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
"우리 아이는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2학년 학부모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답했다.
"우리 애는 4학년 2학기 정도 되니까 조금 알겠던데,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첫째가 4학년 때 가장 크게 부딪힌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내 꿈’을 적는 칸에서 손이 멈칫했다고 한다. 7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아이라 당연히 그렇게 적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물음표가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걸까?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말해왔으니까 계속 그러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아이가 스스로 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참 고마웠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순간, 아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첫걸음을 뗀 셈이니까.
며칠 후 다시 얘기를 꺼내는 아이를 보니, 물음표가 꽤나 깊게 찍혔나 보다 했다.
“나 이제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런데 다른 뭐가 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꿈이 없어진 것 같아.”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다 보면, 꿈은 계속 생기고 또 바뀌기도 해.”
두어 달쯤 흘렀을까. 어느 날 밤, 아이가 잠들기 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꿈이 없어도 되는 거야?”
아이의 물음표에 웃음자국만 남겨준 것 같아 괜시리 미안해졌다. 아이의 질문이 나는 어쩐지 참 기특하고 뭉클했다. 꿈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꿈은 직업과 동의어가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목표일 뿐 꿈은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 못했다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직업이 생기고, 또 지금 있는 많은 직업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이가 코코 샤넬 전기를 읽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더라도, 실제 살아갈 미래에는 그것보다 더 세분화되고 전혀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지도 모른다.
직업은 꿈을 이루는 한 목적지일 뿐, 꿈 자체는 훨씬 더 넓고 유연한 것이다. 직업명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면 계획은 수월해진다. 그 목표를 향해 자격 요건과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진짜 꿈은 그런 외형보다 ‘왜 그걸 하고 싶은지’, ‘무엇에 마음이 설레는지’에 더 가깝다. 꿈은 가슴 뛰는 설렘이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아니다.
직업은 바뀌어도 좋다. 그 변화들을 연결해 보면, 그 안에 진짜 꿈이 보인다.
내가 처음 품었던 직업으로서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시골에서 가장 가까이 접한 직업인이고, 가장 선한 영향력을 미쳤던 존재였기에 자연스럽게 떠올린 꿈이었다. 그러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뮤지컬 배우도 꿈꿔봤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경영 컨설턴트, 광고 카피라이터, 강사… 그렇게 꿈은 계속 변해왔다. 돌아보면 그것들은 모두 ‘교육’, ‘창작’, ‘표현’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건너온 점들이 나중에는 결국 연결된다. 나는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어, 교육적인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본질적인 욕구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의 꿈이 바뀌는 것을 걱정하지 말자. 그저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바뀌어온 꿈들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편안한 것 같아?”
“책 읽을 때.”
“그럼, 뭐 할 때 가장 재미있어?”
“음… 책 읽을 때랑 동생이랑 인형놀이할 때?”
“어떻게 인형놀이할 때 제일 재밌어?”
“대본 만들고, 역할 나누고, 무대 꾸미고 공연할 때!”
초등 고학년 아이 입에서 '인형놀이'가 제일 재미있다고 하다니. 어쩌면 많은 엄마들이 나처럼 여러번의 심호흡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참을성있게 다음 대화를 이끌었다.
“그럼 네가 그렇게 무대 꾸미고 대본 만들고 하는 거, 그건 왜 재미있는 것 같아?”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도 되니까. 만들다 보면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 그렇게 하면 놀이가 더 재미있어져”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 말은 단순한 말 같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누군가 정해준 답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나오는 생각으로 세상을 만들어보는 것. 아이는 그것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말들이 오가고 “그럼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 하고 다시 물으려던 참이었다. 불쑥 아이가 잠이 모조리 달아날 만큼의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게 좋아!”
그렇네. 네가 되고 싶은 건 창의적인 사람이네.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도 생각했었나 보다. 꼭 그 직업이 아니어도 창의적인 사람은 정말 이 사회에 꼭 필요하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았다. 아이에게 누군가 네 꿈이 뭐냐고 묻거든, 당당하게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라고 했다.
창의적인 사람.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정해진 답보다 ‘새로운 물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그건 어떤 직업보다도 더 멋지고, 더 단단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딱 하나의 모습이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그 모습대로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존재다.
랠프 월도 에머슨
원하는 직업은 자라면서 바뀌고 흔들린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준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는,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도 그랬다. 결국 나는 내가 품었던 수많은 직업의 이름을 거쳐, 지금 ‘창의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좇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가 지금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어떤 것에 마음이 움직였는지를 나누는 시간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는 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