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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보영 May 03. 2020

게임 제작자에요

<게임은 어려워> , 문보영, 시인동네 수록 편

1. 사실 나게임 제작자야  

   

마법의 미로는 지하 미로와 바닥으로 구성된 게임이다.      

내용물은 다음과 같다.      

* 나무 벽 24개

* 마법 심볼 칩 24개

* 천 주머니

* 1,2,2,3,3,4가 쓰인 주사위

*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 마법사 말

* 금속 구슬 4개

* 규칙서     

게임 규칙서에는 이런 소개 글이 적혀 있다.      

“쿵! 아야!” 꼬마 마법사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여기에 벽이 있네.” 오늘 꼬마 마법사들의 시험은 마법의 미로에서 마법 심볼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로 여기저기에는 마법사 선생님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심볼이 가까이 있다고 무작정 다가가다가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힐 것입니다. 먼저 어디에 마법의 벽이 있는지 알아내세요. 심볼 다섯 개를 가장 먼저 모아 오늘의 시험을 멋지게 통과해 보세요.“     

여기서 알 수 있듯 <마법의 미로>는 ‘보이지 않는 벽’과 싸우는 게임이다. 우선 두 개의 바닥을 잘 이해해야 한다. 게임에는 두 개의 층이 존재한다. 겉으로 보았을 때 판은 하나다. 바닥에는 가로 세로로 구획된 길이 나 있는데, 그려진 길을 따라 말을 움직여 심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판 아래 숨겨진 또 다른 바닥이다. 판 아래에는 지하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숨겨진 공간에 24개의 벽이 서 있다. 그리고 위층에서 움직이고 있는 말의 하단에 구슬 모양의 자석이 부착되어 있는데, 말이 벽이 있는 곳의 윗부분을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자석이 떨어져 시작점으로 되돌아온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리셋되는 것이다. 자석이 품으로 돌아오면 플레이어는 다시 길을 떠난다.     

판 아래 판은 <지하 미로>라고 불린다. 재미있는 점은 지하 미로를 플레이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게임에 빠트린다. 게임 상자에는 탈부착이 가능한 24개의 작은 나무 벽이 들어 있다. 이 나무 벽을 홈에 끼우며 미로를 구축한다. 단, 사면이 모두 막히게 설계하면 안 된다. 플레이어에게 사방이 막혀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말로 다 막아버리면 안 된다. 다 막히지는 않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벽을 꽂는 경우의 수는 무수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수하게 우리 자신을 골탕 먹일 수 있다. 그러니, ‘예전에 가봤던 미로여서 식상하면 어쩌지? 내가 길을 다 꿰고 있으면 어떡하지?’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길에 관해서라면 모두가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 게임의 첫 번째 묘미는 내가 문제를 내고 내가 맞춘다는 점이다. 내가 나에게 돌을 던지고 내가 맞기, 내가 나에게 똥 던지고 내가 맞기, 내가 나에게 코끼리 주고 코끼리 돌려받기. 뭔가 뭘 해도 자업자득인 느낌으로 충만할 수 있다. 혹자는 번거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게임을 바로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이, 게임의 판을 짜야 한다는 점이, 문제 출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어렸을 적, 나는 이와 비슷한 상상에 자주 빠지곤 했다.      

어떤 방에 관한 상상이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모두 게임 제작자였다. 이 방에는, 곧 태어날 인간이 참여할 게임을 만드는 게임 제작자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곧 태어날 인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게임판을 짜고 있다. 게임 제작자들은 게임을 만든다. 자기가 하려고. 그들은 게임에 어떤 요소를 추가할지, 어떤 지형을 만들 것인지, 어떤 분위기를 부여할지, 무슨 노래를 깔지 정한다. 그리고 스토리를 짜고 주사위를 준비하고 말의 형태를 만들고 여러 가지 (부조리한) 규칙을 부여한다. 게임이 완성되면 게임 제작자들은 서로의 게임을 보여주고 의견을 나눈다. 서로의 게임을 매의 눈으로 살펴본 뒤, 각자의 게임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누구도 게임의 모순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그 모순에 대해 칭찬한다. 누구의 모순이 가장 예쁜지 질투하면서. 모순을 안고 게임은 시작된다. 물론 게임 제작자가 게임에 참여한다. 게임이 시작되면 인생이 시작된다. 게임 제작자는 태어나는 것으로 기억을 상실한다. 그건 게임의 기본 법칙이다. 그래서 갓 태어난 0살 아기는 본인이 얼마나 훌륭한 게임 제작자인지 모르고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들은 사실, 자신이 자기 자신을 골탕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사실은 이 모든 이야기를 자신이 만들었고, 이 게임을 자신이 짰다는 사실을. 본인이 너무 훌륭한 게임 제작자여서 자신의 인생이 이토록 즐겁고 슬프며, 모순이 많고, 아프고 짜고 재떨이 같고 당나귀 같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슬퍼하다가 간다.           

2. 내가 언제 여기 와봤지?     

모두의 눈에 벽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평하게 부조리한 <마법의 미로>는 운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게임 초반에는 벽의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길을 떠났다가 벽에 부딪혀 집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같은 곳에서 자꾸 인생이 리셋되는 경험이 누적되면 ‘아, 내가 어디서 망하는지를 좀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멀리 나가도 벽을 만나면 허사다. 한번 벽에 부딪히면 아주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리셋될 때 에누리가 없다. 길을 가보지 않는 한 플레이어는 그곳에 벽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꾸 가야 한다. 그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계속 가본다. 기억에 조금씩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동네를 파악하는 것은 꽤 쉽다. 길에 대한 감각이 생기면, 길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여기로 가도 죽지 않는다, 여기로 가면 살 수 있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저기로는 가면 안 돼. 게임을 하다 보면 벽을 사랑하게 되고 미워하게 된다. 벽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벽은 공정하게 그곳에 서 있고, 다가오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치사하게 움직여서 정신을 교란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잘 모르는 동네로 가면, 조금만 멀리 나가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누가 어느 구역에서 망하는지를 잘 관찰하면 나중에 내가 그 길을 건널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안 가본 길을 다른 플레이어가 가볼 때,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대신 먹어주는 느낌이 든달까. 남이 가본 길을 갖다 쓴다. 남의 기억을 넘보고 훔친다. 남의 경험을 써먹어야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      

이렇게 게임을 하는 내내 다같이 멍청한 짓을 반복한다.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온다.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외친다.     

너 아까 거기서 죽었는데 또 죽냐?     

그리고 항의한다.     

내가 언제 여기에 와봤지?     

내가 여기서 죽었다고?     

그런데 또 죽은 거야?               

p.s     

<마법의 미로>를 할 때는 몸을 사리게 된다. 말을 한번 잘못 놀리면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에.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플레이어를 위한 규칙이 있다. <말을 움직일 때는 과감하게 움직여라>는 규칙. 찔끔찔끔을 허용하지 않는 규칙. 말을 살짝 움직여보면 하단에 부착된 자석 구슬의 반응을 통해 벽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에 관해서라면, 떠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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