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nisland Aug 02. 2020

나이 먹고 하는 가출

Hotel + Vacance = 호캉스

그런 거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어딜 가?


그렇다... 굳이 놀고먹고 자는 것은 집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만만하고 편안하던 집이 싫어질 때도 있다.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압박과 잔소리,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공부와 학교 생활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을 찾아 집을 떠나는 가출 청소년처럼. (학창시절에 가출을 할 정도로 용기가 있는 놈은 아니었지만 이런 마음으로 가출을 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으로 예를 들어 봅니다.)


너무나 가깝고 편안한 나의 집이지만 눈을 조금만 돌리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온갖 살림과 나의 걱정들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 집이기 때문이다.

평소 호캉스 가고 싶다~ 호캉스 가야지~ 노래를 부르다가 퇴사를 하면서야 큰 마음먹고 예약을 했다.

COVID-19 사태로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서 호텔을 예약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여행은 가면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곳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도 있는 법. 휴가를 가기 전에 찾아보고 준비하는 것 또한 부담이고 짐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나.

요즘의 내가 그랬다.

나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인지 항상 똑같았던 일상인데 사소한 것들이 무겁고 짜증스럽게만 느껴지는 요즘...

학창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가출을 했다.



Hotel + Vacance = 호캉스


예약한 호텔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는 침대와 욕실 그 외 소파와 테이블과 같이 간단한 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짐도 풀기 전에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된 침대에 드러누워본다.

그 순간, "아... 좋다..." 하는 짧은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어 집을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호텔 가서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들은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져 버린다.

아마도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계획을 하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 객실 전경

최근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가 트렌드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제 와서 호캉스가 트렌드라고 말하기에는 벌써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돼버렸다.)

좋자고 떠난 여행지에서 오는 스트레스, 쉬자고 마음먹고 집에서 눌러앉았더니 보이는 살림살이들, 많은 가족 구성원들을 모두 이끌고 가기엔 버거운 여름휴가 등등의 이유로 가까운 거리에 잘 갖춰져 있고 편안한 호텔을 찾는 것이다.


Vacance 바캉스

휴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바캉스-Vacance는 텅 비어 있다는 뜻의 라틴어 Vacatio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휴가는 단순히 놀고 즐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쌓인 것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잘 비내워내야 다음을 잘 채울 수도 있는 법!



정리 정돈, 준비와 배려의 또 다른 표현


Hotel 호텔

대규모 숙박시설을 의미하는 호텔-Hotel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라는 뜻의 hospitale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요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일상이라는 여행을 하다 쉬어가기 위한 숙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일상적인 행위인 먹고 자고 노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공간.

샤워, 식사, 책 읽기, 운동, 잠 자기 그 외 수영이나 기타 여가 생활까지도 쾌적하고 여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 바로 호텔이다.


욕실, 욕조-매직글라스 버튼


잠을 자면서 깔끔한 침구류의 촉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목욕을 하면서 몸에 닿는 물 온도와 목욕 용품의 향기를 즐기고 온전히 그 사소하고 짧은 일상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매직글라스의 블라인드를 내리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 보면 욕조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른손만 딱 뻗어서 창문이 보이지 않도록 전환할 수 있는 매직글라스 버튼이 벽에 설치되어 있다.

모든 것이 잘 정리정돈되어 있는 호텔 객실에서는 사소한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를 여유롭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미리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인 것이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정리 정돈되어 있어 언제든 바로 꺼내 사용할 수 있는 것,

객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활동과 동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작들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세심하게 계획된 공간, 객실에 머무르며 생각해보니 정리정돈이라는 말은 새로운 출발과 다음에 있을 일을 위한 준비이자 배려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가출이 그렇듯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자신 앞에 놓여있는 길을 곱씹으며 걸어가야 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에 찾아 올 일상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비워내고, 그 일상을 여유롭고 조금 더 풍요롭게 맞이할 수 있도록 미리 자신을 돌아보며 정리정돈을 하는 것. 이것이 호캉스로 대변되는 진정한 의미의 휴가이지 않을까?

잘 비워내고 깨끗하게 정리정돈 해두자 비록 돌아온 현실이 예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맑아진 마음과 정신으로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빛과 어둠의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