절에나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겨울철 아이스크림은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누린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눈앞에 추위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여유롭게 추위로 만들어진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겨울의 냉랭한 세계와 나의 안락한 세계가 그만큼 대비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대비가 긴장감이 아닌 안전함을 강조하고 있기에, 불안함과 예민함을 내려놓고 기쁨만 그릴 수 있게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추위 속에서 한가로이 아이스크림이 주는 달달한 맛에 취할 수 있다는 것은 겨울의 고고하고 수수한, 우아한 분위기에 취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겨울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만큼 겨울이 그리는 풍경에 애정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쪽 극단에서 저쪽 극단으로의 횡단은 감각을 일깨우고 깊이를 만든다. 겨울에 대해 아주 싫은 마음과 아주 좋은 마음 사이를 오가면서 그의 모습을 직접 바라보고, 듣고, 느낀다. 양극단을 오가는 여정의 매 순간 속에서 그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따스함이 간절한 오늘, 난 겨울의 장벽 안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누리며 겨울을 바라보고 있다. 여정 길에 느꼈던 겨울의 실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겨울 아이스크림이 주는 취기에 내 모든 손가락을 내맡긴 채로 글을 쓰고 있다. 평화로워진 마음과 취기에 휩싸여 생각해 본 겨울은 늘 그랬다. 늘 한결같았다. 겨울은 겨울다운 모습으로, 춥고, 고요하고, 차분하고, 선명한 모습으로, 얼어붙어 멈춰버린 듯한 모습으로 찾아왔었다. 진실한 자의 진정성은 오해를 기어이 풀어내고야 만다. 그리고 오해의 이면에 감춰진 자신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드러내고야 만다. 추위와의 싸움 끝에 안락한 방 안에서 겨울만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누리며 이 겨울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