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위치한 지역 갤러리에 대한 제언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제주갤러리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초반에는 서울의 갤러리들은 대학로에 많이 있어서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대학로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인사동이 갤러리 중심 지역이 되었다가 인사동의 북쪽인 삼청동, 소격동에서 지금은 서촌에 이어 강남의 청담 등 다양한 곳에 갤러리들이 생겨서 서울 곳곳에서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사동에 있는 제주갤러리는 제주 지역 작가들이 전국적으로 알려질 수 있도록 제주도청에서 예산을 만들고, 제주미협에서 위탁 운영을 하는 공공 성격의 공간입니다. 인연이 있는 제주 작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종종 들르는 곳입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욕구가 있어서인지 인사아트센터에만 전북도립미술관 서울, 경남갤러리, 부산갤러리, 광주시립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 제1 특별관 등 여러 지자체의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 시선(Two Perspectives)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오래도록 지켜봐 왔던 그룹 연의 'RE:BOOT in SEOUL'과 양정화 작가의 '느린 구름'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그룹 연(김다정, 김민재, 김지영, 김지형, 신승훈, 양정임, 오경수, 한항선, 현덕식) 은 벌써 21회째 전시를 하고 있는데 대학 졸업 후 작업을 시작한 작가들이 어느덧 21년의 시간 동안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작가들입니다. 오래 보다 보니 익숙하면서도 늘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늘 기분이 좋아지는 전시입니다.
양정화작가는 멈춰진 풍경을 통해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을 보는듯한 그림으로 또 다른 제주의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제주 작가들의 전시를 서울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자체들이 서울에 갤러리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서울을 매개로 전국구 작가로 활동하여 지역 작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예산을 들여 서울에 공간을 임대하고 전시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자자체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미술 생태계를 아는 분들은 서울에 지역 갤러리를 만드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아쉬움을 이야기합니다. 추구하는 목표가 지역 작가가 전국적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작가로서 경쟁력을 가지고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여는 것이라면 공간을 만들고 전시를 지원해 주는 것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시와 더불어 갤러리를 통해 미술 시장과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을 걸고 끝이 아닌 전시 개막에 지역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분들이 미술 애호가와 콜렉터들을 모시고 와서 지역 작가들의 그림이 팔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작가들은 그림 전시와 함께 작가론을 이야기하는 아티스트토크를 진행하고,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과 콜라보를 하면서 예술 전반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지역 예술을 알리고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역할을 별도로 홍보 기획사를 통해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예산이 없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제주의 경우 제주미협이 위탁운영하는 이유는 미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산과 상관없이 미협 구성원들이 서울에 있는 예술가, 애호가들이 전시 기간 중에 제주갤러리를 매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면서 제주의 미술, 제주의 예술을 알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조그만 힘을 보태기 위해 미술을 즐기는 모임의 좌장을 모시고 같이 감상을 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일 뿐입니다. 돈이 없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제주작가들이 제주갤러리를 통해 많이 보이고, 큐레이터들에게 알려지고, 콜렉터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제주의 미술 생태계가 전국구를 넘어 글로벌로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만들어진 지방의 갤러리도 비슷한 이유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