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으로 바라본 암호화폐 시장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비트코인의 가격이 한국 기준으로 개당 천만 원을 돌파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비트코인 열풍으로 이더리움과 라이트코인 등 각종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의 주가도 덩달아 치솟던 때라, ‘코인 투자=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죠. 결국 ‘투자’ 열풍이 ‘투기’로 변질되자 시장에는 버블에 대한 우려와 장밋빛 전망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는데요. 1년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오늘은 비트코인을 기준으로 암호화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간략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트코인은 원래 특정 국가와 금융 세력, 강력한 중앙 규제 아래 통제돼 온 화폐에 인터넷과 같은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탈중앙화’ 화폐 실현을 위해 블록체인이란 기술을 핵심 기반으로 삼았죠. 모든 거래가 기록되는 일종의 디지털 장부를 불특정 다수가 함께 공유하고 과반의 동의하에 동시에 업데이트하는 개념의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 꿈꾸는 이상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었으니까요. 조작이 거의 불가능하고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공개되며, 국가 간 화폐의 장벽이 허물어진 세상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비트코인의 황금기를 가져온 건 이런 비트코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였습니다. 수천 년간 인류 경제활동의 기반을 이뤄 온 기존 물리 화폐 시스템을 비트코인으로 대체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대체가 아니더라도 경제 구조 일부로 편입되려면 충분한 거래 인프라와 실생활 적용에 대한 연구도 수반되어야 하죠. 그러나 비트코인은(대부분의 암호화폐는) 현재 완성도에 비해 너무 이른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건 마치 유소년 리그의 주목받던 어린 유망주가 갑자기 성인 프로 무대에 내던져진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높아진 기대에 따라 보다 다양한 활용 연구가 각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는데요. 문제는 그만큼 비트코인이 갖는 한계 역시 금방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가령, 화폐 대체재로서의 비트코인은 거래 내용을 동기화하는 작은 블록 크기 탓에 결제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처리 시간도 지연되는 구조였죠. 예를 들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비트코인 결제를 했는데 승인까지 30~40분이 걸린다면 누구도 이를 정상적으로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매일 큰 폭으로 요동치는 시세도 화폐로서의 보유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거래 속도를 높인 비트코인 캐시나, 1달러에 1코인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테더 등의 스테이블 코인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지금의 비트코인은 타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화폐의 화폐’의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기능성과는 별개로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는 암호화폐이기 때문이죠. 또 비트코인과 함께 1세대 코인 쌍두마차였던 이더리움의 경우 화폐 대신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기반 응용 앱(Dapp) 개발을 위한 매개체로 자리매김해갔습니다. 이렇게 암호화폐 시장은 점차 새로운 주자들로 재편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암호화폐 자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국가의 정부가 자신들의 화폐 권력을 비집고 들어오는 암호화폐의 등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는데요. 때마침 불거진 암호화폐 투기, 거래소 해킹, 사기 ICO 등의 문제는 국가가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좋은 근거가 됐죠. 결국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탈중앙화 기치를 내세웠으나,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들의 관련 규제와 입장 발표 한 번에도 극락과 나락을 오가는 신세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암호화폐가 주류 경제에 편입되기 위해선 일정 부분 국가의 지원과 묵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비트코인과 여러 암호화폐가 탄생 비전과 달리 실생활에 쉽게 흡수되지 못하고 각종 규제에 발이 묶이기 시작하자 투기 열풍은 모래성처럼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과도한 기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가치였기에 그것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무너지는 것도 걷잡을 수 없었던 거죠. 한때 2천만 원을 넘겼던 비트코인의 가치가 1년 사이에 70~80% 하락한 400만 원대까지 폭락한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물론 이를 두고 이제야 진정한 가격 안정기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한번 무너진 신뢰를 두고 사람들의 관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죠.
현재 암호화폐의 미래를 보는 눈은 모두 제각각인데요. 긍정적인 면에서 암호화폐가 지닌 내재가치는 실현만 된다면 인터넷만큼의 큰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으므로, 비록 지금 당장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연구와 시행착오를 기다려볼 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인공지능이 수십 년의 겨울을 마치고 딥러닝 시대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새롭게 조명된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지금의 암호화폐 역시 블록체인의 특성처럼 사그라들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제2의 딥러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확실한 킬러앱이라던가 말입니다.
부정적인 면은 역시 현재 암호화폐가 드러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극히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해결되고 있는데요. 문제는 몇몇 대형 암호화폐 프로젝트나 거래소가 결국은 소수의 강력한 힘을 지닌 몇몇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약점을 드러내 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가장 근본적인 비전이 무너지는 것으로, 인간의 관여가 초래하는 정치적 이슈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암호화폐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사장될 가능성이 큽니다.
비트코인의 화려한 비상 이후 암호화폐는 단시간에 가장 높은 위치와 낮은 위치를 오르내리는 격정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암흑기에 접어든 모양새인데요. 아직은 누구도 확정적인 미래를 속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기왕이면 기성 화폐와 금융의 불합리성을 완전히 타파하려던 비트코인의 정신이 어떤 모습으로든 재현되길 바랄 뿐입니다. 과연 암호화폐는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냉혹한 위기의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이후 행보가 주목됩니다.
기사문의: 오픈모바일(wel_omcs@naver.com)