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선택의 주도권

by 김란주

첫째딸이 잠자기 전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나는 가족을 참 잘 만난 것 같아.” 뭐지, 이렇게 사랑스럽고 바람직한 성찰 멘트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영어학원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날의 주제는 ‘선택’에 대한 것이었는데, 선생님이 각자 최근에 자신이 한 선택들에 대해서 적어보고 공유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자신은 선택한 것들이 많았고, 중요한 것들도 자기가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였다고. 그래서 ‘예를 들면?’ 이라고 물었다. 자신은 학교도 선택했고, 학원도 선택했고, 무슨 책을 읽을지, 뭐하고 놀지, 여행을 어디로 갈지 등 많은 것들을 썼단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몇 개 쓰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늘 아침에 학교에 입고 갈 옷을 선택했다.’, ‘편의점에서 뭘 먹을지 선택했다.’ 등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네가 학교를 선택하고, 학원을 선택했냐고 물었단다. 학교는 당연히 집 앞에 있으니까 가는 거고, 학원은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다니는 건데.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도 선택을 했다. 사립학교 입학이나 위장전입을 한 것이 아니다. 좋은 자연환경과 창의성을 꽃피울 수 있는 작은 학교를 찾았고, 그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주소지로 이사했다. 야트막한 소나무숲 산 아래에서 닭을 키우며 4년을 살았다. 그리고 도시의 문물이 필요해진 시기에 아파트로 이사했다. 집 근처 학교로 전학할 것인지, 편도 25분 걸려 차를 타고 계속 다닐 것인지 또한 선택해야 했다. 목적이 있는 사교육을 하기 위해 학원도 선택했다. 초등학교도 선택했는데 중학교를 선택 못 할 쏘냐. 한 학교를 목표로 두고 아이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심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들을 어떻게 아이가 본인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내가 한 것 같은데?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헉, 혹시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었던 건가? 그래, 나는 항상 얘기하곤 했다. ‘엄마는 정보 제공을 해 주는 거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그 말이 지금 저만치 떨어져 있어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장단점 생각해보기를 같이 하곤 했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를 함께 얘기했다. 그렇게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래, 잘 생각했어.’ 라고 칭찬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중재자의 역할을 했을까? 아니다. 나는 분명 아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정보의 불평등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내 가치관과 목적에 따라 편중된 정보만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내 경제적인 상황이나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평가적인 시선도 한 몫 했다. 그 와중에 심지어 나의 편의도 생각했다. 장점과 단점 중에 아이의 시선과 내 시선이 섞였다. 아마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더 많았을 것이고, 나의 보이지 않는 의도가 말하는 에너지에 묻어났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바라던 대로 아이가 선택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아이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 듯 했다. 그리고 선택권을 준 부모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기특하고 이상적인 아이의 표현으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나는 결국 또 반성을 하며 잠자리를 들었다. 선택해서 옮긴 사람은 그 다음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기회들을 탐색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든 이면에 있는 기회비용 또한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훗날에 자신의 선택, 자신이 선택했다고 느낀 결정에 대한 책임감에 버거워하지 않도록, 후회하더라도 함께 반성하고 다시 앞으로 나갈 용기를 주는 부모가 되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아이가 답답하다고 느낄 때 해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