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기 VS 놀기

같이 놀면 훨씬 재미있다

by 김란주

오랜만에 아이들과 숲 놀이터에 갔다. 나무들 사이에 굵은 줄과 나무토막을 연결한 그네, 징검다리, 구름다리, 사다리가 있는 곳이다. 플라스틱이나 쇳덩이가 아니어서 더 좋다. 나무뿌리가 여기저기 뻗쳐있어 발이 걸리기 일쑤지만, 넘어져도 흙이라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울창한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가 오늘따라 더 상쾌했다.

두 딸은 마치 대여섯 살 되는 동생들처럼 종횡무진하며 뛰어놀았다. 산책하자 하는 건 절대 따라나서는 일이 없는데, 놀이터는 또 엄청 좋아한다. 옆에 어린아이는 넘어질까 걱정된 부모가 보디가드를 자처하고 서있다. 우리 애들은 경력직답게 휘리릭 구름다리를 건너고 징검다리를 날아다녔다. 그네를 밀어줄 필요도 없다. 어린 동생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만 하고, 남편과 나는 가까운 산책길을 손잡고 걸었다. 사춘기가 코 앞인데 저 순수함을 어찌할꼬, 괜히 좋으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한참을 놀다 장소를 옮겼다. 예전에 수레가 하나 있어서 애들을 태워줄 수 있었는데, 안전상 문제가 있었는지 오래돼 폐기처분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실망하기는커녕 원래 목적이 따로 있었다는 듯 낮은 나무기둥들이 박힌 울타리로 갔다. 설명을 어찌해야 할까, 나무 기둥의 단면 지름이 약 220mm 운동화가 딱 올라가는 정도인 것을 무릎까지의 높이정도로 잘라서 이어서 박아놓았다. 수레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울타리의 용도이지만, 우리는 이전부터 게임을 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일명 '외나무다리 게임'이다. 두 팀으로 나누고 대각선 양쪽 끝을 각 팀의 출발점으로 하여 '시작'하면 한 명씩 출발한다. 중간에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하고 진 사람은 내려가서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같은 팀의 다른 사람이 출발해서 다시 또 어디선가 만나 가위바위보한다. 그렇게 반복해서 상대편 출발지점까지 도착한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내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라고 했더니, 남편이 "가족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로 바꿔 말했다.

파트너를 바꿔 총 세 번을 하기로 했다. 둘째가 그것이 '공평하다'라고 했다. 세 번 게임 중 첫 번째 게임만 승패가 갈렸고, 두 번은 무승부로 끝냈다. 상대편 팀 출발지까지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에 져서 무산이 됐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예~', '아악~' 소리가 반복될수록, 네버엔딩스토리다, 끝이 있긴 한 거냐, 대체 언제 끝나냐 말이 이어졌다.

40대 두 명과 10대 두 명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더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 한참을 서서 구경하다 갔다. 우리처럼 빠른 스피드와 박진감 넘치는 가위바위보를 재현하려면 최소 5~6년은 더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이 그 나이 땐 그저 '놀아주기'였는데, 이제는 '같이 놀기'가 가능하다는 게 참 뿌듯하다. 남편과 나는 진심으로 아이처럼 소리 지르고 아쉬워하고 기뻐하며 즐겁게 놀았다. 정말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을 '읽어주는' 일보다 '같이 읽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옷 골라주는' 날보다 '같이 고르는' 날들이 늘어났다. '먹여주는' 일이 일상이었던 꼬꼬마가 이젠 식성대로 '먹는' 일이 새삼 기특하게 느껴진다.


'놀아주기'와 '놀기'의 차이는 이처럼 아이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느냐이다. 나와 동등한 존재. 그것이 당연한 진리임에도 나는 나의 손과 발이 아이에게서 떼어져서야 깨달은 듯 하다. 그냥 그 순간을 즐기면 될 것을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의무감을 놀이에까지 적용했으니, 즐거웠을 턱이 있나. 놀아준다는 마음 말고 그냥 놀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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