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에 살기 시작했다

클릭 몇 번으로 집이 생겼다

by 오프닛

30대 중반이 지나가던 시기는 내 인생의 큰 이벤트로 시작됐다. 첫 내 집 마련.

우리 아빠는 1992년 대규모로 나라에서 신도시를 공급하던 시절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엘리베이터는커녕 보일러도 없던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아둥바둥 네 식구가 살다가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우리 가족 모두가 신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는 평생 큰돈을 빌려본 적도, 투자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일해서 번 돈으로 저축해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던 아빠가 나와 내 동생에게 유일하게 가르쳤던 돈에 대한 신념은, '내 집은 분양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순차적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해 청약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당시는 오랜 하락장 끝에 집값이 조금씩 슬금슬금 오르던 시기였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분양받아 피 받고 팔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전매 제한이라는 제도와 신축 아파트라면 너도나도 못 사서 안달인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당시 분양권 프리미엄 거래 가격은 천만 원대였다. 5천만 원 피를 받고 팔았다고 하면 솔직히 잘된 케이스였다. (물론 지금의 속도감 있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지금의 5천만 원과 7~8년 전의 5천만 원 가치는 다르지만 말이다.) 내가 거주하려고 분양받기보다는, 소위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파는 투자가 유행이었다. 그런 면에서 분양은 확실히 핫했다.

나도 분양을 여러 번 넣어보았다. 피를 받고 팔기 위함은 아니었고, 내가 살 집이 필요한 시기였으며, 부모님에게서 받은 가르침이 그저 ‘분양받아 집 사라’였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지금도 투자에 대해 박식한 편은 아니지만, 처음 분양을 넣을 때는 무지함의 끝이었다. 집값이 다 있어야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줄 알았고, 당첨되려고 청약을 정작 당첨이라도 되면 어쩌나 싶어 손가락이 떨리도록 고민했다. 부동산을 잘 아는 친척이 “거긴 인기 많아서 될 리도 없는데, 당첨되면 그때 고민해”라고 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곳은 고덕 그라시움이었다. 지금도 유명한 곳이지만, 당시에도 청약 기록을 갈아치운 곳이었다. 그만큼 아무것도 몰랐다. 나날이 치솟는 분양 인기 속에서, 한참을 오르지 않던 집값이 왜 내가 사려고 하니까 오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사면 꼭지 아닐까 싶은 시기였다.

그게 2017년이다. 웃기지 않은가. 지금 2017년도의 서울 집값을 보면, ‘나 저때 뭐 했나’ 싶은 사람이 수도권 인구의 절반, 아니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그때 저러고 있었다. 심지어 집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는데도, 집은 분양으로 사는 것이라 믿으며 서울 중심부 구축은커녕 내 생활권과 전혀 상관없는 서울 테두리 이곳저곳에 청약을 넣으며 시간을 보냈다.

식을 줄 모르는 분양 열기와 부동산 투자 열풍 속에서 정부는 특단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름하여 부동산 8.2 대책. 부동산을 잘 몰랐던 나조차도 귀에 익을 만큼 회자되던, 꽤 강력했던 대책 중 하나다. 이 대책은 ‘다주택자 혼내줄 거야’로 유명했는데, 그저 분양받아 내 집에 살고 싶었던 나에게는 ‘이제 분양권 장사 그만해’로 각인된 대책이었다. 서민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며 내놓은 이 대책은 다주택자를 때려잡는 방향성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서민 실수요자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대책의 실거주 조건 덕분에 분양 실수요자였던 나는 혜택을 받은 셈이기도 하다.

2017년 8월 2일 대책이 발표되자 부동산 시장, 특히 분양 시장은 차갑게 식었다. 실거주 2년이라는 조건이 붙으며 피를 받고 파는 장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마침 그 무렵 분양을 하는 아파트가 있었다. 게다가 부모님이 사는 곳 근처였다. 안 넣을 이유가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분양 시장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곳의 입지가 별로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40점대라는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청약 점수로 분양을 받게 되었다. 몇 차례 낙방 끝에 접한 청약 당첨 소식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뻤다. 기쁘고, 신기했다. 클릭 몇 번으로 내 집이 생기다니. 모델하우스에 가서 성실히 저축한 몇천만 원을 송금하고 계약서를 썼다. 원래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델하우스에는 당첨자 명단이 붙어 있었다. 출생연도와 함께 붙어 있던 명단 속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많았다. 다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건 모르겠고요, 우리 가족 살 집 분양받았어요.’

운명이었는지, 당시 살고 있던 전세집 만기와 분양받은 집 입주 시기가 정확히 맞물렸다. 녹물이 나오던 복도식 15평을 거쳐, 복도식 24평 전세를 살다가 새로 지은 우리 명의의 33평 집에 살게 되었다. 새 아파트의 엘레베이터 움직임 소리는 조용했고, 내부는 쾌적했다. 현관 문은 단단하게 닫혔다.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에서 불어오는 외기가 현관문 틈새로 들어오는 일도 없었다. 새 집 특유의 냄새와 4베이라는 요즘 유행의 반듯한 구조 안에서, 우리는 드디어 '신축에 산다'는 사람이 되었다.

내 집에 산다는 안정감, 이 느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더구나 아이들과 함께 사는 부모인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인 요소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안정감은 지나치게 안정적이어서 내가 더 이상 인생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전까지 우리 통장의 저축 시계는 늘 내 집 마련에 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가도, 무언가를 사도, 집에 큰일이 있어도, 회사가 너무 힘들어 때려치우고 싶을 때에도 늘 ‘내 집만 사 봐라’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런데 내집 마련이라는 삶의 버팀목이 사라지자,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의 의미 또한 함께 사라져버렸다.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허무했다. 삶의 목표는 물질적인 무언가를 취득하는 데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내 집에 산다는 안정감은 분명 있었지만, 그 다음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집을 얻고 방향을 잃은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