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상 VS 아이의 현실
아침 식탁에서 둘째가 말했다.
“엄마, 난 혼자 하는 게 편해.”
이 말이 귀에 딱 걸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첫째가 딱 4학년 때 했던 말이다. 그때 첫째는 모둠활동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딴짓하는 애가 꼭 하나씩 있고, 혼자 다 만들었더니 발표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애도 있고, 괜히 시간만 잡아먹는다고 투덜거렸다. 혼자가 더 빠르고, 결과도 더 낫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은근히 걱정했었다. 너무 개인주의로 가는 건 아닐까, 이기적으로 크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엔 4학년 된 둘째까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첫째가 또 맞장구를 쳤다.
"맞아, 혼자가 더 나아. 빨리 끝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잖아."
나는 약 2년 전에 첫째에게 했던 말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말했다.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사회에 나가면 더 크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해. 그런데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알게 모르게 다 연결되어 있어. 협업하는 능력이 좋을수록 더 빨리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지금 초등학교에서 쉽고 재미있는 주제로 협업활동을 연습하는 거야.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갈등해결 방법을 경험으로 배우는 훈련을 하는 거지. 이 훈련을 하지 않고 나중에 정작 필요할 때 크고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려고 하면 그것이 쉬울까? 지금은 나 혼자 하는 것이 결과물이 더 빨리 쉽게 나올 수 있겠지만, 결과물들보다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해.
말하면서 속으로 '오, 빌드업 괜찮았어. 이번엔 설득됐겠지?'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조용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응, 알겠어" 하지도 않았다. 글로 쓰고 보니, 참 길게도 혼자 쏘아댔나 싶다.
이 내용에 대해 Chat GPT에게 양육 상담을 요청했다. AI는 나의 가장 큰 오류를 예의있게 지적했다.
“부모의 설명이 잘 안 닿았을 가능성이 있는 이유 : 너무 미래적이고 거대한 가치 설명
– 사회는 다 협업이야. 세상은 혼자 못 살아.
-> 아이 입장에선 지금 당장의 불편을 미래의 이상으로 억지 설득당하는 느낌일 수 있음”
뭐야. 이 인간미 넘치는 팩폭은?
‘너무 미래적이고 거대한 가치 설명’ 그 말이 딱 박혔다. 맞다. 나는 또 '세상은 말이지', '사회는 말이지' 하며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아이들은 눈앞의 밥 한 숟가락, 오늘 학교에서 벌어질 일, 그게 전부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천하지 않은 것, 사실은 아는 게 아닌 것. 아이들 마음을 듣기보다 내 말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는 걸 오늘 또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을 먼저 듣자.
생각해보면, 아이는 모둠 활동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알차게 자료를 만들고, 발표까지 잘 해내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애썼을 것이다. 그런 아이의 애씀을 먼저 '정말 애썼네. 수고했어. 참 멋지다!' 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협업이 힘들어서 속상했던 마음도 ‘네가 그렇게 느낄 만했겠다.’ 라고 다독여줬어야 했다.
그리고 천천히, 꼭 오늘이 아니라 다음번에 모둠 활동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오늘처럼 아이의 한마디에 내 열마디를 보태 아이의 생각을 개편하려고 들지 않았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갤럽 강점 진단에서 4위가 공감이었던 나다. 그 공감 능력, 대체 다 어디다 두고 산 걸까. 아이들이 또 무슨 말을 꺼내든 이번엔 먼저 끄덕이며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